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양정사 전경
집사분정을 하고 있다.
삼상향을 하고 있다.
독축하고 있다.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 1517~1563)) 탄신 500주년 기념 사업회'가 4월10일 오전 영주시 풍기읍 금계로에 있는 금양정사 옆 욱양단소(욱양서원)에서 퇴계 이황과 금계 황준량을 기리는 춘향제를 봉행했다.
욱양단소는 1987년 욱양서원의 자리에 금계호(욱금지)가 들어서 수몰되면서 인근에 있는 금양정사 왼편에 단을 조성하고 두 분의 큰 선비를 기리는 장소이다.
금양정사는 금계가 창건한 학교로서 퇴계가 그 수호를 특별히 당부한 곳이다. 금계는 퇴계와 함께 풍기의 욱양서원과 신녕의 백학서원에 종향됐으나 양 서원이 모두 사액을 받지 못했고, 한편으로는 조정의 논의로 출향과 복향을 되풀이했다.
퇴계는 금계의 사후 3년 뒤 금계가 짓다가 완성하지 못한 금양정사에 들러 금계를 애도하며 수령과 선비들에게 금양정사의 수호를 당부하는 글을 쓰고, 금계의 사후 30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경양 류운용은 금양정사에 들러 퇴계의 학문을 이어받았을 금계를 애도하며 퇴계의 글에 발문을 적었다.
금계는 서른도 미치지 못해 노성한 선비 신재 주세붕과 도동곡을 둘러싼 경기체가 논쟁을 벌이고, 소수서원이 초시 급제자로 입학 자격을 제한한 방침을 비판하면서도 황효공, 안현, 정준, 유경장, 안공신과 함께 사문입의를 정해 소수서원의 운영 방안을 마련했다.
금계는 감군어사와 추생어사로 나아가 민정을 살핀 뒤, 신녕현감으로 부임해 백성들의 빚 문서인 부채문건을 불살랐고 신녕향교를 증수하고 백학서원을 창건했으며, 단양군수 때는 단양진폐소의 상소로 피폐한 단양을 소생케 하고 단양향교를 이건 증축했다.
성주목사로 나아가서는 영봉서원을 완공하고, 성주향교를 증수했으며 공곡서당, 녹봉정사를 짓는 외에도 회암서절요를 최초로 간행해 성리학 발전의 기폭제 역할을 하는 등 그 외에도 후세에 사표가 될 시와 문장들을 무수히 남겼다.
금계가 죽자 퇴계는 '선생(先生)'이라고 그의 명정(銘旌)에 썼는데, 스승이 제자에게 곧바로 선생이라 일컬은 것은 선비 세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금계는 소수서원과 큰 인연이 있었음에도, 따로 욱양서원을 설립하고, 욱양서원이 소수서원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했던 당대의 걸출한 인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금계 황준량 탄신 500주년 기념 사업회는 오는 9월22일 영주시민회관에서 '금계 황준량 선생 탄신 500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고 10월14일에는 금계종택 내 금계사당에서 선생 탄신 5백주년 고유제를 거행하는 등 금선정 옆에서 선생 탄신 5백주년 기념비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