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백일장 참가자가 시문을 작성하고 있다.
대축이 독축하고 있다.
현판봉헌 제막식이 거행되고 있다.
김영근 성균관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지난 4월18일 오전 10시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효자각 일원에서 '효자정려봉헌전례' 및 '제1회 죽정 효 한시백일장'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 자봉산 기숡에 안장되어 있는 평도공 최유경 선생과 함께 효자로 기록되어 있는 최사위, 최사립, 최덕린, 최덕순 등 다섯 분의 효자정려봉헌전례를 봉행하는 것으로 어느 개인과 가문을 기리는 것이 아닌 선인들의 효행을 재조명함으로써 오늘을 반추하는 계기로 삼고자 이뤄졌다.
▶1부 효행백일장 개식, 시제 및 압운 출제에 이은 시문작성 ▶2부 봉헌전례(헌관 김교화 용인시 처인구청장) ▶3부 효자정려 제막 및 효 백일장 시상식 등으로 구성된 이날 행사는 (사)한국효문화센터(이사장 최종수)와 용인한시협회(회장 이병목)가 공동 주최하고 성균관, 한국문화원연합회, 용인문화원, 용인전승문화연구원, 용인향교, 양지항교, 심곡서원, 충렬서원, 용인신문사, 용인시민신문사, 전주최씨판윤공종중 등이 후원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영근 성균관장을 비롯해 손진우 성균관 부관장, 김교화 용인시 처인구청장, 최성규 성산 효 대학원대학교 총장, 조길생 용인문화원장, 이인영 용인정승문화연구소 이사장, 이양구 용인향교 전교, 김진수 양지향교 전교, 정양화 용인문화원 부원장, 심규순 용인문화원 부원장, 이종민 용인문화원 전 원장, 이종구 용인학 연구소장, 최인태 용인향지모 회장, 김종억 용인시 남사면장, 송장섭 용인시 남사중학교 교장, 안세영 용인시 남사면 노인회장, 조선희 용인시 중앙동 새마을 협의회장, 지재희 서울 종로구 효행 본부 이사장, 박숙현 용인신문 대표, 우상표 용인시민신문 대표, 최효석 전주최씨 평도공종중 수석 부회장, 최종범 전주최씨 판윤공종중 회장, 최학준 양도공종중 회장, 최종관 지평공종중 전회장, 최용철 경절공종중 회장, 최월성 첨부공종중 회장, 최인규 감무공종중 회장, 최종형 사적위원 등 33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 기획은 오은명 한국효문화센터 상임이사, 한시는 정양화 용인한시협회 이사, 심사는 안대환 한국한시협회 원로와 지재희 한국한시협회 부회장, 이병목 한국한시협회 용인시 지회장이 맡았고, 무용은 심규순 이매방류 살풀이춤 이수자, 농악은 백암 농악놀이 보존회, 진행은 한국효문화센터, 용인문화원, 용인한시협회, 향지모, 사회는 김장환 용인문화원 사무국장의 맡았다.
이날 한시백일장의 장원은 장성집씨가 그 영광을 안았다.
김영근 성균관장은 축사를 통해 "현재의 사회는 너무도 빠르고 자기중심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 각박해져가고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때에 '효자정려봉헌전례'를 통해 조상과 부모에 대한 효행을 떠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이런 행사를 만들어 주신데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모쪼록 함께 치러진 '제1회 죽정 효 한시백일장'도 앞으로 지속적으로 개최되어 효를 알리는 중심 역할을 하게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봉행한 5위는 다음과 같다.
▲최유경(1343~1413)
최유경은 고려 충혜왕 4년(1343) 충청북도 청원군 북이면 대율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려 말에 이어 조선 초기 최고의 건축 전문가로써 전라도 도관출척사 시 전주 풍남문을 세우고 경기도 도관출척사 때에는 우리나라 국보1호인 숭례문을 축성하였다. 그는 전주최씨의 시조 완산백 최순작의 7대손으로 전주최씨를 중흥시킨 중시조이이다. 시호는 평도공으로 태종 때 청백리에 녹선(錄選)되었고 세종 때 효자정려를 하사받았다. 1406년(태종) 참찬의정부사가 된 뒤 스스로 사임을 하고 진천군 초평면 죽정마을로 내려와 죽정(竹亭)이라 부르며 한가로이 여생을 보냈다.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은 최유경이 한성판윤 치사 후 진천에 살다가 죽은 후 그의 아들들에 의해 용인의 자봉산 기슭에 묻혀 생긴 말이다. 그의 효행으로 청주, 진천, 천안에 효자정문이 세워졌고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산1번지의 진천 효자문에는 최유경, 최사흥 부자의 현판이 함께 보존돼 있다.
▲최사위(1362~1449)
고려 말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평도공 최유경의 큰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특하여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았고 아버지 평도공의 충과 효를 본받아 식견과 사려가 깊고 커서 예와 덕이 높아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도관좌랑, 풍해도관찰사를 거쳐 한성부 판윤 등의 관직을 맡았다. 부친이 타계하자 용인의 자봉산에 장사지내고 그 옆에 여막을 짓고 상기(喪期)를 마칠 때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곡배하며 시묘(侍墓)살이를 했다. 하늘도 그의 효성에 감복하여 가뭄에도 묘역의 풀이 마르지 않았고 들짐승도 근처의 풀을 뜯지 아니하였다 한다.
여막을 짓고 부친을 위해 3년간 생전에 시묘하던 처인구 공세동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겨 죽어서도 효를 하였다. 부친 사후 한 번도 부앙(俯仰)하지 않고 효자로 추천하려 했으나 불초(不肖)가 어찌 부친과 같이 받을 수 없다고 하여 사후에 효자 정려문이 내려졌다.
▲최사립(1505~?)
본관은 전주.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의 6대손으로 배천군수를 지냈다. 그는 돈령부첨정을 지낸 최결(崔潔)의 아들로서, 지행(志行)이 뛰어나고 경학(經學)에 밝았을 뿐만 아니라, 특히 부모를 모심에 있어서 한결같이 『소학(小學)』에 준거하였다. 최사립은 어머니의 병이 몹시 심해지자 손가락을 단지해 5년을 더 사시게 했고, 모친이 돌아가신 후 홀로 남은 부친을 기쁘게 하고자 친척 일가를 불러 모아 날마다 술과 고기를 대접했다.
한편, 최사립에 대한 기록은 『중종실록』 79권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등에 실려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한겨울에 병석에 있는 부친이 칡꽃을 먹으면 기력이 회복될 것 같다는 말에 밤낮으로 하늘에 치성하니 하늘도 감동해 외를 엮은 칡이 소생하여 집 벽을 뚫고 덩굴이 무성히 뻗더니 꽃이 만발하게 되어 부친의 병을 완쾌시켰다"고 전해오고 1618년 임금의 명에 의해 간행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는 "그의 아버지가 임종할 적에 수박을 먹고 싶어 하였으나 구할 수가 없어 최사립도 생을 마칠 때까지 먹지 않았고, 수박을 보면 대번에 서글프게 애통해 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임금께서 그 효심을 크게 상찬하여 중종 9년에 특별히 참의(參議)벼슬에 추증하였다. 현재 최사립효자정문은 과천시 향토유적 제3호로 지정돼 있다.
▲최덕린
조선 선조 때의 효자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준경(峻卿)이다. 배천군수 효자 사립의 장남으로 한성부윤을 지낸 최사위의 6대손이다. 효성이 지극한 가문에서 출생하여 동생 덕순(德峋)과 함께 우애가 돈독하고, 아버지를 모심에 극진하였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섬기는 도리를 다하여 봉공의 예를 다함에 남다른 바 이는 집안의 가풍에서 연유된다 하겠다.
벼슬은 통정대부 호조참의 행 조산대부 전함사(典艦司) 별좌(別坐)에 이르렀으며, 인조 대에 효성으로 인하여 정려(旌閭)가 세워졌다. 정려는 아버지인 사립, 동생인 덕순과 함께 효종 대에 세워진 충남 천원군 입정면 용정리에 있는 전주 최씨 12효정에 보관되어 있다. 묘는 과천현 막계리에 있었으나 신도시개발로 인하여 1979년 용인군 남사면 완장리로 이전했다.
▲최덕순
조선 선조 때의 효자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탁경(卓卿), 배천군수를 지낸 사립(斯立)의 아들이다. 아버지와 아울러 효를 가업으로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형 덕린(德嶙)과 함께 우애가 돈독하고, 아버지를 모심에 극진했다. 그리하여 조정에서 그의 효성을 가상하게 여겨 여러 차례 등용하고자 했으나 만약 벼슬길에 오르면 효를 다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거듭 사양하였다.
그러나 왕의 특지로 양천(陽川)군수를 제수받고 이어 충주판관(忠州判官), 가평(加平)군수를 거쳤다. 그는 임지에 부임할 때마다 백성을 다스리는 데 온 정성을 다해 치적을 쌓았으며, 송사를 공정히 하고, 병기 등을 수리해 적의 침입에 대비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8년 여에 걸친 임진왜란을 당하여서도 그가 다스린 마을만큼은 매년 조정에 공물을 바침에 있어 누락됨이 없었다. 이후 난이 평정되자 조정에서 그의 공적을 기리어 김해 양양의 도호부에 제수하려 했으나 끝내 사양했다.
중종 때에 그의 효성으로 인해 승지(承旨)에 특별히 추증하고 정려(旌閭)를 세웠는데, 현재 충남 천원군 입정면 용정리에 있는 전주 최씨 12효정에 보관돼 있다. 묘는 과천현 막계리에 있었으나 신도시개발로 인하여 1979년 용인군 남사면 완장리로 이장했다.
김영근 성균관장이 한시백일장 장원으로 선정된 장성집 씨에게 상장을 수여하고 있다.
행사를 마치고 내빈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심규순(국가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이수자) 씨가 헌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