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채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참례객들이 추모제를 지켜보고 있다.
(사)송재서재필기념사업회(이사장 김중채)는 4월8일 오전 11시 전남 보성군 소재 서재필기념공원에서 김경탁 전남동부보훈지청장을 비롯한 각급 기관장과 추모객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송재 서재필 선생 탄생 155주년을 기념하고 서거 68주기를 추모하는 '제6회 송재문화제'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국민의례, 애국가제창, 내빈 소개, 약사 및 경과보고, 추모헌정공연, 헌공다례, 헌화 및 분향, 추모기도 및 독경, 추모헌시 낭독, 추모사, 감사장 수여(본 법인 이사장,심헌문화재단 이사장, 광주전남기자협회 회장), 김중채 이사장 인사말, 오찬 순으로 진행됐다.
유청 광주전남발전협의회 사무처장이 진행을 맡은 이날 행사에서 제례의 초헌관은 서대석 광주광역시 서구청장, 아헌관은 이남섭 성주이씨하은공파종회회장, 종헌관은 손동선 다실종합건설대표, 독축은 김중채 이사장, 집례는 이현호 광주향교 의전수석장의가 맡았다.
18세의 나이로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서재필 선생은 갑신정변 후 미국으로 망명해 우리나라 최초의 양의사가 됐으나, 1894년 7월 사면령으로 1895년 12월 귀국했다.
1896년 4월 독립신문을 창간해 국민계몽운동을 전개했고, 1896년 7월 독립협회를 창립해 독립문을 세웠다. 1919년 4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교고문으로 추대됐고, 1925년 호놀룰루의 '범태평양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일본 침략의 부당성을 폭로하고 대한의 독립을 요구했다.
1951년 1월 서거한 서재필 선생에게는 1977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으며, 1994년 미국에 모셔진 유해는 봉환되어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서재필 선생이 태어난 문덕면 생가 앞에 1991년 기념공원 조성사업을 시작해 2003년 준공했다. 기념공원에는 선생의 정신이 살아있는 독립문을 재현하고 유품 8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김중채 이사장은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더욱 더 송재 선생의 남달랐던 애국심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해마다 하는 송재문화제 늘 참석해 주시는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