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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비문' 첫 발견

1848년(헌종14) 추사 김정희가 쓴 묘비 : 김용징(제주향교 교수 역임) 성균진사의 부친 김봉철 비문 전면(제주시 애월읍 곽지리 산1) 제주 지역 최초로 추사 김정희 선생이 서민에게 비문(碑文)을 써준 것이 있다고 12월10일 한국추사체연구회 제주특별자치도지부 강평환(제주향교 서독유사) 회장이 밝혔다. 강평환 회장과 김용징 성균진사의 5대 장손인 제주향

김익선 기자 2018. 12. 12.

 

1848년(헌종14) 추사 김정희가 쓴 묘비 : 김용징(제주향교 교수 역임) 성균진사의 부친 김봉철 비문 전면(제주시 애월읍 곽지리 산1)

 


 

제주 지역 최초로 추사 김정희 선생이 서민에게 비문(碑文)을 써준 것이 있다고 12월10일 한국추사체연구회 제주특별자치도지부 강평환(제주향교 서독유사) 회장이 밝혔다.

 

강평환 회장과 김용징 성균진사의 5대 장손인 제주향교 김익선 사무국장은 1848년(헌종14) 4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정헌(靜軒) 김용징(金龍徵: 1809-1891) 성균진사와의 학문적 친교로 정헌 선생의 부친 김봉철의 비문을 써 주었다고 밝혔다.

 

정헌 선생은 제주·정의·대정 세 곳 향교의 교수(敎授)로 30여 년간 봉직하면서 전도에 걸쳐 장령 김명악(金命岳) 등 수많은 후학을 양성해 당시 제주 사림(士林)의 영수(領袖)로 추앙받던 학자이다.

 

특히 1854년(철종5) 목인배 목사가 제주향교에 계성사(啓聖祠)를 창건할 때 현판을 직접 쓰고 게시했다.

 

김익선 사무국장은 "정헌 김용징 진사와 추사 김정희 선생과의 학문적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추사 김정희 선생의 제자이자 제주의 대표 문인이던 매계(梅溪) 이한진(李漢震) 선생이 조천읍 신촌에서 글공부하러 ‘대정으로 가는 도중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1643번지에 있는 김용징 진사의 집에 들러 하루 밤을 지내면서 한시 1편을 남겼는데’ 이 한시로 보아 서로 알고 교류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5대 장손 김익선 사무국장에 따르면 비석 전면은 글씨를 덧대서 음각으로 새겼고, 비석 뒤편에 새긴 글은 워낙 글씨가 좋아서 원본 그대로 170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후면 글씨는 정헌 선생 본인이 직접 썼다고 했다.

 

비석 전면에는 ‘학생김공봉철지묘(學生金公鳳喆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한편, 강평환 회장은 “추사 김정희 선생이 1848년 10월 제주도에서 유배생활(1840. 9 – 1848. 10)을 마치는데, 그 끝자락에 이 글을 쓰고 갔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며 “특히 이 비석에 새겨진 글은 해서체로 글자마다 강약이 돋보이고 세로의 길이가 길어 맵시 있게 보일 뿐 아니라 부드러움 속 강함이 느껴져 예술적인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1848년 4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비문 후면(김용징 성균진사의 부친 김봉철 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