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어사 리포트

해남향교, 명량대첩 공신 오극신 등을 모신 용지사 향사제 봉행

참제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해남향교(전교 장성년)는 2022년(임인년) 각 원사 제향을 봉행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9월5일 해남군 계곡면 사정리 용지마을에 있는 용지사(龍池祠) 향사제를 봉행했다. 이날 용지사(원장 임창길) 제향은 동복오씨 문중의 단제 참의공 오극신 등 4위 충신의 공덕을 기리는 향사제로 장성년 해남향교 전교, 임형기 해남군유도회

손은수 기자 2022. 9. 6.

 

 

참제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해남향교(전교 장성년)는 2022년(임인년) 각 원사 제향을 봉행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9월5일 해남군 계곡면 사정리 용지마을에 있는 용지사(龍池祠) 향사제를 봉행했다.

 

 

이날 용지사(원장 임창길) 제향은 동복오씨 문중의 단제 참의공 오극신 등 4위 충신의 공덕을 기리는 향사제로 장성년 해남향교 전교, 임형기 해남군유도회장이 참제한 가운데 해남향교에서 파견된 제관들이 석전대제에 준하는 의식을 갖추고 엄중히 향례를 진행했다.

 

제관으로는 초헌관에 임권진 원로유림, 아헌관에 박동선 을미장의(협)회장, 종헌관에 손은수 청년유도회장, 집례에 윤인식 해촌서원 색장의, 축관에 방춘서원 문임, 찬인에 박성기 임인장의, 제집사에는 오길준 동복오씨 본손 등 후손들이 참제했다.

 

이날 제향은 먼저 초헌관이 분향하고 폐백을 올리는 전폐례를 시작으로 초헌관이 첫 잔을 올리고 축이 축문을 읽는 초헌례, 아헌관이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례, 종헌관이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종헌례, 그리고 초헌관의 음복례(飮福禮), 망예례(望燎禮) 순으로 진행됐다.

 

한편, 대원군의 명으로 훼철되었던 용지사는 1948년 재건립해 참의 단재(丹齋) 오극신(吳克信, 1554~1597), 아들인 장령 오계적, 조카인 용호 오홍적, 그리고 해금(海錦) 오달운(吳達運, 1700~1748) 등 4위를 배향하고 있다.

 

오극신은 임진왜란 때 순절해 구국의 충신으로 명성을 떨쳤고, 사후 병조참의에 추증됐으며 선무원종공신에 훈록됐다. 오극신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아들 오계적, 조카 오홍적과 함께 의병하여 이순신 장군 막하에서 명량해전에 출전해 세계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명량대첩의 공신 가운데 공신으로 이름을 올렸으며 안타깝게 명량해전의 승리를 앞에 두고 아들 계적과 함께 전사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한 이순신 장군은 ‘나의 오른팔을 잃었다’며 통곡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오극신의 아들 오계적은 명량해전에서 무기가 바닥을 들어내자 돌과 창 등으로 난파선을 탈출해 육지에 오르는 일본 수군을 섬멸하는 과정에서 장렬하게 전사했으며, 용호공 오홍적은 오극신의 조카로 한성시에 장원급제한 문무를 겸비한 선비로 역시 오극신을 따라 임진왜란에 참전해 흑석산 전투 때는 돌무더기를 산 곳곳에 쌓아두고 아래로 글려 일본군을 섬멸시켰다는 일화로 또한 유명한 인물이다.

 

해금 오달운은 1740년(영조 16) 문과에 급제하여 찰방을 지냈는데, 벼슬에 나가기보다는 실용 학문 연구에 진력하여 문집 ‘해금집’이 남아 있다.

 

용지사는 앞면 3칸, 옆면 1칸, 맞배지붕이며 삼문과 기와 담장으로 둘러 있다. 사우 옆에는 영모재가 있는데, 앞면 5칸, 옆면 1칸 규모로 팔작지붕이다. 용지사는 매년 음력 8월10일 해남향교 향사 이외에도 음력 10월10일 동복오씨 사소공파종중에서 대종회 향사를 하고 있다.

 

임창길 원장은 제향을 마치고 공포식에서 “오늘 참제하신 제관을 비롯한 본손들의 수고에 감사드리며, 오극신 장군 등 4위의 선현들의 덕이 모쪼록 모든 후손들에게 전해져 더욱 흥하고 강건한 오씨 문중과 발전하는 후손들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 제관 여러분의 가정에도 만사형통이 깃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