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관 및 제집사가 명륜당 앞에 서립해 있다.
비천당 앞마당에 위치한 참례객들이 사배하고 있다.
폭염을 피하기 위해 참례객들이 차양막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1773년부터 1792년까지 성균관 유생으로 생활했던 윤기(尹愭, 1741-1826)의 「반중잡영(泮中雜詠)」에
삭·망분향례가 ‘아직 해가 뜨지 않았을 때(未明時)’부터 시작됐음을 전하고 있다.
원주향교를 비롯한 전국의 상당수 향교들이 오전 일찍부터 분향례를 봉행해오고 있다.
매우 무더운 날씨 속에서 오전 10시부터 시작됐던 '공기 2575년 성균관 추기석전'에서
일무단원들이 연속해서 쓰러지거나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일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성균관(관장 최종수)은 7월9일 오전 11시 비천당에서 음력 6월 망분향례를 봉행했다.
이날 분향례의 헌관은 김홍엽 성균관유도회 서울시본부 회장, 집례는 서정택 전례위원장, 알자는 김형열 전례위원, 찬인은 권선웅 전례사, 봉향은 김돈현 전례사, 봉로는 양해태 전례사, 사세는 박혜자 전례사가 맡았다.
연일 35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서 진행된 성균관 분향례는 이날도 오전 11시부터 시작되었으나 지방 향교는 빠른 곳은 오전 6시(부산 기장향교·강원 홍천향교)부터 6시 30분(강원 양양향교), 7시(강원 동해향교), 7시 30분(강원 원주향교), 8시(광주향교·강원 정선향교) 등 일찍 분향례를 봉행하고 하루를 활기차게 시작하는 곳들이 상당수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향교도 일이 많아서 일찍 분향례를 봉행해야 수월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는데 유교 종단의 중앙기관인 성균관은 언제까지 매번 오전 11시 시작을 고집하느냐?”는 문제 제기가 잇따르는 가운데 1773년(영조49)부터 1792년(정조16)까지 19년 동안 성균관 유생으로 생활하던 모습을 시(詩)로 정리해 자신의 문집인 『무명자집(無名子集)』에 「반중잡영(泮中雜詠)」 220수(首)로 남긴 윤기(尹愭, 1741-1826)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성균관 삭·망분향례는 ‘아직 해가 뜨지 않았을 때(未明時)’에 유생들이 ‘하련대 앞에서 북쪽을 향해 서서(下輦臺前北向立)’ 시작됐다.
성균관이 위치한 수도권의 교통여건으로 볼 때 새벽은 아니어도 오전 8시 내외에는 충분히 가능할 것같은 삭·망분향례가 더욱 무더워지는 날씨 속에서 지금처럼 오전 11시 시작으로 지속된다면 경우에 따라 참례객들의 건강에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으며, 실제로 지난 2024년 9월10일 오전 10시 비천당에서 봉행된 ‘공기 2575년 성균관 추기석전’에서는 무더운 날씨로 인해 일무단의 단원들이 연속해서 쓰러지거나 어지러움을 호소하고, 상당수 참례객도 대단히 힘들어 했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관행에 대해 변화를 모색해볼 필요도 충분히 있음을 확인시켜준 ‘무더운 여름날의 분향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