2013년 10월 세워진 봉은사 허응당보우대사 봉은탑 비문. 이 비문에서 박씨는 불자로서
불국정토의 실현을 기원하고 있다.
성균관(관장 서정기)에서 총무처장과 추기석전 준비위원장의 타종교 전공자 임명을 두고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서정기 성균관장이 지난 8월14일 본보의 기사를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상만 총무처장을 면직시키고 타종교 전공자인 박영기씨를 신임 총무처장과 추기석전 준비위원장에 임명했기 때문이다.
유림 활동이 전무한 박영기씨는 D대학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불교논문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고 불교학개론, 불교문화사, 불교와 예술 등을 대학에서 강의해 왔으며 최근까지도 동인문화원이라는 곳에서 금강경, 대승기신론 등 불교 강의를 해 온 불교전공자이다. 게다가 불교신자로 알려지면서 정관 위반은 물론 성균관 문묘에 배향된 선성선현에 대한 모독과 유림 조직의 정체성 훼손 문제로 유림들이 공분하고 있는 것이다.
성균관 총무처는 전국 234개 향교를 통할하는 유교 종단의 업무를 총괄하는 기구이며 총무처장은 종단 업무에서 성균관장 다음 자리이다. 게다가 석전은 성균관과 유림의 최대 행사다. 성속의 구분이 없는 성균관과 유림 조직의 특성 상 ‘성균관 정관’에서는 총무처장 직에 타종교인이 임명될 수 없도록 별도 규정하고 있으며 석전 준비위원장을 타종교 신자나 전공자가 맡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씨에 대한 성균관 총무처장과 석전 준비위원장 임명은 정관을 떠나 종교인의 양심 문제로까지 비화되면서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박씨를 임명한 서 관장은 박씨의 종교가 유교라고 강변하고 있는 반면에 정작 당사자인 박씨는 자신이 불교신자인지 아닌지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박씨는 다만 자신이 D대에서는 불교를 공부해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이고 지금까지 우리 한민족의 철학을 정립해 보고자 유·불·도 삼교에 대해 지속적으로 공부해 왔다는 애매한 주장만 하고 있다.
서 관장이나 박씨의 말에 대해 유림들은 이들이 최소한의 종교적 양심조차 저버리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격분하고 있다. 불교신자인 게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다만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님을 지적하는 것뿐인데 이렇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박씨는 <허응당 보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순교자 보우선사>라는 제목의 책도 냈다. 박씨가 그 동안 쓴 논문은 대부분 보우와 관련된 것으로 불교 논문이며 유교 논문은 없다. 박씨가 쓴 논문과 책의 요지는 조선 명종 때 승려인 보우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유생들에게 요승으로 몰려 끝내는 제주로 유배되어 순교한 불교 순교자로서 조선의 불교말살정책으로 쓰러져 가는 불교를 중흥시킨 인물이라는 것이다.
박씨는 지금까지도 ‘一正’이라는 법명으로 ‘허응당보우사상연구회’를 이끌고 있으며, 이 연구회에 대해 “허응당 보우 대사는 조선시대 극심한 배불정책과 미증유의 법난 속에서 한국불교 중흥에 힘쓰다 1565년 제주도에서 순교하셨다. 허응당보우사상연구회는 대사의 위대한 업적과 사상을 공부하고 선양하기 위한 모임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박씨는 봉은사에 세워진 보우의 조각상 銘文에 “불법중흥을 위해 온 몸을 바치신 스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고 스님의 거룩하신 원력과 신심을 등불로 삼아 이 땅에 불국정토를 실현하고자 봉은사 사대부중의 정성을 모아 불기2557년 초 파일에 이 상을 모시다”라고 썼다.
또한 봉은사 ‘허응당보우대사 봉은탑’ 비문에는 박씨가 쓴 행장이 새겨져 있으며, 이 비문에서 박씨는 “스님의 비를 세우고 조상을 모시는 까닭은, 스님에 대한 그릇된 역사와 이해를 바로잡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불자들이 스님의 물러나지 않는 원력과 바른 신심을 등불 삼아서 이 땅에 진정한 불국정토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불기2557 계사 시월에 봉은사 사부대중이 정성을 모으다”라고 썼다. 박씨 스스로 불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서 관장 취임 후 정관에도 없는 기획조정실장이라는 직책에 임명된 박씨는 서 관장과 함께 오령서와 오령설 등 신흥종교 파문의 당사자로 지목돼 왔다. 유림들은 이들이 이 같은 해괴한 주장을 하면서 유교와 성균관의 정체성을 훼손하려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박씨는 <보우대사의 유불사상>이라는 논문에서는 미친 유생(狂儒)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조선 중종 때 유생들의 약탈과 만행으로 1000년 불교 유산의 대부분을 송두리째 앗아갔다고 주장했다. 특히 조선 명종 때 율곡 이이를 포함한 士林들의 상소와 성균관의 권당을 모함과 무고, 중상모략이라고 했다.
또한 박씨는 “무도한 배불세력과 유생들은 사찰을 방화하고 약탈을 자행하는 등 온갖 만행을 서슴지 않아 불교는 곳곳에서 온갖 시련을 겪어야 했다”고 하면서 “70여 년간 무지한 위정자들에 의해 자행된 승려 탄압, 사찰과 불상, 불탑, 경전의 파괴 및 훼손에 이르는 만행은 한반도에서 선조들이 10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거치며 이룩해 놓은 불교유산의 대부분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말았던 것이다”라고 했다. 유교인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주장이다.
박씨는 보우에 대한 글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대표적인 식민사학자인 다카하시 도루(高橋亨)를 선생이라 칭했다. 다카하시 도루는 조선침략의 일환으로 한국유학사와 불교사를 연구 왜곡시켜 일제에 순응하고 협력하는 식민지 지식인을 양성하는 데 기여한 자다. 다카하시 도루는 ‘사상의 고착성’과 ‘사상의 종속성’을 조선인의 영원히 변하지 않을 대표적 특성이라고 하며 또 다른 특성인 ‘형식주의, 심미관념 결핍, 문약함, 당파성, 고사의 혼동’ 등은 일본의 통치로 개조될 수 있다고 주장한 대표적인 식민사학자다.
보우는 조선 명종 때 문정왕후와 윤원형 등 외척을 등에 업고 국사를 망친 요승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명종 때 문정왕후와 윤원형 일파가 일으킨 을사사화와 양재역벽서사건으로 희생된 사림은 회재 이언적을 포함하여 100여 명에 이른다. 그런데 박씨는 보우에 대한 사림의 잇따른 상소를 두고 정권을 잃은 윤임 일파가 윤원형 일파의 정책을 반대하는 명분으로 문정왕후의 興佛을 마련한 보우를 배척한 것이며 유림 전체가 보우를 배척하고 모함하지는 않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씨는 보우가 유불을 회통했다고 하면서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한 일만 행하여서 내 마음이 깨끗하면 이를 일러 불교라 하네”라고 하고, “격물치지의 공 이룬 사람, 구름 속에 나와 같은 이 또 누가 있겠는가”라고 자신했다고 썼다. 또한 박씨는 보우가 주역을 읽고 중용을 읽었다는 말만 가지고 유학 경전에도 거의 解通하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며 유자들이 번거롭게 논의하던 心·氣·理·性·情의 모든 관념을 꿰뚫어 초탈하였으며 거기에 또 天人과의 완전한 合一을 이루어냈다는 주장도 했다.
이 같은 박씨의 주장은 “사서오경은 필요 없다. 제사만 지내면 다 유림이다”, “도를 통했다”라고 하면서 大儒·巨儒 심지어 徐子라고 자처하는 서 관장의 언행과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성균관은 서 관장이 박씨를 총무처장과 추기석전 준비위원장에 임명함에 따라 ‘오령서와 오령설로 신흥종교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관장과 불교신자이자 불교전공자인 총무처장 겸 석전 준비위원장, 대만의 신흥종교 천은미륵불원 한국 교주인 자문위원장’으로 석전을 치르는 창건 이래 초유의 황당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성균관 유림 K씨는 “지금 성균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유림 아닌 자들이 종단을 농단하면서 석전까지 봉행하겠다고 하니 정말 기가 막히고 조상 볼 낯이 없다. 이 같은 사태는 결국 우리 모두의 책임이니 우리가 바로잡아야 하는 것 아니겠냐. 서 관장이나 박씨는 더 이상 유교와 성균관을 모욕하지 말고 떠나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