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시론

해남 단군전의 사라진 존영, 이제는 기록으로 답해야 한다 [기자수첩]

해남 서림공원 단군전에서는 매년 개천절이면 단군성조를 기리는 제향이 엄숙히 이어진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뜻을 되새기고, 민족의 시원을 기리는 이 의식은 지역을 넘어 우리 모두의 정신적 뿌리를 확인하는 자리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 앞에서 우리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그 단군은 과연 ‘진짜’인가? 지금 단군전에 모셔진 존영은 모사본이다

손은수 기자 2026. 5. 9.

               

해남 서림공원 단군전에서는 매년 개천절이면 단군성조를 기리는 제향이 엄숙히 이어진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뜻을 되새기고, 민족의 시원을 기리는 이 의식은 지역을 넘어 우리 모두의 정신적 뿌리를 확인하는 자리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 앞에서 우리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그 단군은 과연 ‘진짜’인가?

 

지금 단군전에 모셔진 존영은 모사본이다. 해남향교에 보관된 것 역시 모사본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 모든 것의 출발점에는 1914년 이종철 선생이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서 가져온 단군 존영이 있었다. 폐허 속에 방치돼 있던 그 존영은 마을 제향의 중심이 됐다. 광복 이후에는 공적 공간으로 옮겨졌고, 오늘의 단군전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 ‘처음의 그림’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확인된 기록은 없다. 언제 훼손됐는지, 언제 사라졌는지, 누가 관리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다만 1950년대 어느 시점, 훼손된 원본을 대신해 모사본이 제작됐다는 증언만 전해질 뿐이다.

 

이쯤 되면 단순한 아쉬움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분명한 공백이다.

 

단군 존영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민족의 기원을 상징하는 상징물이다. 더구나 북한 지역에서 유래해 남쪽으로 전해진 드문 사례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도 각별하다.

 

만약 원형이 온전히 남아 있었다면, 그 가치는 지역을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평가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유물의 행방조차 알지 못한다.

 

이 사실이 불편한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늘 ‘정신’을 말하지만, 정작 그 정신을 담고 있던 ‘실물’에는 얼마나 책임을 다했는지 되묻게 되기 때문이다.

 

문화유산은 거창한 이름을 붙인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기록하고, 보존하고, 이어가려는 구체적인 노력 속에서만 살아남는다.

 

단군전에서 아무리 제향이 이어진다 해도, 그 중심에 있어야 할 실물이 사라졌다면 그 의미는 반쪽일 수밖에 없다.

 

물론 시간은 이미 많이 흘렀다. 되돌릴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질문까지 멈출 이유는 없다. 그 유물은 정말 완전히 사라진 것인가. 혹은 어딘가에 남아 있으면서, 단지 우리가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이제라도 필요한 것은 기억이 아니라 기록이다. 추정이 아니라 확인이다.

 

사라진 단군 존영은 단순한 유물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역사를 어떻게 다뤄왔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거울이다.

 

단군은 여전히 그 자리에 모셔져 있다.

 

그러나 그 모습이 ‘복원된 이미지’에 머물러 있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사라진 것을 애도하는 데서 그칠 것인가. 아니면 찾아 나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