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시론

<李玄崗의 泮中雜詠> ‘금거북이 뇌물 매관매직 의혹’ 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장, “유림사회의 민낯을 드러냈다”

‘금거북이 뇌물 매관매직 의혹’으로 사퇴한 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하 ‘이 전 위원장’)은 여성에 대해 쉽게 문을 열지 못했던 유림사회에서 ‘첫 번째’ 수식어를 독차지한 인물이다. ‘첫 번째 초헌관’, ‘첫 번째 서원 원장’은 물론 심지어 경북 영주시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비정신을 세계인의 정신문화로 승화시키기 위해 2019년 제정한 ‘대한민국

편집부 2025. 11. 28.

 


 

‘금거북이 뇌물 매관매직 의혹’으로 사퇴한 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하 ‘이 전 위원장’)은 여성에 대해 쉽게 문을 열지 못했던 유림사회에서 ‘첫 번째’ 수식어를 독차지한 인물이다.

 

‘첫 번째 초헌관’, ‘첫 번째 서원 원장’은 물론 심지어 경북 영주시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비정신을 세계인의 정신문화로 승화시키기 위해 2019년 제정한 ‘대한민국 선비대상’을 지난 2021년에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이 전 위원장은 “선비정신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오늘날 인간성을 회복하고 미래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데 함께 귀를 기울여야 할 중요한 정신유산이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하지만 이 전 위원장이 지난 시절에 보였던 이념과 행적(行跡)의 실체를 알고 있던 이들은 이런 내용을 들으며 탄식을 쏟아냈다. 감히 선비정신을 입에 담을 수 없는 인물이 마치 참된 유림, 진실한 선비가 다된 것처럼 말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각종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듯이, 이 전 위원장은 국가조찬기도회의 부위원장을 맡았던 개신교인이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한국학중앙연구원장 겸 국정교과서 편찬심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일하며 자신이 신봉하는 뉴라이트 사관을 확대해 독재정권을 미화하고 친일파 서술을 축소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최근에는 금거북이 뇌물 매관매직 의혹뿐만 아니라 국회에서 통일교 및 극우친일파와의 연관성, 방만한 예산 운영 등이 지적되었고, 지난 11월6일 김건희특검에 출석하며 털어놓은 말들은 국민들의 공분(公憤)을 더욱 불러일으켰다.

 

휠체어를 타고 출석한 이 날은 이 전 위원장이 지난 15년 동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빌미로 벌여 온 ‘세계문화유산 사업’의 종언을 고하는 순간이었는데, 그것은 이 전 위원장에게 돈과 권력, 명예를 가져다 주었던 이권 사업이었다.

 

지난 2020년 10월의 도산서원 향사에서 이 전 위원장이 초헌관을 맡았을 때 언론에서는 그를 역사학자이자 여성 리더로 추켜세우며 “600년 서원 역사 최초의 여성 초헌관이 됐다. 이 이사장 자체가 또 다른 ‘역사’가 된 것이다”라고 썼다.

 

그러나 이제 말 그대로 ‘또 다른 역사’가 됐다. 유림들에게는 그야말로 ‘치욕의 역사’를 쓰게 된 것이다.

 


 

 

이배용 전 위원장이 서원 향사에서 초헌관으로 자리하고 있다(사진 AllaboutHistory).

 

 

 

1.친일독재를 미화한 이 전 위원장의 화수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사업’

 

 「구한말 미국의 운산금광 채굴권 획득에 대하여(1971)」로 석사학위, 「구한말 열강의 광산이권 획득에 관한 연구(1984)」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 전 위원장은 이화여대 교수 등을 역임하며, 문화재 전문가로 변모했다.

 

‘대한제국 말기의 광산 연구’로 학위를 취득한 이 전 위원장이 그것과 거리가 매우 먼 문화재 전문가로 변신하게 되는 계기는 ‘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였다.

 

이 전 위원장은 “이화여대 총장을 마치고, 국가브랜드위원장을 지내며 우리 문화를 세계화해보자는 의지를 구체화했다. 그 시작이 서원이었다”, “2011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뒤 2015년 한 차례 고배를 마셨지만 2019년에 부족한 내용을 보완해 결국 등재되는 데 성공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시에 설치된 국가브랜드위원회(위원장 이배용)는 2011년 12월 「서원·전통사찰을 통한 국가 브랜드 가치 증진 연구」라는 보고서를 통해 서원과 전통사찰의 세계유산 등재를 제안했다.

 

이를 바탕으로 2012년 4월 사업추진단 사무국을 설치하고,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기관은 (사)이코모스 한국위원회였고, 용역비용은 5천8백만 원이었다.

 

당시 9개 서원만 선정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자 추진단은 대상 기준을 ‘고종 대 훼철되지 않은 사적 지정 서원’이라고 했지만 추진 과정에서 사적 지정 서원은 12개로 늘었고, 1개 서원의 사적 지정이 예고돼 있었다.

 

선정 기준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추진단의 예산 사용에 대한 투명성 문제였다. 2012년 결성 이후 등재 신청까지 집행된 예산은 30억여 원에 달했고, 대부분은 9개 서원과 관련된 14개 지자체에서 분담·갹출했으며, 이코모스(ICOMOS,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평가에서 ‘반려’ 판정을 받은 후 다시 등재 추진을 하면서 집행된 예산도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집행됐다.

 

‘(재)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의 전신인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추진단’은 2012년 4월 국가브랜드위원회·문화재청·지자체·한국서원연합회 공동으로 발족했으나 2013년 2월 국가브랜드위원회가 폐지되자 한국서원연합회 내로 이속시키고, 이 전 위원장이 단장을 맡았다.

 

이 전 위원장은 산하에 행정위원회와 전문위원회를 설치해 업무를 추진키로 하고, 예산은 행정위원회를 개최해 승인을 받은 후 행정위원회 간사장과 추진단장 결재를 거쳐 집행토록 했다. 행정위원회 간사장은 이 전 위원장 최측근이 맡았다.

 

한국서원연합회 이사장의 유고 상태에서 추진단의 모든 예산은 한국서원연합회와 상관없이 행정위원회 간사장을 맡은 이 전 위원장 최측근과 이 전 위원장의 결재로 집행됐다. 외형은 한국서원연합회 내에 설치된 것으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전혀 별개로 움직인 것이다.

 

추진단은 등재 추진을 위해 (사)이코모스 한국위원회와 3억5천만 원의 연구용역 계약을 했다. 이 용역의 연구책임자는 (사)이코모스 한국위원회 위원이 맡았고, 그 단체 위원들이 연구원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이들과 이 전 위원장, 최측근인 간사장 등으로 전문위원회를 구성했는데 용역수행자가 전문위원으로 그대로 참여하는 희한한 구조를 만든 것이다.

 

그러니 용역 결과에 대해 전문위원회에서 다른 얘기가 나올 리 없었고, 게다가 용역과는 별도로 전문위원들에게 각종 사례비가 지급됐으며, 이 전 위원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제학술대회 등 각종 행사는 수의계약으로 이뤄졌고, 예산집행의 관리·감독은 애초부터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

 

본지는 당시 사례비 지급과 관련해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코모스 실사자에게 별도의 사례비를 지급한 의혹도 제기했다. 기사가 나가자 ‘지금 단계에서 이러한 의혹을 제기하면 국가적인 문제가 되는데 어디까지 가려고 이런 보도를 하느냐?’는 등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다.

 

 

 

 


 

 

평가기관인 이코모스(ICOMOS) 실사자에 지급한 사례비 영수증이다.

 

 

 

본지가 이 의혹을 제기하면서 지적한 것은 한국의 서원이 문화유산으로서 갖는 탁월한 가치는 무엇보다 배향된 선현들의 사상과 행적에서 나오는 것인데 사례비까지 전달하면서 선정을 재추진하는 것은 선현들의 뜻과도 배치되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문제가 불거지자 이 전 위원장과 관련자들은 적절한 조치를 약속했지만 감감 무소식이었고,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러다 결국 금거북이 뇌물 매관매직 의혹이 불거져 모두가 망신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재신청 당시 이 전 위원장은 문화재위원회 부위원장 및 세계유산분과 위원장을 맡았다. 등재 재신청 추진책임자가 등재 대상 선정을 주관하는 문화재위원회의 세계유산분과 위원장이었고, (사)이코모스 한국위원회가 연구용역을 계약한 당사자이니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재)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이라는 자신만의 왕국을 세운 이 전 위원장은 ‘세계문화유산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최근 김건희특검이 압수수색을 한 (재)한지살리기재단도 그 가운데 하나다. 특검이 한지살리재단을 압수수색을 한 것은 이 재단이 단순한 문화 단체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2021년 4월29일 ‘전통한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추진단’을 구성하고, 이번에도 단장을 맡았다. 추진위원에는 당시 문화재청 무형문화재 위원장과 한국의 서원 등재 추진단 간사장도 들어가 있었다.

 

이어 2021년 12월23일 (재)한지살리기재단을 설립하고, 이 전 위원장이 이사장에 취임한다. 한지살리기재단 조직을 보면 전문위원회로 유네스코 등재추진위원회를 두고, 이사장인 이 전 위원장이 겸임을 하며, 유네스코 등재추진 지자체행정협의회는 6개의 광역지자체와 11개의 기초지자체로 구성돼 있다.

 

그 뒤로 한지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문화재청은 2024년 3월31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한지 제작의 전통지식과 기술 및 문화적 실천’을 등재하기 위한 신청서를 제출했고, 이것은 유네스코 사무국의 검토와 평가기구의 심사를 거쳐 2026년 12월쯤 개최되는 제21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될 예정이라고 한다.

 

모든 게 ‘한국의 서원’ 세계문화유산 등재 재신청 당시와 판박이다.

 

이 전 위원장은 한지 다음으로는 ‘한국의 종가’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 먹거리를 정하고 빌드업을 했으나 이번에 금거북이 뇌물 매관매직 의혹 사건이 드러남으로써 전망이 불투명하게 됐다.

 

 

 

 

이 전 위원장이 2020년 10월 개최된 종가포럼에서 ‘한국 종가’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한 번에 4~5년, 길게는 7~8년이 걸리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사업을, 하나가 끝나면 다른 하나를 새로 시작하며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그에게 문화유산의 탁월한 가치는 과연 무엇으로 보였을까. 

 

이 전 위원장에게 세계문화유산 등재사업은 ‘돈과 명예, 권력을 한 손에 쥐게 해 주는 화수분(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이었던 것이다.

 

2. 이 전 위원장을 성균관에 끌어들이고, (사)한국서원연합회를 없앤 최종수 성균관장

 

유림의 항일투쟁 역사를 부정하는 친일독재 미화의 뉴라이트 역사관, 한국서원연합회를 망쳐놓은 이력, 국가브랜드 위원장이던 시절 성균관 문묘 대성전에서의 빨간 양산 사건 등으로 이 전 위원장은 유교 종단 성균관을 출입할 자격이 없었으나 다시 성균관에 발을 들여놓게 한 이가 있었으니 최종수 성균관장이다.

 

최종수 성균관장은 이 전 위원장과의 오랜 인연을 자랑했고, 성균관장이 되자마자 이 전 위원장이 15명의 국가교육위원 및 실무자들을 데리고 방문케 해 서울 문묘 성균관의 이곳저곳을 안내했으며, 다음 해 이 전 위원장은 최종수 성균관장의 초청으로 공부자탄강기념일에 참석해 축사까지 했다.

 

 

 

 

2023년 6월19일에 이 전 위원장이 성균관을 방문했을 때 유난히 공손했던 최종수 성균관장은 이배용 전 위원장과의 오랜 인연을 강조했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 동안 각종 모임을 함께 했다.

 

 

 

이 전 위원장이 김건희 씨에게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 복제품을 선물했던 정황을 포착하고 특검이 수사하는 것이 알려졌을 때 이 전 위원장과 최종수 성균관장의 관계를 알고 있던 이들이 제일 먼저 최종수 성균관장을 떠올렸던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지난 2007년 최종수 성균관장이 과천문화원장 시절 발간한 『과천문화』 제13호에 실린 기사이다. ‘후치츠카가 추사의 친필인 그림과 글씨만을 복제하여 100부 한정본으로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종손을 사칭하며 경력을 쌓은 최종수 성균관장이 과천문화원장에 재임할 때 김기세 성균관 총무처장은 과천시 문화체육과장 겸 과천문화원 이사로 있으면서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올해 4월에 강원도 삼척시에서 개최된 유림대회는 원래 서원 총회를 겸해 열기로 예정한 것이었다. ‘성균관·향교·서원 지원법’ 제정에 따라 한국서원연합회를 정상화하고, 서원 총회를 열기로 했던 것이다.

 

최종수 성균관장은 취임 이후 ‘서원을 재조직하고, 활성화시키겠다’면서 (사)한국서원연합회 이사장을 자임했고, 2023년 10월27일 열린 이사회에서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당시 그는 “그동안의 여러 사정으로 서원연합회가 약간 정체되긴 했으나 지금까지의 진행 사항을 다시 한번 점검해서 성균관·향교·서원 지원법의 취지에 맞게 서원도 성균관, 향교와 함께 뜻을 모아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사)한국서원연합회를 없애고, 약속했던 서원 총회도 열지 않았으며, 홈페이지도 없앴고, 신임 이사 등기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성균관 총회 대의원의 자격을 불법으로 박탈하기까지 했다.

 

이로써 이 전 위원장에게 눈엣가시였던 (사)한국서원연합회는 유명무실하게 되었고, 이 전 위원장이 (사)한국서원연합회를 어떻게 이용했는지,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밝힐 수 있는 길이 막혀 버렸다. 여기에는 최종수 성균관장과 이 전 위원장의 관계가 크게 작용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종수 성균관장은 지난 9월5일 국회에서 ‘인성·예절·한자교육 활성화를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당초 발제자는 이 전 위원장이었고,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그의 도움을 받아 ‘효 사업’, ‘한자 사업’을 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전 위원장이 발제자로 참여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국회의원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반발이 있었고, 결국 이 전 위원장은 참여하지 않았다.

 

유림사회에서 유례가 없는 ‘종손 사칭’을 한 이가 ‘효’를 얘기하고, 한자 교육 사업을 개인사업으로 하는 이가 ‘한자 교육’을 얘기하는 게 사람들에게 공감을 줄 리 없었지만, ‘효’와 ‘교육’을 이권 사업으로 여기는 그들에게 그런 비판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 전 위원장이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에서는 물러났으나 소수서원 원장, (재)한국의 서원 통합관리단 이사장, (재)한지살리기재단 이사장, 한국종가 유네스코 등재추진협의회 회장 등의 직책에서 물러났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최종수 성균관장을 비롯해 이 전 위원장에게 ‘첫 번째’ 수식어를 붙여줬던 유림들이 사과를 했다거나 하는 소식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도무지 부끄러움도 없고 그냥 그러다 보면 아무 일 없듯이 지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한국의 서원에 대한 이코모스 현지 실사 때에 이코모스 한국위원회 이사가 ‘명패 위치가 잘못됐다’며 난동에 가까운 소란을 벌였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은 지금도 그때의 충격과 굴욕감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등재 과정에서 그가 절대갑이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국의 서원, 산사, 한지, 종가문화가 갖는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보편적 탁월한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등재 신청과 결정 과정에서 벌어지는 절차적 공정성과 예산 집행의 투명성 역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청렴은 천하의 큰 장사다. 진짜 욕심쟁이는 반드시 청렴하려 한다. 청렴하지 못한 사람은 그 지혜가 짧기 때문이다(廉者 天下之大賈也 故大貪必廉 人之所以不廉者 其智短也)”라고 했다.

 

많은 이들이 즐겨 인용하는 다산의 이 역설적 명언이 12.3불법비상계엄 1주년을 앞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가슴에 와닿는다.

 

맹자는 부끄러움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이미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든 유림조직이지만 그나마 그것이라도 지키려면 사람의 도리는 다해야 하는 것 아닌가(이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