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춘기 배산서원 석향례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헌관과 제집사가 새벽에 죽으로 차가워진 몸을 다스리고 있다.
제 참여자들이 따뜻한 죽을 맛있게 들고 있다.
삼헌관과 대축이 성복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집사와 참여자들이 상읍례를 하고 있다.
집례가 배산서원 석향례 분정표를 보고 호명하고 있다.
삼헌관과 제집사 및 참여자들이 문묘를 향해 계단을 오르고 있다.
제 참여자들이 문묘전에 도착해 서 있다.
참여자 모두가 문묘를 향해 사배를 하고 있다.
초헌관이 관수세수를 하고 있다.
초헌관이 대성지성문선왕 신위전에 삼상향을 하고 있다.
대축이 대성지성문선왕 신위전에 독축을 하고 있다.
삼헌관이 문묘전에 사배를 올리고 있다.
헌관 이하 재위자가 사배를 올리고 있다.
삼헌관과 대축 집례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도동사 전에 석향례 분정표가 걸려 있다.
초헌관이 알자의 인도로 도동사에 오르고 있다.
사준이 준소를 향해 가고 있다.
준소에서 봉작이 잔을 받아 초헌관에게 드리고 있다.
도동사 전에 모든 참여자가 도열해 있다.
축관이 폐백과 축을 불사르는 망료회를 행하고 있다.
문묘와 도동사에서 석향례를 마치고 서계로 내려오고 있다.
서계로 내려오는 유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강유위 선생께서 쓰신 배산서당 휘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배산서원(경남문화재 제51호)은 지난 3월31일 춘기 석향례(釋享禮)를 봉향(奉享)했다.
하루 앞날(3월30일) 오후에 열린 입재식(入齋式)에서 원장 허권수 박사(동방한학연구원 원장)와 원임 동방한학연구원 김종진 문학박사가 주재하고 삼헌관과 대축, 집례와 제집사가 참석한 가운데서 상읍례를 시작으로 배산서원 원장 허권수 박사의 인사말과 헌관 및 집사분정, 분정기 작성, 축문 작성 등이 있었다.
이날 헌관과 제집사 분정을 보면 초헌관은 배산서원 실재 허권수 원장, 아헌관, 주창돈 유림, 종헌관 강상수 유림, 집례 류진희 유림, 대축 하만흥 유림, 찬인 강도범, 사준 이한조, 봉향 정인식, 봉로 이선규, 봉작 이영도, 이용섭, 진설 이병효, 찬창 이진수, 학생 정진수, 이봉호, 김병기 유림 등이 맡아서 진행토록 했다.
입재식을 마친 헌관 이하 제집사는 저녁식사 후 허권수 원장의 배산서원(培山書院) 유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배산서원의 역사는 짧지만 120여 년 전 국내 최초로 공자의 고향 중국 산동성 곡부(谷阜)에 있는 공부(孔俯)로부터 한국 공자교의 본산으로 승인받아 문묘를 짓고 공자교를 전파하기 위해 세운 민립 문묘가 있는 서원으로 세워졌으며 한국 유림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또한 당시 이병헌(李炳憲) 선생은 청말(淸末) 중국의 정치가이자 공양학자이신 강유위(康有爲) 선생과 수차례 만남 후 제자가 되었으며 많은 가르침을 받았는데 배산서원(培山書院) 강당에 있는 배산서당(培山書堂) 현판(懸板)과 강당 내부에 있는 강유위(康有爲)선생의 배산서당기 편액(培山書堂記 扁額), 상해(上海) 임시정부(臨時政府) 요인이며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셨던 백범 김구(金九) 선생께서 보내주신 축 배산서당(培山書堂) 낙성편액(落成扁額), 백암(白巖) 박은식(朴殷植) 선생께서 보내주신 배산서당 연기설(培山書堂 緣起說), 우천(藕泉) 조완구(趙琓九) 선생의 배산서당 축하(培山書堂 祝賀 편액(扁額), 성재(省齋) 이시영(李始榮) 선생의 축 배산서당 낙성사(祝 培山書堂 落成辭)편액(扁額), 등에 대한 유래에 대해 말했다.
밤이 깊어 입재식에 참석한 헌관을 비롯한 모든 유림들은 강당의 양쪽 방과 동재, 서재에 유숙하면서 서로간의 우의를 다졌다.
이튿날 3월31일 5시경 기상한 일행은 죽으로 요기를 한 다음 강당에서 환복 후 분정기 발표와 함께 모두가 이동해 대성지성문선왕 공자의 진영(眞影)을 모신 문묘에서 석향례(釋享禮)를 행한 다음 도동사(道東祠 : 退陶 李子, 南冥 曺子, 淸香堂 李源, 竹閣 李光友 선생을 모신 사당)로 이동해서 향례(享禮)를 마치고 강당으로 이동해 아침식사 후 일정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