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어사 리포트

하남정씨 대종회, 도남사 춘기제향 봉행

제집사가 사배하고 있다. 대축이 독축하고 있다. 아헌관이 헌작하고 있다. 초헌관이 음복례를 하고 있다. 참례자들이 제례를 행하고 있다. 제례 봉행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기공비 제막식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하남정씨 대종회(회장 정해범)는 4월8일(음력 3월11일) 오전 11시 무주군 안성면에 있는 도남사(道南祠)에서 황인홍 무주군수, 윤정훈 전라북

정경원 기자 2025. 4. 9.

 

제집사가 사배하고 있다.

 


 

 

대축이 독축하고 있다.

 


 

 

아헌관이 헌작하고 있다.

 


 

 

초헌관이 음복례를 하고 있다.

 


 

 

참례자들이 제례를 행하고 있다.

 


 

 

제례 봉행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기공비 제막식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하남정씨 대종회(회장 정해범)는 4월8일(음력 3월11일) 오전 11시 무주군 안성면에 있는 도남사(道南祠)에서 황인홍 무주군수, 윤정훈 전라북도 도의원, 이영희 무주군의회 부의장, 맹갑상 무주문화원장, 김판곤 무주향교 전교, 박금규 무주군 태권문화과장, 김일중 무주군 안성면장, 정만규 하남정씨 문장, 정해범 하남정씨 대종회장 등 종원, 일반 주민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봉행했다.

 

제향은 식전 행사로 국민의례, 분정기 발표, 대종회 수석부의장 내빈소개 및 무주군수 축사, 대종회장 인사에 이어 본 제례는 전폐례,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음복례, 철변두, 망예례 순으로 봉행했다.

 

제례는 초헌관에 김판곤(무주향교 전교), 아헌관에 맹갑상(무주문화원장), 종헌관에 윤정훈(전라북도 의원)이 제관으로 봉행했고, 집례는 정세열(41세손), 대축은 정해곤(38세손), 직일에 정진희(40세손), 알자에 정봉주(41세손), 봉향에 정기일(40세손), 봉로에 정창수(40세손), 봉작에 정명희(40세손), 전작에 정순기(39세손)가 맡았다.

 

도남사는 무주군 향토 문화유산 제16호로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별묘길 28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으로 1865년(고종 2) 하남정씨(河南程氏)의 별묘(別廟)로 창건됐다. 서원 철폐 때 사묘라는 이유로 훼철을 면하였고, 1922년 강당과 신도비를 세웠고, 1984년, 2023년 대대적인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도남사는 주향으로 태중공(太中公) 정향(程珦), 예국공(豫國公) 정호(程顥), 낙국공(洛國公) 정이(程頤) 삼부자를 모시고 있다.

 

삼부자의 영정은 1616년(광해군 8)에 경기도 과천에 사는 좌참찬 유간이 왕명에 의해 사신으로 중국 명나라에 갔을 때 명나라 신종황제는 송나라 때 하남정씨 선대 백작인 태중공과 명도, 이천 부자의 영정을 하사하며 정부자의 후손들이 고려에 낙향해 살고 있으니 그 후손들에게 전하라 해 그 영정을 모시고 귀국했다. 

 

그러나 하남정씨 후손을 찾지 못하고 270년간 가보로 모셔 오다 무주에 사는 후손 정락구가 유간의 후손 유기준을 친방해 향고와 태학관의 절차를 거쳐 1865년 5월에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에 대지를 마련하고 도남사를 세워 영정을 봉안하고 매년 음력 3월과 9월의 정일(丁日)에 향사하고 있다.

 

황인홍 무주군수는 “세계적인 성현이신 정명도, 정이천 선생을 모시는 제향이 우리 무주 도남사에서 거행됨을 축하한다. 오늘 행사가 엄숙하게 잘 진행되기를 바란다”라고 축사했다. 

 

이어 정해범 대종회장은 인사말에서 “황인홍 무주군수님을 비롯해 많이 참석해주신 내외빈께 감사드린다. 또 전국 각지에서 새벽부터 출발해 오늘 도남사 춘기 제향에 참석해주신 종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명도, 이천 선조님들의 유훈을 받들어 우리 후손들은 서로 화합하고 화목하게 지내기를 바란다. 그러면 우리 지역 문중이 활성화되고 대종회가 발전하리라 믿는다”라고 말했다.

 

제례 봉행 후 참석자 전원은 도남제로 이동해 임란공신(壬亂功臣) 충열공(忠㤠公) 억강(億綱) 기공비 제막식을 했다. 

 

충렬공 억강은 하남정씨 26세손으로 1592년 임진왜란 시 충북 옥천에서 창의근왕병(倡義勤王兵)에 의병으로 자진 입대해 옷깃에 살신성인(殺身成仁), 네 글자를 써 죽음을 맹세하며 왜적을 토벌했고, 금산에서 고경명 장군 부대의 패전 소식을 듣고 조헌과 영구의 예하 칠백여 의병과 금산전투에서 결사 항전하다 중과부적으로 전 의병과 같이 장렬히 순국 산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