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종단

성균관대 양현재 입재 고유

참례자들이 대성전 앞에 도열해 있다. 고유례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3월14일 오후 2시 성균관 대성전에서는 성균관대학교 양현재 학생들의 입재 고유례가 봉행됐다. 이날 고유례의 헌관은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이 맡았으며 학부생 48명, 대학원생 50명이 참석했다. 성균관대 양현재(養賢齋)는 조선조 동재와 서재에 기재하는 유생들의 전통을 계승하고

손경수 기자 2017. 3. 15.

 

참례자들이 대성전 앞에 도열해 있다.

 

 

고유례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3월14일 오후 2시 성균관 대성전에서는 성균관대학교 양현재 학생들의 입재 고유례가 봉행됐다.

 

이날 고유례의 헌관은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이 맡았으며 학부생 48명, 대학원생 50명이 참석했다.

 

성균관대 양현재(養賢齋)는 조선조 동재와 서재에 기재하는 유생들의 전통을 계승하고 유교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유학 및 동양철학 전공자 중 장학생을 선발하여 기재한 제도이다.

 

본래 고려 예종 14년(1119) 최고 교육기관인 국자감의 재정 운영을 원활히 하기 위해 안향 선생의 발의에 의해 양현고(養賢庫)를 설치하고, 국자감에 거재하는 모든 경비를 전담하는 국고(國庫)이다.

 

조선조 성균관에서는 토지와 노비를 재원으로 해 성균관 유생(진사, 생원)들의 식량과 물품 등을 공급했다. 그후 일제에 의해 성균관이 경학원으로 격하, 양현고가 폐지됐다.

 

그러나 광복 후 1946년 9월 성균관 재건 및 국학의 맥을 계승하기 위해 전국 유림들의 성금으로 성균관대학교 설립 후, 1960년 양현고로 부활됐다.

 

조선조 동재와 서재에 기재하는 유생들의 전통을 계승하고 유교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유학 및 동양철학 전공자 중 장학생을 선발하여 기재토록 하고 학과 수업 외 특별강좌를 수강하며 성균관에서 실시하는 석전, 분향 등 유교의례에 참여했다.

 

1970년 양현재(養賢齋)로 개칭된 후, 2005년 문화재 보호의 미명 아래 강제 퇴거됐다.

 

성균관 동재와 서재에 기숙은 하지 않고, 학기마다 유학 관련 학부생 및 일반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장학생을 선발해 특별수업 및 임간수업 등을 실시하고 있다. 학기초에 장학생으로 선발된 학생들은 성균관 대성전에서 고유례를 봉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