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해설사가 소수서원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소수서원 탐방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선비촌 탐방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성균관유도회 도계지회(지회장 김용학)는 지난 5월25일 도계지회 유도회원의 단합과 친목을 목적으로 하계유계 겸 유적지 탐방을 실시했다.
김용학 지회장의 인솔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삼척향교 정수철 전교, 최승교 원임 전교, 문형달 전 지부회장, 원로 등 유도회원 70여 명이 함께했으며, 영주 소수서원, 선비촌 과 부석사,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을 탐방했다.
소수서원은 풍기군수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 선생이 고려 말 유현(儒賢)인 안향(安珦) 선생 연고에 중종 37년(1542년) 사묘(祠廟)를 세워 안향의 위패를 봉안, 다음해 학사(學舍)를 건립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했다.
명종 5년(1550년)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이 풍기군수로 재임하면서 나라에 건의, 왕 으로부터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사액(賜額)을 받고 최초 사액서원이다.
이곳에 주향(主享)된 회헌(晦軒) 안향(1243~1306)은 도첨의 중찬(都僉議 中贊)을 거치며 문교진흥에 전력한 한국 최초의 주자학자이다. 동방 신유교(新儒敎)의 비조(鼻祖)이며 경내에는 국보와 보물들이 전시돼 있다.
그리고 백운동(白雲洞) 경(敬)자 바위에 새겨 있는 백운동 글씨는 퇴계 이황 선생 글씨로 전해온다. 경(敬)자는 신재 주세붕 선생이 써서 색을 입힌 것으로 신재집에 전해오며 유교의 근본사상인 경천애인(敬天愛人)의 머리글자이다.
세조 3년(1457년) 10월 단종 복위 거사 실패로 이 고을 순흥 사람들은 '정축지변(丁丑之變)'이라는 참화를 당했다. 그때 수많은 사람이 죽어 피가 죽계를 따라 10여리 흘러가 멎은 곳을 지금도 “피 끝” 마을이라고 부른다.
참화에 희생된 도호부민의 시신이 죽계천에 수장되어 밤마다 억울한 울음소리를 듣게 되자 당시 주세붕 풍기군수가 각(刻)한 글씨에 영혼을 달래기 위해 붉은 칠을 하고 정성들여 제사를 지내니 그 후 울음소리가 그쳤다고 하는 전설이 지금도 전해오고 있다.
김용학 회장은 "바쁜 농사철인데도 시간을 내어 많이 참석해 준 도계지회 유도회원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탐방행사에 끝까지 수고한 이태년 총무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