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향교는 학산사에서 석채례를 모셨다.
학산사 강당에 걸린 7대 순천향교 전교(직원) 소천 서병규의 글씨 현판
지난 4월7일 황전면 발산마을에 있는 학산사에서 석채례가 있었다. 향교에서 임명받은 배한조 강장이 위촉한 제관들이 홀기에 따라 엄숙히 진행했다.
16명의 경주김씨 문중인사가 참여해 조선 왕조 건국에 반대하고 고려왕조에 대한 의리를 지켜 은거했던 수은 김충한(金沖漢)의 절의를 기렸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구축한 <한국역대인물종합시스템>에는 ‘고려말 6은’, ‘두문동 72현’에 대한 내용이 더 나온다. ‘고려말 봉익대부 예의판서(禮儀判書)로 있었고, 포은(圃隱) 정몽주‧목은(牧隱) 이색‧야은(冶隱) 길재‧도은(陶隱) 이숭인‧농은(農隱) 민안부 등 6은(六隱) 중 한 명이다. 고려가 운(運)이 다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그를 비롯한 임선미 등 70여 명이 벼슬을 버리고 송경 만수산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는데, 세인은 이들을 두문동(杜門洞) 72현이라 하였다. 1822년(순조 22) 개성유수(開城留守) 오한원이 요청하여, 고려 조의 예의판서(禮儀判書) 민안부(閔安富)‧김충한(金沖漢) 두 사람을 송경의 두문동 표절사(表節祠)에 추가로 배향하였다’는 것이다.
사우 바로 앞에 있는 학산강당에 걸린 큰 글씨가 항일기 순천향교 제7대 직원(直員.=전교)이었던 소천 서병규의 것이어서 학산사와 향교의 관계를 알려 주고 있다.
이날의 제관은 다음과 같다.
초헌관 강기복,아헌관 배한조, 종헌관 박종구, 집례 남상현, 대축 오관석, 장의 임동규, 예상 오관석, 집사 이용우, 봉향 배순호, 봉로 장성현, 봉작 배순호, 전작 류호형, 사준 신은경, 진설 양승화, 척기 김금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