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 대유학당 대표, 철학박사
세상이 소용돌이치듯 어지럽더니 제대로 알지도 모르면서 남을 비판하고 조롱하며, 혼탁함을 더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특히 유튜브(YouTube, www.youtube.com)에서는 진실보다 인기에 야합해서 돈을 벌고 명성을 누리려는 이들이 우후죽순으로 늘면서 도저히 봐줄 수 없을 정도의 억지 주장을 하는 경우를 종종 접하곤 한다.
그 중에서도 만세(萬世)의 성인이신 공자(孔子)를 폄훼하다 못해 조롱거리로 삼으려는 무리도 있으니 공자를 배우고, 공자의 언행을 실천하려는 사람으로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에 지인 한 분이 찾아와서 “『사기(史記)』가 정사(正史)냐? 야사(野史)냐?”를 물었다.
“대일통사관(大一統史觀, 중국에 여러 왕조가 있지만 그들은 모두 황제씨의 후손이라는 그릇된 인식)으로 치우친 면은 있지만 그래도 세상이 알아주는 정사입니다”라고 답하니 그 분은 “아! 그런데 거기에 공자님이 야합(野合)을 해서 태어났고, 그것이 화상석(畫像石, 남기고 싶은 사상이나 역사 내용을 그림으로 새긴 벽같이 넓적한 돌)에 전해진다고 적혀 있다던데...”라고 하며 모(某) 유튜버의 동영상을 보여주셨다.
그 유튜버는 한나라 때 제작되었다고 여겨지는 화상석을 보여주며 야합(남녀가 들판에서 성교를 함)하는 장면의 사진을 놓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더니 그 그림이 공자의 부모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렇게 해서 태어난 공자는 존경을 받을 자가 아니라 저주를 받아야 할 자이다. 대한민국의 유교를 공부하고 믿는 얼빠진 자들도 정신 차려야 한다”라고 했다.
본인이 기독교를 믿는 독실한 신자라서 더 신이 났던지, 그 사진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상상력까지 동원해 아예 소설을 쓰며 비방에 열을 올렸다.
그의 설명대로 하면 야합, 아니 불륜의 원조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가 인간의 몸을 빌려서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인간이 태어나는 방법을 따랐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성모 마리아라는 유부녀와 여호와 신이 불륜을 저질렀거나 여호와의 친자식이 아니라면 다른 제3의 남자와 불륜을 해서 낳았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예수가 성인으로 추앙받는 것은 태어나기 전의 성스러움이 아니라 일생 동안 실천해 온 말과 행동이 거룩한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공자님이 존경을 받는 것은 그 분의 행실이 인(仁)이 아닌 것이 없을 정도로 이 세상에 ‘인의 복음’을 말하고 실천하셨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성인(聖人)은 태어난 과정으로 존경받는 것이 아니라 생전의 언행으로 존경받는 분이라는 것이다.
하물며 그 화상석 사진은 공자님 부모의 행위를 묘사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야합’이라는 제목이 붙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공자님의 부모가 그런 형태로, 그 유튜버의 말 그대로 표현하면 “이렇게 난잡하게 *을 쳐서 공자를 태어나게 했다”고 하면서 그 사진과 공자를 1:1로 직접 연결시킨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무지(無知)에 의한 것이다.
하나는 『사기』를 제대로 번역하지 못한 것이고, 또 하나는 한나라 시대의 야합의 풍속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사기』의 원래 내용과 유튜버의 왜곡
먼저 이런 문제를 야기한 『사기』를 살펴보자. 공자의 야합에 관한 원문은 다음과 같다.
「흘여안씨녀 야합이생공자(紇與顔氏女野合而生孔子) 도어니구 득공자(禱扵尼丘得孔子)」 : 숙량흘이 안씨의 딸과 야합을 해서 공자를 낳았는데 니구산에서 기도를 해서 공자를 얻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야합(野合)’이다. 그 유튜버는 “야합해서 공자를 낳았으면 낳은 것이지, 기도를 해서 낳았다는 것은 또 무엇이냐?”고 비꼬았다.
하지만 ‘숙량흘이 안씨의 딸과 야합을 해서 공자를 낳았다’는 『사기』의 기록은 그 뒤에 이어지는 ‘니구산에서 기도를 해서 공자를 얻었다’는 말과 이어서 읽어야 정확한 뜻을 알 수 있다. 이 글의 요점은 ‘공자를 낳았는데 기도를 해서 낳았다’는 것이다.
그 화상석에 나오는 장면처럼 야합을 해서 혼인도 하기 전에 공자를 낳은 것이 아니라 혼인한 뒤에 기도를 해서 낳았다는 뜻이다. 만약에 그 유튜버의 말대로 ‘저주받아야 마땅한 자’였다면, 그리고 또 혼인도 하기 전에 공자를 낳았다면 사마천이 ‘공자세가(孔子世家)’라는 편명을 두어가며 공자를 칭송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사기』에 언급된 것과 같이 대부 맹희자(孟僖子)가 죽을 때 그의 후계자인 맹의자(孟懿子)에게 공자와 그 가문을 칭찬하며 당시 17세 밖에 안 된 공자를 “스승으로 모셔라”는 유언도 없었을 것이다.
또 당시 중국 각 나라의 제후들이 공자를 만나주지도 않았을뿐더러 공자의 제자가 3천 명이나 되고, 육예(六藝)에 통달한 제자가 72명이나 되며 유사(有史) 이래 누구도 만들지 못한 위업도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공자 사후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동아시아의 모든 왕과 백성들이 추앙해서 문선왕(文宣王)으로 추존(追尊)하고, 사상과 학문을 배우려고 평생을 바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유튜버는 지난 2,500년 이상의 기간 동안 공자를 추앙하며 배우려고 한 수많은 사람들을 모두 멍청이 미친 사람으로 본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백 보를 양보해서 그가 말한 대로 공자님의 부모가 안 좋은 야합을 해서 공자를 낳았더라도 ‘어려운 처지를 인내와 성실함과 간고(艱苦)의 노력으로 극복하고 훌륭한 성인이 되신 분’이라고 칭송을 해야 옳을 것이다.
야합이라고 기록한 이유
그러면 왜 ‘야합’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공자가어』에 자세하다.
“숙량흘에게는 정부인에게서 낳은 딸이 아홉 명이 있었지만 대를 이을 아들은 없었다. 또 첩에게서 낳은 맹피(孟皮)라는 아들이 있었지만 다리에 병이 있었다(그래서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후계자를 얻기 위해 숙량흘이 안씨(顔氏)에게 혼인을 구했다. 안씨에게는 세 딸이 있었는데 막내딸의 이름이 징재(徴在)이다. 안씨가 세 딸에게 묻기를 ‘추읍(郰邑, 혹은 鄹邑)을 다스리는 대부 숙량흘은 그 아버지가 사(士) 계급이지만 그 선조는 성왕(聖王: 은나라 제을(帝乙) 임금)의 후예이다. 그 사람의 키가 열 자나 되고 무력(武力)이 절륜(絶倫)하니 비록 나이가 많고 성격이 엄하나 아들 셋을 낳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누가 그에게 시집을 가겠는가?’라고 하니 두 딸은 대답을 안 하는데 막내딸 징재가 말하였다. ‘아버님이 정하신 대로 따를 것이니 무슨 의문을 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그래서 안씨가 ‘네가 좋겠구나’하고 드디어 시집을 보냈다”
『공자가어』에 의하면 숙량흘이 정식으로 청혼을 했고, 안징재의 부친이 세 명의 딸들에게 혼인을 의논해서 막내딸이 시집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후실로 가는 것이지만 이 글대로라면 중매쟁이를 넣어 정식으로 결혼을 한 것이다. 그런데 왜 ‘야합’이라고 말했을까?
학자들은 일반적인 혼인례(婚姻禮)에 어긋났기 때문이라 하고, 그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나이 차가 많이 나서 자손을 보기 힘들었다’는 이유와 ‘이미 본처는 물론 첩까지 두고 자식을 열 명이나 낳은 사람과 혼인했다’는 이유이다.
원나라 시대 학자인 왕운(王惲, 1227-1304)은 저서 『옥당가화(玉堂嘉話)』에서 “여자는 7×7=49세가 되면 음도(陰道)가 끊어지고, 남자는 8×8=64세가 되면 양도(陽道)가 끊어져서 자식을 낳을 수 없다. 이럴 때에 혼인을 하는 것을 ‘야합’이라고 하는데 당시에 숙량흘은 64세를 넘었고 안징재는 소녀이었기 때문에 ‘야합’이라고 한 것이다”라고 썼다.
즉 숙량흘의 나이는 64세가 넘어서 자식을 낳기 어렵고, 안징재의 나이는 초계례(初䈂禮 : 15세에 비녀를 꽂아 성인이 되었음을 표시하는 예)를 치를 나이도 안 되었기 때문에 역시 자식 낳기가 어려우니 일반적인 혼례 예의를 벗어났다는 뜻으로 ‘야합’이라고 썼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식이 열이나 딸리고 처첩이 있는 사람, 그것도 60세가 훨씬 넘은 노인과의 혼인’이 ‘야합’이라고 쓴 두 번째의 이유가 될 것이다.
야합의 의미
고대 중국에서는 가뭄이나 홍수를 막기 위해서 남녀가 큰 나무 밑에서 성교(性交)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때의 큰 나무 밑은 제사가 이뤄지는 신성한 곳이라는 의미가 부여된다.
즉 음(陰)과 양(陽)의 결합을 통해 하늘의 노여움을 풀어나가는 것이다. 가뭄이나 홍수가 대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고, 특히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이 음양교합(陰陽交合)을 원만하게 하지 못해서 발생한다는 인식이 컸던 것이다.
이런 우주관은 공자의 먼 조상이자 은나라의 시조 설(契)을 낳게 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고구려에서는 주몽(朱蒙, 기원전 58-기원전 19)을 탄생시켰고, 신라에서는 김유신(金庾信, 595-673)을 탄생시켰으며, 처용가(處容歌)와 정읍사(井邑詞) 등의 원천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또 남녀교제를 장려하는 이러한 풍습은 조선시대에 와서는 국가가 주관해서 강제적으로 노처녀와 노총각을 혼인시키는 풍습으로 바뀌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만물이 서로 사귀어서 자손을 만드는 때, 즉 강물의 얼음이 풀리는 중춘(仲春, 음력 2월) 때는 축제를 열어 남녀가 연애하는 것을 장려했다. 그리고 밤새도록 노는 것을 허용했고, 정식으로 혼례를 치르지 않고 남녀교합이 이뤄지기 쉬우므로 이러한 교합을 ‘야합’이라고 한 것이다.
그것을 지금의 도덕률이나 개인적인 잣대로 평가해서 비난할 수는 없다. 지금의 결혼도덕률을 1,000년 뒤의 사람들은 뭐라고 평가할까? 지금이야말로 사귀기 시작하면 빠른 시간 안에 동침(同寢)하고, 혼수품으로 아기를 임신하는 것을 장려하는 문화 아닌가?
아마 이 유튜버가 남방불교 사찰의 탑이나 동굴 안쪽 벽에 새겨진 ‘부처와 부처’, ‘부처와 일반 수련인’, 또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성교하는 장면’ 등을 보았다면 무어라고 할까?
더구나 공자 부모님의 ‘야합’ 사진이라고 보여준 장면은 비밀불교의 남녀쌍수(男女雙修 : 남녀가 교접을 하며 득도하려는 수련) 자세를 설명한 『카마수트라』의 내용에 가깝다. 남녀 두 사람만의 교합이 아니라 또 다른 제3자와 원숭이 등이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역사서의 기록이나 『논어』 등에 나타난 언행으로 볼 때 공자님은 그러한 풍습의 근처에도 가지 않으신 분이고, 그런 천박한 입으로 비난받을 분이 전혀 아니다.
세 살도 안 되어 부친(숙량흘)이 세상을 떠나자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부친으로부터 정식으로 적장자로 인정받았지만 전처와 첩, 그리고 열 명이나 되는 이복(異腹) 형과 누나들이 공자를 인정할 수 없다고 내쫓은 것이다. ‘70세가 넘어서 곧 돌아가실 분이 어떻게 아이를 임신시켜 공자라는 아이를 낳게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공자를 ‘야합’의 산물이라고 주장한 최초의 사건이다.
그래서 가난하고 불우한 성장기를 겪게 되었다. 하지만 타고난 왕족의 후예답게 천품이 훌륭하고, 선친을 닮아 기골이 장대했던 공자께서 점점 지위와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여러 역사서가 증명하는 바이다.
학생을 가르치는 스승으로 유명했을 뿐만 아니라 관직 생활도 했는데 하급 관리로부터 승진해서 노나라의 대부(지금의 법무부 장관)를 지냈다. 그래서 제자들이 ‘부자(夫子 : 장관을 지내셨던 우리 선생님)’라고 불렀고, 후대에는 ‘공부자(孔夫子)’라고 불려 지게 되었다.
공자의 인(仁)
그렇다면 관직이 높아지고 큰 명성을 떨치게 된 공자는 자신을 쫓아낸 가족들에게 복수를 했을까? 자신을 사생아로 몰아세우고, 특히 자신의 어머니를 ‘바람피워 사생아를 낳은 사람’으로 만들어 내쫓은 가족들이다.
누구나 복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공자님은 오히려 그들을 감싸주고 보호했다. 『논어』에도 나오듯이 남용(南容)이라는 훌륭한 제자에게 형의 딸을 짝지어주고, 형의 아들인 공충(孔忠 : 자는 자멸(子蔑))을 가르쳐 72 신통제자의 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발에 병이 있어서(이름에 ‘껍질 피(皮)’가 들어간 것으로 봐서 절름발이로 추측됨) 가문을 이을 수 없는 형(맹피)을 받들어 백피(伯皮, ‘백(伯)’자는 적장자라는 뜻이다. 공자님 당신은 둘째라는 뜻의 ‘중(中)’자를 써서 ‘중니(仲尼)’라고 하였다)라 호칭하고, 선친(숙량흘)이 남긴 재물과 명예를 잇게 했으며, 무엇보다도 추 땅의 대부를 세습하도록 도와주었다.
이복형의 지위와 재산을 인정해주고, 자식들까지 잘 돌봐주신 것이다. 공자님과 어머님(안징재)에게 했던 못된 짓을 모두 용서하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돌봐주신 것이다. 참으로 모든 말과 행동이 대인(大仁)을 행하시고, 그 대인을 행함에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음)’를 체현하신 것이다.
이러한 분에게 ‘저주받아야 마땅한 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거기에 더해 그 부모님에게 엉뚱한 그림을 들이대며 비난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 유교를 이끌어간다고 자부하는 성균관과 성균관유도회, 그리고 유교신문은 왜 이런 일을 모른 척하는가? 빛나는 일이 있을 때는 ‘내가 어른이다’라며 얼굴 내세우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뒤로 물러나는 것인가?
그저 남이 비판하면 ‘군자의 덕’을 내세우며 웃기만 할 것인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 내의 소수박물관에 소장된 『대성지성문성왕전(大成至聖文宣王殿)』 좌도(座圖)이다. 가로 65cm, 세로 170cm 크기이며, 보물 제485호로 지정되어 있다. 공자를 중심으로 네 제자인 안자, 증자, 자사, 맹자를 배치하고, 좌우에는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십철(十哲: 염경, 재여, 염구, 언언, 전손사, 민손, 염옹, 단목사, 중유, 복상)을 그렸다. 아래쪽에는 좌우로 72명의 제자들을 배치하였고, 제일 하단에는 당(唐), 송(宋), 원(元) 대의 이름난 학자 10명을 그렸다. 좌측 하단에 중국 명(明)나라 연호인 정덕(正德) 8년(1513, 중종8)의 화기(畵記)가 있어 1513년에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출처-e뮤지엄 https://www.emuseum.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