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열풍은 최근 문명의 편리가 만들어놓은 몸의 부실을 탈출하기 위한, 현대인의 지혜로운 선택이다.
그런데 조선에도 걷기 열풍이 있었다.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가고 오는 길이 있었고, 물건을 팔기 위해 왕래하는 길이 있었고, 지방 관직에 발령을 받아 가는 길도 있었다.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의 기본은 세금과 공물을 수령하기 위해 길을 닦는 것이었다. 공적인 도로는 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노폭을 넓혔고, 눈비에 노면이 훼손되지 않도록 박석을 깔기도 했다. 이런 업무적인 걷기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순수한 관광을 위한 걷기나 세상을 유랑하는 걷기도 유행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옛사람들의 걷기는 대개 마음을 닦는 수행의 방편이었다. 걷는 일은 약한 몸을 추스르기 위해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뜻을 새기고 걸음마다 깨달음을 구하는 공부의 길이었다. 화담 서경덕에게 ‘대학’을 배웠던 황진이는 천하를 돌아봄으로써 삶의 기본과 원천을 섭렵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걷기에 그 이상의 무엇을 담고 있었다. 겸재 정선은 포항의 내연산을 걸으며 위대한 추락진경을 발견했고 여헌 장현광과 회재 이언적은 시골의 산속 마을에 은둔하며 자연 속에 유학적 가치의 세계를 스토리텔링으로 아로새겼다. 순정의 여인 홍낭과 위대한 여성시인 이옥봉은 격정의 길을 걸으며 삶과 사랑의 문제들을 묻고 또 물었다. 쿠데타로 고려를 전복시킨 조선은 늘 고려의 왕도였던 개성(송도)을 쳐다보며 찜찜해했다. 조선의 가치가 고려의 가치보다 높고 위대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체험하기 위해 떠났던 지식인 채수와 성현 등의 일행은 오히려 그 여정 속에서 고려의 매력과 자존심에 눈을 뜨기도 한다.
그들에게 여행은 깨달음의 길이었고 삶의 기틀을 바꾸는 힘이었고, 일상에서 발견하지 못한 위대한 것을 발견하는 통찰의 걸음이었다. 옛 사람들이 걸어왔던 그 길을 다시 한 번 함께 걸어보자. 문의/ 산수야 02)332-9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