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어사 리포트

독립투사 남정성(南精性) 선생 건국훈장 애족장 서훈

독립투사 남정성 선생의 영정과 건국훈장 애족장 경북 울진군 매화면 금매1리 출생인 독립투사 남정성(南精性, 異名 : 南精奎) 선생이 2018년 8월15일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서훈했다. 정부는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하며 민족자존의 기치를 높이 세우신 남정성 선생의 독립운동 위업을 기렸다. 지난 8월15일 부산시민회관에서 광복절 73주년 행사시 오거돈

장부중 2018. 9. 10.

독립투사 남정성 선생의 영정과 건국훈장 애족장

 

경북 울진군 매화면 금매1리 출생인 독립투사 남정성(南精性, 異名 : 南精奎) 선생이 2018년 8월15일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서훈했다.

정부는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하며 민족자존의 기치를 높이 세우신 남정성 선생의 독립운동 위업을 기렸다. 지난 8월15일 부산시민회관에서 광복절 73주년 행사시 오거돈 부산시장으로부터 차남인 남영환(69세)씨가 훈장증 및 애족장을 받았다.

지정 사유에는 남정성 선생은 당시 향유계원 22명 중 19명에 대해서는 1982년 광복절에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고 1991년 건국훈장을 추서했으나 최연덕, 주한석 씨는 6.25전쟁 전후에 월북했다.

남정성 선생은 해방후 창유계의 또 다른 목표였던 사회주의 운동을 계속하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자유대한민국으로 전향하면서 ‘보도연맹’에 가입했다.

그 후 1950년 6.25전쟁 와중에도 자유당 정부의 좌익용공분자 처결과정에서 보도연맹 및 단순혐의자까지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고, 1950년 7월5일 북상하던 아군을 울진군 죽변면 죽변등대 옆에서 남정성 선생을 비롯한 수십명을 총살하였고, 무고한 양민까지도 수백인을 학살했다.(2009년 과거사진상위원회에서 조사사항으로 기록)

특히 1991년부터 남정성 선생의 후손들이 정부에 유공자 신청을 계속했으나, 정부는 보안법이라는 잣대로 지금까지 미루어 오다가 68년만인 올해 서훈하게 됐다.

이에 따라 9월9일 남정성 선생의 고유제에는 손자인 남상균(64.전 은행 지점장, 울진향교 의전장의) 씨가 초헌관, 아헌관에는 전광순 광복회 회장, 종헌관은 윤근오 울진향교 전교가 선임되어 제향을 사렸다.

이날 가족, 문중, 지인 등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남남씨 목사공파 종중의 장손인 남상균씨는 고유문을 조상들에게 상신했다.

"조부님께 고하나이다. 할머니의 눈은 항상 슬펐습니다. 어릴적 철모르고 할머니 슬하에서 뛰어놀던 저는 그 슬픔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독립운동에 동분서주하던 남편 뒤바라지, 옥바라지, 종갓집 종부로서 고단한 삶을 한 여인으로서 원했던 따뜻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며, 두살바기 아들을 남겨놓고 36세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남편의 죽음은 청천벽력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할머니의 고단한 삶은 또 다른 독립운동의 한 단면이 아닐가요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제는 목 놓아 외쳐봅니다. 할머니! 너무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이제는 이승에서의 모든 일들을 내려 놓으시고 평안히 잠드소서...

아버님께 고하나이다!

조부님의 명예회복을 위해 평생을 노력하셨으나 원을 이루지 못하고 애통하게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연좌제 등 시대적인 상황에 상대적인 피해와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꿋꿋하게 가정을 지켜주신 아버님, 이제 조부님의 훈장을 아버님의 영전에 함께 바치오니 해원하시고 평안히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