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향을 위해 헌관들이 서립하고 있다.
김돈곤 청양군수가 초헌례를 올리고 있다.
축문를 낭독하고 있다.
제향을 마친 후 행사에 참석한 관계자와 초등학교 학생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홍주의병 안창식 선생과 안병찬·안병림부자, 안향식 선생의 곧은 충의정신을 기리기 위한 제향이 지난 4월26일 오전 11시 청양군 화성면 신정리 청대사에서 김돈곤 청양군수, 서정미 충남서부보훈지청장 등 보훈단체회원, 백지현 청양향교 전교, 이철학 홍주향교 전교 등 유림 및 문중, 합천초등하교 4 ~5학년 학생 등 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됐다.
이날 제향의 초헌관은 김동곤 청양군수, 아헌관은 서정미 충남서부보훈지청장, 종헌관은 백지현 청양향교 전교가 맡았다.
안창식 선생은 1895년 의병을 인솔해 홍주읍성에 입성했으나 이승우의 배반으로 패해 체포되자 옥중에서 자결을 꾀하기도 했다. 선생은 을미의병을 주도한 죄목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으나 고종의 명으로 석방됐으며, 1906년 민종식의 병오홍주의병 참모로 활동하다 옥고를 치른 뒤 다시 1919년 파리장서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안병림 선생은 민종식의 병오의병 활동 당시 참모사와 돌격장으로 활동했으며, 민종식 병오의병의 참모사로 활동하다 체포돼 9개월 만에 석방됐다.
안병찬 선생은 1854년 홍주향교 교임(校任)으로 재직할 때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이승우와 함께 민요(民擾)를 평정하는 일을 담당하고 향약을 창설했으며 강화를 열어 향리(鄕里)를 교화시켰다. 한편 1895년과 1906년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홍주의병의 핵심인물로 의병을 모집해 전투에 앞장섰으며, 3.1운동 당시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했다.
안항식 선생은 1906년 5월 의병을 이르켜 홍주읍성을 점령한 왜적을 격파하고 성을 탕환하는데 혁혁한 전과를 기록했으며, 일본헌병에 의해 대마도로 유배돼 옥고를 치른 후 4년만에 귀국했다.
청대사(靑垈祠)는 청양군 향토유적 제40호로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로 지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