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시론

<李玄崗의 泮中雜詠> 최종수 성균관장 겸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대표회장의 ‘종손 사칭’ 

1. 올바른 종교지도자의 모습과 너무 먼 거리의 최종수 성균관장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인 종교는 일반인들이 일상 속에서 느끼는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가려는 욕구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므로 그들을 이끄는 종교지도자에게는 정직함, 지혜, 정의, 용기, 절제, 자비, 성품, 균형 감각 등의 보편적이고 윤리적인 덕목과

편집부 2025. 9. 29.

 


 

1. 올바른 종교지도자의 모습과 너무 먼 거리의 최종수 성균관장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인 종교는 일반인들이 일상 속에서 느끼는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가려는 욕구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므로 그들을 이끄는 종교지도자에게는 정직함, 지혜, 정의, 용기, 절제, 자비, 성품, 균형 감각 등의 보편적이고 윤리적인 덕목과 더불어 교리에 따른 경건, 신앙, 청정함, 비전 제시 능력 등이 요구된다.

 

물질에 대한 청렴성, 언행(言行)의 일치, 공동체를 향한 헌신적인 태도 등도 중요시되며, 이런 점들을 바탕으로 하여 내부 구성원들의 폭넓은 지지와 외부 조력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안팎의 호응으로 인해 중흥과 번영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

 

보통의 종교지도자가 이 정도를 해내는 것도 매우 어려운데 하물며 종단을 대표하는 위치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고, 여러 종단이 함께하는 종교연합체의 대표자라면 명실공히 어디에 내놔도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의 인격과 삶의 모습이 구현되어야 한다.

 

하지만 최종수 성균관장 겸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대표회장이 그동안 보여준 모습들은 지금까지 되돌아본 종교지도자의 덕목과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었다.

 

본지가 각종 위법·편법·불법 행위에 대해 사실관계 확인 및 증거를 확보해서 보도한 기사들에 대해 ‘허위사실이니 모두 삭제해달라’며 유교 종단 역사상 처음으로 성균관장의 위치에 있으면서 먼저 소송을 제기해 “그게 사실이냐?” “당신들이 먼저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는데 뭐가 맞는 말이냐?”라는 유림들의 반응 속에서 1심과 2심 재판부는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부분을 찾기 어렵고, 여러 정황상 보도할만한 이유가 있다’는 점을 명시하며 최종수 성균관장과 김기세 총무처장의 요구를 각하 및 기각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양측의 감정 다툼 정도로만 인식하던 유림들도 본지의 거듭된 보도로 인해 ‘성균관 소유의 유일한 남은 재산인 성북동 토지 1만 평의 재산권을 봉쇄할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형태의 (선학원과의) 합의서 작성, (선학원에게) 토지 소유권 이전, ((주)명륜당 등에 대한) 근저당권 설정 등이 이뤄진 점’과 ‘선배 유림들의 땀과 노력이 담긴 종헌과 재무회계규정 등이 수시로 개정되거나 폐기되었다고 둘러대다가 불리할 때는 있다고 정반대의 답변이 이뤄진 점’ 등을 확인하고, 이제는 그들이 알고 있는 내용과 자료들을 제보하며 ‘올바른 유교 종단과 성균관의 모습을 세워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2. ‘본인은 종손이라고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최종수 성균관장

 

공부자(孔夫子)를 교조로 하여 선성선현(先聖先賢)의 가르침을 따르고, 전통문화의 계승·발전 및 도의 선양을 표방하는 유교 종단의 중앙기관인 성균관의 대표를 맡고 있는 최종수 성균관장은 지난 2023년 제34대 성균관장 선거 과정에서 공개되었듯이 서울공고 인쇄과를 졸업하고 삼화왕관에 근무하던 회사원으로 생활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과천문화원장이 되며 갑자기 종손임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종손’이자 문화원장으로서 성균관을 출입하며 경력을 쌓은 그는 지난 2009년 3월 과천 막계동 출신 최사립 선생의 ‘효’를 선양한다며 한국효문화센터를 설립하고 지금까지 이사장으로 있는데 종손으로서 교류를 하던 필자도 그의 요청으로 홍보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다.

 

2004년 3월 경기도에서 발간한 『경기도 전통종가 여성생활사』에는 그의 부인이 과천 지역 명문종가의 종부로 소개됐고, 2010년 5월22일~23일 서울 중구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열린 ‘남산골 우리 종가 이야기’에서 그는 종손으로서 종가의 자랑거리를 일반인에게 소개하기도 했으며, 「경기도 과천, 전주최씨 과천종가 ‘곰탕’」이 그날 첫 번째 종가음식으로 소개됐다.

 

2011년 8월에는 종손으로서 500년 내력을 가진 집안 유물이라며 기증유물전을 열었고, 11월9일~12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종가음식 전시회 2011’에는 ‘전주 최씨 처사공 최조 종가’ 「아홉가지 정성 담은 시부모님 죽상」이 ‘종손이 500년 내력의 종가의 유물을 기증하고, 향토사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종가로 서울대공원 식물원 자리인 응달말에서 병중이신 어르신을 위하여 차렸던 음식상’으로 소개됐다. 같은 해 그는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고, 2014년 농촌진흥청에서 발간한 『종가음식』에도 「아홉 가지 정성 담은 시부모님 죽상」이 대표적인 종가음식으로 소개됐으며, 2022년에는 과천사람 44명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동안 이뤄진 ‘종손 사칭’에는 허점이 많은데 조부 이상 직계 조상에 대한 언급이 없고, 전주최씨 종중 묘 이전 과정에서 그의 조부 이상 조상묘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그냥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와 그의 부인을 종손, 종부로서 소개한 조력자들의 도움에 힘입은 바 크다.

 

최종수 성균관장의 ‘종손 사칭’은 과천 지역민들의 제보를 토대로 본지가 취재 보도를 하면서 사실로 드러났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를 기사화하자 본지를 상대로 ‘게시물 삭제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고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했다.

 

최종수 성균관장과 그가 임명한 김기세 총무처장이 지난해 12월 신청한 게시물 삭제 가처분 신청에 대해 제1심 법원은 ‘채권자 최종수가 전주최씨 판윤공파의 종손을 자처하였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며 종손 사칭 관련 부분을 삭제하라고 했으나, 제2심 법원은 종손 사칭 관련 기사와 관련된 이들의 간접강제 신청을 각하함으로써 제1심 법원의 판단을 뒤집었다.

 

제1심 소송 중 최종수 성균관장은 자신이 종손이 아님을 실토하면서, 다만 ‘종손을 사칭하지는 않았다’는 황당한 주장을 했다.

 

“채권자 최종수는 종손을 사칭하지 않았습니다. 2010. 5.경 ‘효(孝)문화 운동’에 헌신하던 채권자 최종수를 천지일보 기자가 취재하여 기사화한 일이 있는데 인터뷰 과정에서 ‘원 종손은 과천을 오래 전에 떠났기 때문에 선대 산소를 돌보고 시향을 지내는 역할(종손이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 것을 기자가 ‘과천 종손’이라고 표기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부가된 소송대리인의 설명도 황당하다.

 

“*본 소송대리인도 과거 언론 인터뷰 경험에 의하면, 당사자가 하지 않은 말을 취재 기자가 미화하여 좋게 써준다는 차원에서 과장하여 표현하는 것을 경험한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종수 성균관장의 주장은 재판부를 기만하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가처분 신청서 중 최종수 성균관장의 주장과 소송대리인의 부가 설명이다.

 


 

2010년 5월 천지일보는 22일과 26일 두 차례에 걸쳐 최종수 성균관장(당시 과천문화원장)의 기사를 실었다. 22일 첫 번째 기사는 “종가 이야기 들어 보실래요~?”라는 제목으로 실렸고, 26일 두 번째 기사는 ‘[인터뷰] ‘효’ 명문종가의 맥을 잇다’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최종수 성균관장을 '전주최씨 판윤공파 과천종가 종손'으로 보도한 천지일보 기사이다.

 


 

기사가 실린 날짜는 달랐지만 취재와 인터뷰는 모두 2010년 5월22일 ‘남산골 우리 종가 이야기’ 행사가 열린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이뤄졌던 것이고, 서울시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의 세부일정을 보면 「명문 종가 이야기」의 저자 이연자 원장이 ‘종가의 전통과 문화를 타 종가와 비교 설명’을 한 후, 종손 최종수와 종부 조○○이 ‘종가의 자랑거리를 일반인에 소개’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이연자 소장은 최종수 종손과 조○○ 종부를 ‘경기도 과천, 전주최씨 과천종가’라고 했고, 종가음식으로 응달마을에서 살아남기 위한 장수 음식이라며 ‘곰탕’을 소개했다. 이 ‘곰탕’은 나중에 ‘아홉 가지 정성 담은 시부모님 죽상’으로 이름이 바뀐다.

 

이연자 소장은 최종수 성균관장이 과천문화원장 당시 창간한 「과천예문화」에 종가이야기를 연재했던 인물이고, 성균관여성유도회중앙회 중앙위원이었다. 최종수 성균관장이 총무처장으로 임명한 김기세 총무처장은 당시 과천시 문화체육국장으로 있었다.

 


 

 


 

 

최종수 성균관장을 '경기도 과천 전주최씨 과천종가'로 소개하고 있는 이연자 종가문화연구소 소장의 글이다.

 

 

최종수 성균관장이 종손으로 참여한 '남산골 종가이야기' 행사에 대한 서울시 보도자료이다.

 


 

최종수 성균관장을 ‘전주최씨 판윤공파 과천종가 종손 최종수 원장’이라고 소개한 천지일보의 기사는 최종수 성균관장의 주장과 달리 이날 행사 보도자료와 최종수 성균관장의 발언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고, 기자가 임의로 ‘과천종가’라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종손이 아니라고 실토한 이상 그가 종손을 사칭해 반평생 이룬 것은 모두 거짓일 수밖에 없으니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부끄러워하고 반성해야 한다. 종손을 사칭한 사람이 어떻게 ‘효’를 입에 담을 수 있으며, 대통령 앞에서 무슨 인성교육을 운운할 수 있나.

 

3. 유림 및 국민들의 정서와 정반대로 움직이는 최종수 성균관장 

 

거짓된 모습의 삶을 살았으니 부도덕과 도덕, 거짓과 진실의 구분이 제대로 될 리가 없어서인지 유교 종단을 대표하는 지도자이자 한국의 종단연합체의 대표회장이라는 엄중한 자리를 맡고 있다는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채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의 70% 이상이 반대하고 심지어 보수적 성향의 여론주도층과 언론들마저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던 12·3 불법비상계엄을 지지했던 사실이 알려졌다.

 

너무도 부끄러운 자리라서 주요 정치인, 경제인은 물론 종교지도자 누구도 가지 않는 일왕의 생일 파티에 당당하게 참석했던 모습은 항일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바쳤던 심산 김창숙 초대 성균관장을 비롯한 선배 유림들의 꿋꿋함과 기상을 이어받은 유림들의 눈과 귀를 의심하게 했으며, 이웃종단이나 종교전문기자들이 오히려 ‘당신들의 대표자가 저렇게 해도 아무 상관이 없냐?’고 걱정하게 만들었다.

 

삼척전국유림지도자대회, 중국 곡부 선현지 탐방, 한자교육 국회 공청회 등의 많은 행사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특정 향교나 인물들에게는 공문 등의 방법으로 제대로 알리지도 않거나 아예 관련 내용을 전혀 알리지 않았고, 심지어 참가비를 이미 냈는데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이유를 대며 취소를 시켰으며, 참석자들의 전언이나 사진 등으로 이미 상황이나 참석자 숫자 등이 파악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많이 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인원수를 부풀리는 일들이 반복되며 유림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 9월25일 봉행된 추기석전에서 최종수 성균관장은 ‘자신을 반성할 줄 아는 사람만이 발전할 수 있듯이, 유교도 내부에서 먼저 변화하지 않는다면 사회의 변화를 주도할 수 없다. 도덕을 갖춘 사회, 정의로운 사회, 남을 배려하고 상생하는 사회로 변화하고 발전하기 위해서 유교는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것이다’라고 밝혔으나 정작 본인은 ‘자신을 반성’하고, ‘도덕을 갖추’며, ‘정의롭고, 남을 배려하고, 상생을 추구’하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유림 및 국민들 속에서 점점 영향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성균관의 수장으로서 ‘종손 사칭’부터 반성하고, 유림과 국민들에게 사죄할 의향은 없는가? 왜 성균관과 유교 종단이 전국의 종가(宗家), 종손(宗孫)과 국민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이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