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전으로 출입하는 신삼문 왼쪽 담벼락 앞쪽에 경찰통제선이 설치되어 있다.
폭탄 불발탄이 발견된 현장이다.
폭탄 불발탄이 묻혀 있던 자리에 큰 홈이 만들어졌다.
폭탄 불발탄이 바닥에 드러나 있다.
폭탄 불발탄의 상세 모습이다.
군 폭발물처리반 관계자들이 폭탄 불발탄을 살펴보고 있다.
군 폭발물처리반 관계자들이 폭탄 불발탄을 회수하는 동안 양측 도로가 전면통제되고 있다.
한국전쟁시 북한군 수송부대가 서울 성균관대에 주둔하며 군수물자를 저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군이 퇴각하면서 비천당 등 많은 시설을 불태워버렸다는 사실이 '성균관대 6백년사'에 실려있다.
12월12일 오후 2시 50분경 성균관 대성전 입구 신삼문 좌측 담장 아래에서 한국전쟁 당시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폭탄 불발탄 3점이 발견됐다.
현장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한솔나무병원 작업인부들이 대성전 내에서 바깥으로 뻗어있는 은행나무의 가지 기둥받침 설치를 위해 터 파기 작업 중 땅 밑 약 30cm 지점에서 폭탄 불발탄들을 발견해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관할 혜화경찰서는 성균관대 정문부터 이어지는 왕복 2차로 교통을 통제한 후 주변 인파의 접근을 막고, 군부대 폭발물처리반의 현장 출동을 기다렸다.
오후 4시 40분경 출동한 군 폭발물처리반은 신관이 모두 제거된 불발탄임을 확인하고 회수해 철수했는데, 군 책임자는 '정확한 것은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서울 성균관이 한국전쟁 당시 적군(=북한군)의 주둔지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므로 아마 그들이 사용하기 위해 보관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확정하기는 어렵다'고 하며 '본인들은 폭발물 수거가 전문이고 수색은 하지 않으니 협조 요청 등으로 수색부대의 출동을 건의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성균관대 개교 600주년을 맞이해 지난 1998년 발간된 『성균관대학교 6백년사 1398-1998』 천(天) 364페이지에 의하면, '한국전쟁시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이 학교 건물들을 점거하고 군수물자를 저장했다가 (1950년 9월15일 유엔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 의해 전격적으로 단행된) 인천상륙작전으로 퇴각시 비천당(丕闡堂), 교실, 도서실, 숙직실, 창고 등의 건물들과 집기, 책 및 서류 등을 불태워 당시 화폐가치로 약 17억 원의 피해를 입힌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군이 처음 서울을 점령한 시기는 1950년 6월28일부터 9월28일까지였고,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한국군과 유엔군이 전면퇴각했던 1·4후퇴의 여파로 1951년 1월4일부터 3월까지 다시 점령했었는데, 주력군이 머물던 시기는 전자의 시기였으므로 이번에 발견된 불발탄도 그때 저장하고 있다가 급히 후퇴하며 한국군과 유엔군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땅에 파묻은 듯하다.
한편 수도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문묘 성균관에서 여러 점의 불발탄이 발견됨으로써 한 달에도 몇 번의 유교 행사가 진행되며 많은 유림들이 왕래하고, 어린이와 학생을 비롯한 다수의 시민이 다니며, 아름다운 풍광을 구경하거나 사진 촬영하기 위해 찾는 내국인 및 외국인 관광객이 수시로 방문하는 곳인 만큼 군, 경찰, 서울시, 종로구 등 관계당국에서 1만 평이 넘는 성균관 전 지역에 대한 금속 및 폭탄 탐지활동을 통해 안전지역임을 확인하는 과정이 진행되어야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