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어사 리포트

해남향교 향사, '미산서원'을 찾아서

여흥민씨 부조묘 해남읍 진산인 금강산에서 뻗어나간 산줄기가 갈라져 북쪽과 남쪽에 두 개의 만대산(萬臺山)이 솟구쳤는데 강원도 금강산은 1만2000봉, 해남의 금강산은 두 개의 만대(萬臺), 즉 2만 봉을 거느린 산으로 사랑을 받는다. 북한의 금강산에 버금가는 풍경 때문에 금강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금강산을 동경해 그렇게 불렀는지는 명확히 단정 못하지만

손은수 기자 2025. 1. 26.

 

여흥민씨 부조묘

 


 

해남읍 진산인 금강산에서 뻗어나간 산줄기가 갈라져 북쪽과 남쪽에 두 개의 만대산(萬臺山)이 솟구쳤는데 강원도 금강산은 1만2000봉, 해남의 금강산은 두 개의 만대(萬臺), 즉 2만 봉을 거느린 산으로 사랑을 받는다.

 

북한의 금강산에 버금가는 풍경 때문에 금강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금강산을 동경해 그렇게 불렀는지는 명확히 단정 못하지만 불교의 금강경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다.

 

금강산은 금강저수지에서 금강골을 경유해 정상을 오를 수 있고 구교리 미암바위, 형제바위 길을 따라서도 오를 수 있다.

 

금강산 너머에는 마산면 장촌리가 있는데 유명한 여흥민씨 부조묘에는 민신(閔伸), 민보창(閔甫昌), 민보해(閔甫諧), 민보석(閔甫釋) 등 여흥민씨 4부자가 배향돼 있고 미암사거리 뒷산 언저리에 이들 4부자를 배향하고 있는 미산서원이 있다.

 

미산서원은 이들 4부자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해남향교에서 매년 향사제를 봉행하고 있다.

 

해남읍 서림공원 내에도 순조 임금의 명에 따라 이들 4부자의 충절을 기리는 사충정려가 세워져 있다.

 

민신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호는 돈암이다, 문종 때 병조판서를 지내고 1453년에 이조판서가 되었으나 김종서 등과 함께 어린 단종을 보호하기 위해 수양대군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세 아들과 함께 피살당했다. 정조 때 관직이 회복, 영의정에 추증되고 삼중신(三中臣)으로 불렸다. 아침재는 부임한 해남 사또가 아침마다 여흥민씨 가(家)에 인사하러 간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민신과 그 아들들이 멸문에 가까운 일의 사실을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보면 당시 난신전(계유정난에서 죽음을 당한 신하의 가솔들은 한명회 등 수양대군 측 신하에게 노비로 줌)에는 ‘민신(閔伸)의 아내 우비(禹非)·딸 산비(山非)는 대호군(大護軍) 안경손(安慶孫)에게 주고...민보흥(閔甫興)의 아내 석비(石非)...판군기감사 김질에게...민보창(閔甫昌)의 아내 두다비(豆多非)...는 우의정(右議政) 이사철(李思哲)에게 주고...’ 라고 지금은 상상도 못하게 끔찍하게 적고 있다.

 


 

 

미산서원

 


 

 

단종이 지금 깨어난다 해도 울고 갈 이 미산서원의 주인공 충정공 민신(閔伸), 최고의 충신이라 감히 말해 본다.

 

이토록 해남은 충절의 고장이다. 금강산 아래 여흥민씨 부조묘, 미산서원, 사충정려 등 관심 없는 이들에게는 한갓 옛이야기일 따름이고, 지금까지도 그저 그 가문의 아픔으로 여겨져 버린 충정공 민신,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미 한 시대를 뛰어넘는 역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크다 하겠다.

 


 

 

해남 금강산에서 흐르는 물은 금강곡에 말없이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