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관들이 사당으로 오르고 있다.
헌관이 봉작으로부터 헌작할 잔을 받고 있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장흥 강성서원(전라남도 문화유산) 숭덕사 사당에서 지난 10월11일 문익점(1331-1400)선생과 문위세(1534-1600) 선생 향사가 전라도 유림 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고 경건하게 봉행됐다.
강성서원은 삼우당(三憂堂) 문익점와 풍암(楓菴) 문위세 선생을 국가에서 인정해준 사액서원으로 옛 이름은 월천사(月川祠)라 했다. 원래는 임진왜란 때 전라좌의병군 장흥의병장으로서 영남수복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우리나라 제갈공명이라 칭했던 풍암 문위세(퇴계 이황 선생 수제자) 선생의 공덕을 흠모해 전라도 유생들이 1644년(인조 22)에 옛 풍암서당에 제단을 설단해 제향하고, 월천사(풍암서원)이라 이름하고 청소년을 교육한 것에서 비롯됐다.
1702년(숙종 28)에 성균관의 유생들과 영남과 호남의 유생 수백 명이 풍암 선생의 덕행을 흠모해 사우를 건립하고 사우로서 절차와 규모를 새로 마련해 1734년(영조 10)에 삼우당 선생을 주벽으로 추배해 매년 음력 9월9일 중양절에 향사하고 있다.
이날 제관은 ▷초헌관 최흥열(광주광역시향교재단 이사장) ▷아헌관 위수환(장흥 유교학당 회원) ▷종헌관 윤영규(장흥유림) ▷진설 문기주(장흥유림) ▷집례 김집중(광주광역시 유림) ▷공축 조연환(광주광역시 유림). 김용찬(장흥 유림) ▷사준 문세엽 ▷봉향 문병철 ▷봉로 문천열 ▷봉작 문영균 ▷전작 문홍수 ▷찬인 문병재 ▷서점 강대욱(강성서원 원장)이 맡았다.
전통 유교 제례의식에 따라 집례 김집중(前 광주광역시 문화국장 역임)의 창홀로 초헌관이 제수(祭需)진설을 살피는 점시에 이어 ▷삼상향 ▷전폐례 ▷초헌례 ▷독축 ▷아헌례 ▷종헌례 ▷종헌례 ▷음복례 ▷철변두 ▷망요례 순으로 1시간 넘게 진행했다.
강성서원은 1785년(정조 9) 2월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 1720-1799) 선생이 풍암 문위세 선생의 행장을 짓고, 전라도 유생 김상추(金相樞)와 문취광(文就光), 문사한(文史漢) 등 600여 명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유생들이 문익점과 문위세의 공덕을 흠모하여 사액해 줄 것을 청하는 청액소(請額疏)를 올려 조정에서 문익점 선생의 봉작인 강성군(江城君)의 강성(江城)이라는 액호를 받았다.
풍암 문위세 선생을 1799년(정조 23) 8월에 유생 임오원 등 3도(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유생들이 상소해 병조참판 증직이 내려지면서 사당에 영구하게 제사를 모시도록 부조묘(不祧廟)를 허락해 매년 음력 10월5일에도 향사한다.
풍암 문위세 선생 신도비는 이조판서를 지낸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1627-1704) 선생이 지은 비문으로 1700년에 풍암 선생이 일생을 마쳤던 유치면 늑용리(현재 장흥댐 수몰) 마을 앞에 세웠으나 남인들의 정치적 몰락과 연관되어 매몰되는 파란을 겪은 후 1812년에 이조판서 황경원(黃景源)이 지은 비문을 류운제(劉運濟)의 글씨로 강성서원(당시 유치면 늑용리 655번지)에 세웠는데 2002년 장흥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돼 현재 위치(유치면 조양리 677-5번지)로 강성서원과 풍암공 제각을 2004년에 옮겨 신축했다.
또한, 풍암공 선생은 1833년(순조 33)에 도원수 권율 선생과 함께 나주시 충장사에 위패를 봉안하고 있으며, 고종 임금 때 금산 금곡사에 체향돼 매년 향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