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행들이 우산각을 방문하고 있다.
하정(夏亭) 류관(柳寬) 선생의 후손들이 서울 우산각어린이공원을 함께 방문했다.
'청백리 명예의 벽'에 대한 안내와 수상자 명단이 게시되어 있다.
명나라 영락제 앞에서 하정 선생이 지은 '삼보시'가 게시되어 있다.
류찬길 성균관청년유도회 전남도본부 교육부회장
조선 초 개국공신이자 청백리로 이름 높았던 하정(夏亭) 류관(柳寬, 1346-1433) 선생의 청렴한 발자취가 오늘날 서울 한복판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의 묘역에서 해마다 열리는 향사와 더불어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신설동 일대에는 그의 정신을 기념하는 ‘하정로(夏亭路)’와 ‘우산각 청렴정원’이 조성되어 시민의 발길이 이어진다.
하정공은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여 학문과 덕망으로 이름을 떨쳤고, 1392년 7월 조선이 개국된 후에는 새 왕조의 기틀을 세우는 데 참여해 지제교(知制敎)로 임명되어 왕의 교서 등 초안을 작성하는 일을 맡았는데 하정공이 이 직에 발탁된 것은 학문이 뛰어나고, 훌륭한 스승에게 수학한 이들 가운데에서 도덕과 식견이 탁월했기 때문이었으며, 특히 고려 관리로서의 경험과 학덕을 겸비한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관료제의 표본으로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대사헌과 우의정에 이르기까지 요직을 맡아 국가의 기강과 도덕을 바로 세웠는데 청렴하고 검소한 생활로 이름이 높아 황희·맹사성과 함께 조선 초의 ‘선초삼청(鮮初三淸)’으로 일컬어졌다.
비가 새는 오두막에서 우산을 받치고 책을 읽었다는 일화는 대표적 청백담으로 전해지는데 부인이 “우산이 있어 비를 피하지만 우산조차 없는 백성은 어찌하리”라 하자 즉시 자신이 쓰던 우산을 이웃에게 내주었다는 고사는 오늘날까지 청백의 상징으로 회자된다.
이 이야기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우산각 청렴정원에는 하정공의 시비와 청백리 명예의 벽, 그리고 ‘한강에 부채를 던진 이야기’ 조형물이 함께 설치되어 있어 낡은 부채 하나조차 사사로이 하지 않았던 선비의 마음을 상징하는 조형물은 시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정원 한 켠에는 하정공이 명나라에 갔을 때 영락제(永樂帝, 재위 1402-1424) 앞에서 즉석에서 지은 삼보시(三步詩, 세 발 걸음을 걷는 동안에 짓는 시)가 새겨져 있는데, 내용은 ‘삼경루 아래에 석양이 붉고(三更樓下夕陽紅) 구월의 산속에는 봄풀이 푸르구나(九月山中春草綠)’로서 짧은 시 속에도 자연과 인생을 꿰뚫는 통찰과 품격이 묻어난다.
이 일대의 청계천 다리 이름도 ‘비우당교(庇雨堂橋)’라 불리는데 이는 하정공의 청빈한 삶을 본받아 청렴의 상징으로 삼기 위함이다. 인근에는 ‘청백리 명예의 벽’이 세워져 있으며, 서울시는 지난 2009년부터 선생의 호를 따 ‘서울특별시 하정청백리상’을 제정해 근면하고 청렴한 공직자에게 수여하고 있다.
동대문구청은 2016년 청백리 정신을 시민과 함께 나누고자 신설동 일대를 ‘하정로’로 명명했는데 길 입구의 표지석에는 ‘하정 류관 선생의 청렴한 뜻을 기려 공무원들이 청렴길 걷기 코스로 삼고 있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으며, 스마트폰으로 역사 안내를 들을 수 있는 NFC 시스템도 설치되어 있어 시민 누구나 손쉽게 하정공의 삶을 배울 수 있다.
경기도 양평군에 위치한 묘역과 서울특별시 하정로에서 만나는 하정 류관 선생의 정신은 6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청백은 옛 덕이 아니라 지금의 사명’임을 일깨워 준다.
끝으로 하정공의 후예인 문화류씨 고양공종중 회장 류재균 선생은 교육공무원으로 봉직한 뒤에도 80 평생 청백리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검소함과 봉사,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를 행하고 있으며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근본으로 삼고, 물질만능주의의 세태 속에서도 올곧은 도덕과 예의의 가치를 지켜 시민과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하정공의 맑은 정신은 시대를 넘어 오늘의 사회 속에서도 참된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길이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