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헌관을 맡은 원창목 원주시장이 헌작을 한 후 축관을 맡은 정철화 장의가 축문을 읽고 있다.
외적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의 숭고한 호국정신이 깃든 곳에서 원주시가 후원하고 원주문화원이 주최한 충렬사 제례가 이문희 도의원 등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3월26일 충렬사(원주 행구동)에서 거행됐다. 초헌관에 원창묵 원주시장, 아헌관에 이상현 의회의장, 종헌관에 박순조 문화원장이 맡고 문중대표 세 분이 헌작을 했다. 국악이 은은히 울려퍼지는 가운데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원주향교 장의들은 제례에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
충렬사는 원충갑, 김제갑, 원호의 사당으로 원주시향토유적 제2009-1호이며 원주시 행구동 402-3에 소재하고 있다. 향공진사 원충갑은 1290년 원나라 합단적이 양평을 점령하고 원주의 치악산 영원산성을 공격하자 원주 사람들과 힘을 합쳐 이들을 물리쳤다. 이로부터 합단적은 예봉이 꺽여 여러 고을에서도 굳게 방어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러한 공로로 원주에 부과되던 각종 부역과 잡공이 3년 동안 면제됐다.
강원도조방장 원호는1592년 5월 여주 신륵사에서 왜적을 크게 무찌르고 패주하는 적을 구미포에서 섬멸하여 서울로 향하던 왜적의 진로를 차단하는 전공을 세웠고 이러한 승첩으로 경기·강원 양도조방장 겸 여주목사로 임명되었다. 이후 1592년 8월 왜적에 의해 철원·평강·김화 등이 유린당하자 병사를 이끌고 김화에 이르러 분전하였으나 왜적의 형세를 당할 수 없어 왜적에게 굴복되기 전에 절벽 아래로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원주목사 김제갑은 왜적의 적장 모리길성이 원주를 침입하자, 병사와 고을 백성들을 모아 영원산성에서 결전을 펼쳤으나 중과부족으로 함락되기에 이르렀다. 김제갑은 항복할 것을 강요하는 왜적에게 굴복하지 않다가 끝내 죽음을 당하였고, 그의 작은 아들 김시백 또한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싸우다가 전사하였으며, 비보를 들은 부인 전주이씨도 1592년 8월25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제갑 목사와 아들 그리고 부인은 충성과 효도와 정렬로서 순절하여 충·효·열의 표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