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차은우 세금 논란과 현우진 재판이 묻는다…공인의 염치는 어디에 있나 [기자수첩]

얼마 전 지하철 안에서 낯익은 얼굴을 마주했다. 타고가는 내내 광고판에서 '메가스터디 수학 강사 현우진'이 나왔다. 지하철 객실 안 광고는 무심코 시선을 두게 되는 공간이다. 출근길 시민, 등교하는 학생, 학원가로 향하는 수험생들이 같은 칸 안에서 같은 광고를 본다. 입시철마다 지하철 안에는 이른바 ‘1타 강사’들의 얼굴과 문구가 걸린다. 수험생과 학부모에

김정기 기자 2026. 5. 19.

 

얼마 전 지하철 안에서 낯익은 얼굴을 마주했다. 타고가는 내내 광고판에서 '메가스터디 수학 강사 현우진'이 나왔다.

 

지하철 객실 안 광고는 무심코 시선을 두게 되는 공간이다. 출근길 시민, 등교하는 학생, 학원가로 향하는 수험생들이 같은 칸 안에서 같은 광고를 본다. 입시철마다 지하철 안에는 이른바 ‘1타 강사’들의 얼굴과 문구가 걸린다.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그 얼굴은 단순한 광고 모델이 아니다. 성적 향상, 합격 가능성, 불안 해소를 상징하는 일종의 약속처럼 소비된다.

 

그런데 그 광고 앞에서 기자는 잠시 시선을 거두기 어려웠다. 현우진은 현재 수능 관련 문항 거래 의혹으로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그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현직 교사들에게 금품을 건네고 수능 관련 문항을 제공받았다고 보고 기소했다. 현우진 측은 혐의를 부인하며 정당한 계약에 따른 거래였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직 유죄가 확정된 사안은 아니다.

 

따라서 단정은 경계해야 한다. 재판은 진행 중이고 최종 판단은 법원이 내릴 일이다. 다만 수능의 공정성을 둘러싼 의혹의 중심에 선 인물이 여전히 수험생을 향한 광고의 전면에 서 있는 장면은 가볍게 지나치기 어려웠다.

 

수능은 한국 사회에서 공정성의 상징처럼 작동해 왔다. 수험생과 학부모는 그 시험 하나에 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걸고 버틴다. 그 시험과 관련된 문항이 사교육 시장에서 거래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만으로도 교육 제도 전체의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사교육 강사는 단순한 지식 판매자가 아니다. 특히 ‘1타 강사’로 불리는 인물은 수십만 수험생에게 영향력을 미친다. 그가 어떤 문제를 풀고, 어떤 공부법을 말하며, 어떤 입시 전략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선택이 달라진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공정성 논란의 중심에 섰다면, 법적 방어와 별개로 교육자로서의 설명 책임도 피할 수 없다.

 

며칠 뒤, 이번에는 넷플릭스 새 시리즈 <원더풀스>를 마주했다.

 

기자는 이 작품을 기다렸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후 박은빈 배우의 연기를 꾸준히 지켜봐 온 입장에서, 그가 다시 어떤 얼굴로 돌아올지 궁금했다. 특히 <하이퍼나이프>에서 박은빈 배우가 보여준 강렬한 변신은 인상적이었다. 천재 외과의사이자 어두운 내면을 지닌 인물을 소화한 그의 연기는, 한 배우가 얼마나 넓은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그래서 <원더풀스> 역시 작품 자체만 놓고 보면 기대할 이유가 충분했다. 박은빈 배우의 새 연기,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플랫폼의 확장성, 대중 장르가 줄 수 있는 흡인력까지 고려하면 시청 버튼을 누르는 일은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또 다른 이름 하나가 걸렸다. 차은우다.

 

작품의 완성도와 배우 개인의 논란은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한 작품에는 수많은 배우와 제작진의 노동이 들어간다. 특정 배우의 논란만으로 작품 전체를 재단하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다만 대중의 사랑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배우가 대규모 세금 논란을 겪은 뒤, 별다른 사회적 숙고의 과정 없이 다시 주요 작품의 얼굴로 등장했을 때 시청자는 불편한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세금을 냈다는 사실만으로 사회적 책임까지 모두 정리된 것인가?

 

맹자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의지단(義之端)”이라 했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의로움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법적 판단은 법과 절차가 가릴 일이다. 다만 공인의 태도는 법적 판단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논란 앞에서 어떤 설명을 하고, 어떤 자세로 책임을 마주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배우 차은우는 대규모 세금 추징 논란에 휩싸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세청은 모친 명의 법인을 통한 소득 처리 구조를 문제 삼았고, 차은우 측은 관련 세금을 납부하며 논란 수습에 나섰다. 소속사 측은 법 해석과 적용에 쟁점이 있었다는 취지로 설명했고, 최종적으로 납세 절차를 이행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질문은 남는다. 납세는 특별한 선행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 의무다. 더구나 대중의 관심, 광고 시장의 신뢰, 팬덤의 지지를 통해 높은 수익을 얻는 공인은 일반인보다 더 무거운 사회적 기준 앞에 선다. 유명세는 혜택만 가져오지 않는다. 그만큼 더 큰 설명 책임과 도덕적 부담도 따른다.

 

공자는 “군자불기(君子不器)”라 했다. 군자는 하나의 그릇에 머물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늘의 언어로 바꾸면, 사람의 가치는 외모나 재능, 기능 하나로만 평가될 수 없다는 뜻이다. 잘생긴 얼굴, 뛰어난 연기력, 막강한 팬덤이 인격과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 공인은 대중 앞에 선 존재다. 그렇다면 대중이 묻는 도덕적 질문 앞에서도 답해야 한다.

 

공자는 또 “명불정즉언불순(名不正則言不順)”이라 했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리를 잃는다는 뜻이다. ‘교육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그 이름에 걸맞은 도리를 보여야 한다. ‘배우’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다. 지식과 연기력만으로 그 이름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이름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는 말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일치해야 한다는 뜻이다. 학생들에게 정답을 가르치는 사람이 정작 사회적 신뢰의 문제 앞에서 충분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그 강의의 권위는 흔들린다. 대중에게 감동을 전하는 배우가 공적 의무 논란 앞에서 충분한 성찰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 이미지 역시 온전히 설 수 없다.

 

현우진 재판과 차은우 논란은 분야가 다르다. 하나는 사교육 시장의 공정성 논란이고, 다른 하나는 연예계의 납세 논란이다. 다만 두 사건이 던지는 질문은 같다. 우리 사회는 재능 있는 사람에게 너무 쉽게 면죄부를 주고 있지는 않은가. 인기가 높고, 돈을 많이 벌고, 영향력이 크다는 이유로 염치의 기준을 낮춰주고 있지는 않은가?

 

법은 최소한의 기준이다. 도덕은 그보다 앞선다. 법적으로 다투고 있다는 말이 도덕적 질문을 멈추게 하지는 않는다. 세금을 납부했다는 사실이 곧 성찰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혐의를 부인한다는 입장이 곧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는 뜻도 아니다.

 

논어에는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라 했다.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완벽한 이미지 관리가 아니다. 먼저 낮은 자세로 설명하고, 공인이 서야 할 자리를 스스로 돌아보는 일이다.

 

염치(廉恥)는 낡은 말이 아니다. 공동체를 지탱하는 마지막 선이다. 염치가 사라지면 기준이 무너진다. 기준이 무너지면 재능이 도덕을 밀어내고, 성과가 책임을 덮는다. 그 끝에서 상처를 입는 것은 늘 평범한 시민과 학생들이다.

 

대중은 완벽한 사람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잘못 앞에서 부끄러움을 알고, 논란 앞에서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를 기대한다. 공인의 자리는 박수만 받는 자리가 아니다. 그 박수만큼 무거운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자리다.

 

사람으로서 어질지 못하면 예(禮)가 무슨 소용이냐는 공자의 물음은 오늘에도 유효하다. 계약도 중요하고, 시청률도 중요하다. 수강료도, 강의력도, 흥행도 중요하다. 다만 그보다 먼저 서야 할 것은 염치다.

 

차은우 세금 논란과 현우진 재판이 우리에게 묻는 것도 결국 이것이다. 재능 있는 공인에게 우리는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

 

답은 어렵지 않다. 실력 이전에 책임이다. 인기 이전에 신뢰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출발점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곧 염치다.

덕본재말(德本財末), 덕이 근본이고 재물은 말단이라 했다. 재능과 명성, 부와 인기는 덕(德)이라는 뿌리 위에서만 제자리를 얻는다. 단순히 실력이 있다는 이유로, 인기가 있다는 이유로, 돈을 잘 번다는 이유로 도덕적 잣대에서 비켜 설 수 있다면 그것은 공동체의 공정이 아니다.

 

오히려 더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 무거운 기준 앞에 서야 한다. 평범한 시민에게는 엄격한 책임을 요구하면서 유명한 공인에게만 관대한 예외를 허용하는 사회는 불공평하다. 법불아귀(法不阿貴), 법은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도덕의 기준 또한 명성과 수익 앞에서 흔들려서는 안 된다.

 

염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공인의 자리에 서고자 한다면 반드시 감당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맹자는 경고했다. 치즉무소불위(恥則無所不爲), 부끄러움이 없으면 못할 짓이 없다고. 지금 우리 사회가 다시 붙들어야 할 기준도 바로 그 부끄러움의 감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