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종단

세계유교문화유산 탐방 첫 번째 프로그램 ‘베트남 문묘와 자연유산’①“초등학생들이 제향식을 열고, 국민과 외국인들까지 찾는 하노이 문묘를 보니 충격입니다”

베트남은 한국보다 2시간 늦은 시차가 적용된다. 수도 하노이는 베트남 최대도시 호찌민에서 북쪽으로 1,7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하노이 문묘는 호치민 묘소, 탕룽황성 등 명소들과 가까운 곳에 있다. 문묘로 향하는 길에 접한 출근길 오토바이 행렬은 '장관(壯觀)'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대단했다. 2호 버스를 전담한 박기형 가이드가 베트남에 대한 여러

오흥녕 2023. 11. 12.

 

 

베트남은 한국보다 2시간 늦은 시차가 적용된다.

 


 

 

수도 하노이는 베트남 최대도시 호찌민에서 북쪽으로 1,7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하노이 문묘는 호치민 묘소, 탕룽황성 등 명소들과 가까운 곳에 있다.

 


 

 

문묘로 향하는 길에 접한 출근길 오토바이 행렬은 '장관(壯觀)'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대단했다.

 


 

 

2호 버스를 전담한 박기형 가이드가 베트남에 대한 여러가지 설명을 하고 있다.

 


 

 

하노이 문묘 입구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하노이 문묘-국자감의 배치도이다. (출전: 하단 본문 내용 참조)

 

 

 


 

 

 

 

'잉어가 용으로 변한다'는 등용문(登龍門) 상징 조각이 내부로 향하는 대중문의 지붕에 설치돼 있다.

 


 

 

박혜자 성균관 부관장, 민해원 성균관여성유도회중앙회장, 윤옥희 부회장이 함께하고 있다.

 


 

 

참가자들이 현지 한국인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다.

 


 

 

최영갑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이 문묘 전경을 바라보고 있다.

 


 

 

 

 

진사제명비(進士題名碑)가 연이어 자리하고 있다.

 


 

 

수 백명의 하노이 초등학생들이 문묘 국자감 앞마당을 가득 메우고 있다.

 


 

 

하노이 서호동 타이초등학교 학생들이 제향식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대성전 중앙에 공자가 모셔져 있다.

 


 

 

공자상 앞에 기복의 뜻을 담은 물품들이 많이 갖춰져 있다.

 


 

 

유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민해원 성균관여성유도회중앙회장이 약식 헌다례를 하고 있다.

 


 

 

유림들이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께 사배하고 있다.

 


 

 

이순금 운해다원 대표, 최군식 광주향교 전교, 박해종 보성청년유도회 수석부회장이 관람하고 있다.

 


 

 

대성전 뒷 영역에 1층 규모의 국자감 전당과 2층 규모의 후당이 보인다.

 


 

 

국자감 후당 1층에 유현(儒賢)으로 추앙받던 쭈반안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기념촬영을 마친 초등학생들이 담임선생님과 함께 국자감 후당을 둘러보고 있다.

 


 

 

담임선생님의 설명을 들은 초등학생들이 익살스러운 끼를 감추지 못하며 절하고 있다.

 


 

 

국자감 후당 2층 왼쪽에 위치한, 진사제명비 제작자 레딴똥(黎聖宗)의 모습이다.

 


 

 

국자감 후당 2층 가운데에 위치한, 문묘 설립자 리탄똥(李聖宗)의 모습이다.

 

 

 


 

 

국자감 후당 2층 오른쪽에 위치한, 국자감 설립자 리년똥(李仁宗)의 모습이다.

 


 

 

초등학생들이 문묘-국자감 모형도를 살펴보고 있다.

 


 

 

1922년 당시의 문묘-국자감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김숙자 (사)석전보존회 이사가 전시된 관복 앞에 자리하고 있다.

 


 

 

국자감 후당 2층에서 돈을 떨어뜨려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행운이 온다고 한다.

 


 

 

민해원 성균관여성유도회중앙회장(가운데)을 비롯한 여성유림들이 동전 떨어뜨리기를 하고 있다.

 


 

 

참가자들이 유쾌한 마음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베트남 초등학생들과 국자감 전당(前堂) 앞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성균관(관장 최종수)과 성균관유도회총본부(회장 최영갑)가 공동주최한 세계유교문화유산 탐방 첫 번째 프로그램 ‘베트남 문묘와 자연유산’편이 지난 11월7일부터 11일까지 3박5일동안 베트남 하노이(河內, Ha Noi), 하롱베이(泳下龍, Ha Long Bay) 일원에서 진행됐다.

 

 

최영갑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 남후식·박혜자·안장환·이선규 성균관 부관장, 설균태 성균관 고문 부부, 방석관 성균관 자문위원, 민해원 성균관여성유도회중앙회장, 이창환 성균관청소년예절교육원 영남지원장, 김광선 임천향교·이한영 지평향교·최군식 (경기)광주향교 전교, 윤옥희 성균관유도회총본부 부회장 겸 성균관여성유도회중앙회 부회장, 이황근 성균관유도회총본부 상임위원, 정환성 성균관유도회 광주시본부 부회장, 심도식 성균관유도회 하남지부 회장, 이춘하 성균관유도회 영동지부 회장, 이정옥 성균관여성유도회 이천지부 회장, 임진숙 성균관여성유도회 평택지부 회장, 권화순 성균관여성유도회 강화지부 부회장, 박해종 성균관청년유도회 보성지부 수석부회장, 유연식 성균관유도회 정선지부 부회장, 김창규·성정길 성균관유도회 금천지부 부회장, 류희목 영남선비문화수련원 사무총장, 오흥녕 유교신문 주간, 서민철 북케어 대표, 김홍규 선산김씨 점필재파 종친회장, 이순금 운해다원 대표, 이정운 강화향교 사무국장, 백도성 창원지법 조정위원, 정원용 성균관 전인, 김숙자 (사)석전대제보존회 이사, 김승선·박종철 성균관 전례위원, 김학영 성균관유도회 충주지부 주덕지회장, 이재성 서울 총신교회 목사, 양성옥 제주한자교육연구회 서귀포지회장, 전수연 성균관유도회총본부 기획팀장 등 62명의 참가자들은 지난 11월7일 오후 3시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E카운터 앞에 집결해 최연장자 설균태 성균관 고문(1937년생)부터 최연소자 김이담 어린이집 원생(2019년생)까지 설레는 마음을 안고 오후 6시 5분발 베트남항공 VN415편에 탑승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만석인 기내의 2/3 가량은 한국인, 1/3 가량은 베트남인을 비롯한 외국인들로 구성된 가운데 약 30분 정도의 시간을 보낸 후 이륙한 비행기는 북위 약 21도, 동경 약 106도 위치한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越南社會主義共和國, Socialist Republic of Vietnam) 영역으로 들어서며 한국보다 2시간 늦게 변경된 시차가 적용되어 오후 8시 49분(한국시간 오후 10시 49분), 즉 이륙한 지 4시간 20여 분 만에 수도 하노이에 위치한 노이바이(Noi Bai) 국제공항에 착륙했고, 현지 기온은 27도였다.

 

45인승 버스 2대에 탑승해 30~4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 도착한 호텔에 여정을 풀고 하루를 보낸 일행은 다음날인 11월8일 오전 일찍부터 서둘러 하노이 시내에 위치한 대표적인 유교 유적지인 ‘문묘(文廟)-국자감(國子監)’으로 향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사회주의 국가이니 거의 방치상태로 되어 있을 것같다’ ‘베트남의 유교라고 해봐야 중국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으면서 그 영향력의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지금까지 베트남을 여러 번 방문했지만 문묘를 가볼 생각은 미처 못했기에 그래도 기대된다’ 등의 반응을 보이는 속에서도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약간의 묘한 흥분감을 만들며 출발한 버스의 앞뒤, 양옆으로 말로만 듣던 ‘베트남의 명물’ 오토바이 부대 수백, 수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내를 맡은 박기형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최소 5,000만대 이상으로 추정되는 베트남의 오토바이 1대 가격은 보통 400만원 정도이니 월 20~3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는 현지인들에게는 상당히 비싸지만 서울보다 5.5배 이상 넓은 하노이 같은 대도시에서는 필수적인 이동수단이다.(참고로 서울의 면적은 605.2㎢, 하노이 면적은 3,344.7㎢) 언제, 어디서든 떼로 몰려 다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무수한 오토바이 때문에 외부인들이 처음에는 공포심도 느끼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그렇게 과한 속도를 내지 않고, 차 또는 다른 오토바이들과 최근접으로 붙지만 워낙 어릴 때부터 운전하기에 비교적 부드럽게 운행하며, 한국인들이 경제활동을 하면서 자가용 구입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것처럼 베트남인들은 자신의 오토바이를 마련하는 것을 사회생활과 자립의 첫 단계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일정에서 본 모습들 중에서 오토바이보다 더 대단한 것은 버스 기사들의 운전실력이었는데, 도로를 가든 메운 차량과 오토바이들 속에서 차선을 여러 개 바꾸는 건 순식간이고, 곳곳에 있는 중앙분리대 사이 공간에서 과감하게 유턴을 하거나 대단히 좁은 길에서의 방향 전환을 놀라울 정도로 해내는 점이었다. 한국이라면 신호 없이 유턴을 하거나 몇 개 차선을 한꺼번에 바꾸면 클락션을 크게 울리거나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흔하겠지만 베트남에서는 일단 버스의 유턴이 이미 진행되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동차와 오토바이 모두 진행을 멈추면서 기다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출근길 교통체증을 뚫고 드디어 문묘에 도착한 일행은 각자 준비해온 유복과 당의 등으로 환복한 후 1인 3만 동(VND, Vietnam Dong, 한국 돈 약 1,5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내부로 들어섰는데, 옛날 중국 황하강 상류에 있는 용문(龍門)이라는 급류를 잉어가 올라가 용으로 변모했다는 전설의 의미를 담은 잉어 조각상들이 출입문 지붕에 새겨져 있어 이곳이 학문의 깊이와 실력으로 평범한 사람들도 승천(昇天)할 수 있는 곳이었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위의 사진 중 하노이 문묘 배치도는 김현재·이지선, 베트남 하노이 문묘-국자감의 건축물과 현판문에 내제된 중국 유교의 고찰, 인문사회과학연구 제23권 제2호(2022.5.31.), 470페이지에서 확인했다)

 

조금 더 들어가니 양쪽으로 커다란 비석들이 자리잡고 있어 가까이 가보니 옛날 과거급제자의 명단을 새긴 82기의 진사제명비(進士題名碑)였다.

 

기원전 111년 중국 한(漢)나라의 강력한 황제였던 무제(武帝, 재위 기원전 141-87)가 남월국(南越國)을 멸망시키고 9군(郡)을 설치한 이래 중국의 끊임없는 간섭과 통제 속에서 유교의 영향력은 막강했고, 1009년 최초의 독립왕조인 리(Ly) 왕조가 세워진 뒤에도 왕권 강화의 목적으로 유학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1070년 당시 도읍인 탕롱(Thang Long, 지금의 하노이)에 베트남 최초, 최고, 최대의 공자 사당인 문묘가 건설됐다.

 

진사제명비는 중국 원(元)나라 시절인 1313년 시행된 과거시험에서 합격한 진사들의 성명, 본적, 석차 등을 돌로된 비석에 새겨 건립한 것에서 유래되어 원래는 많았으나 대부분 소실되거나 파괴되고 지금은 중국에 198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베트남에서는 앞서 언급한 1070년 문묘 설립, 1075년 과거제 시행, 1076년 국자감 설립의 연장선상에서 진사제명비의 도입과 설치가 시작되고 지속됐다.

 

베트남의 과거제는 1919년 공식 폐지될 때까지 183회가 시행되며 2,898명의 진사가 배출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1484년에 앞서인 1442년 최초 진사과 합격자 명단을 새긴 비석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진사제명비와 천광정(天光井)을 지나 성균관과 우리나라 대부분의 향교들처럼 전묘후학(前廟後學, 앞쪽에 제사 지내는 공간을 배치하고 뒤쪽에 배움의 공간을 두는 구조)의 형태를 띠고 있는 하노이 문묘에 본격적으로 들어서자 눈앞에는 몇 백명인지 헤아려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초등학생들이 담임선생님의 지시를 따르며 앉아 있고, 저 멀리 보이는 베트남어를 번역기 어플에 넣어 확인해보니 '하노이 서호동 타이초등학교에서 제향식을 왔다'는 내용의 행사용 게시판이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냥 오기 싫은 곳에 억지로 끌려온 듯한 분위기의 현장체험학습이 아니라 교사든, 학생들이든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었고, 기자가 손을 흔들고 하트 모양의 동작을 하자 따라 하는 학생들이 상당수였으며, ‘안녕’ ‘안녕하세요’ ‘한국 좋아~’라고 말하는 이들이 곳곳에 있었다.

 

하노이 초등학생들이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참석자들은 대성전으로 향하여 중앙에 모셔진 공자(孔子) 신위에서 헌다관 민해원 성균관여성유도회중앙회장, 전다관 박혜자 성균관 부관장 겸 성균관여성유도회중앙회 명예회장, 봉다관 윤옥희 성균관여성유도회중앙회 부회장, 기타 준비 임진숙 성균관여성유도회 평택지부 회장·권화순 성균관여성유도회 강화지부 부회장 등이 마련한 약식 헌다례를 봉행하고, 사배한 후 오른쪽 동향에 모셔진 안자(顔子)와 자사(子思), 왼쪽 서향에 모셔진 증자(曾子)와 맹자(孟子) 신위에도 예를 올렸다.

 

복을 기원하는 전통이 뿌리 깊은 베트남의 특성상 여러 가지에 대한 기원의 뜻을 담은 각종 물품이 갖추어져 있고, 나무로 된 신위만 갖춘 성균관과 달리 나무로 만든 상(象)의 모습을 띠고 있는 점 등이 한국과는 구별되는 특징이었다.

 

대성전 뒷부분의 영역은 국자감으로 1층 규모의 큰 건물인 전당(前堂)은 성균관 명륜당보다 훨씬 큰 규모의 강당이고, 2층 규모의 후당(後堂) 1층에는 1328년 국자감 최고책임자였던 쭈반안(朱文安, 1292-1370)의 신위를 모신 제단이 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문정공(文貞公)의 시호를 하사받는 등 유현(儒賢)으로 추앙되던 모습을 구현했다.

 

후당 2층에서 왼쪽은 진사제명비를 세우기 시작한 레딴똥(黎聖宗, 1442-1497), 가운데는 1070년 문묘를 세운 리탄똥(李聖宗, 1023-1072), 오른쪽은 국자감을 설립한 리년똥(李仁宗, 1066-1128)의 신위가 각각 자리하고 있고, 아래 1층에는 옛 관복, 문묘 모형도, 1922년 당시의 문묘 사진, 각종 임명장, 책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외에도 좌무(左廡)와 우무(右廡), 북을 설치한 고루(鼓樓), 종을 설치한 종루(鍾樓) 등이 갖추어져 2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베트남 유교가 예전에는 얼마나 융성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베트남 문묘-국자감 방문을 마치며 많은 이들은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원래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내용과 다양성에 대해 놀랐다’ '여기는 어린아이들부터 일반 국민들, 외국인들까지 같이 찾는 국민관광지인 것같다. 대단하다'는 반응들이었는데, 최영갑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은 “지금 비록 정치체제나 사고방식이 많이 달라졌으나 밝은 표정과 마음가짐, 복잡하지만 신경질적인 반응이 거의 없이 움직이는 교통흐름, 어린 아이들과 함께 조상의 전통문화를 찾는 모습 등을 보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날부터 모두 많은 감동과 유쾌한 기분으로 시작하게 된 것같은데, 이후로도 보고 느끼며 성균관과 유림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들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고 이야기 나누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의미를 전했다.

 

(다음 내용들은 후속기사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