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진규를 들고 있는 감실 안 공자의 영정
논산시 유림협의회 소속 회원 25명이 공묘(孔廟)를 찾은 때는 지난 6월29일이었다. 공묘가 있는 곡부는 중국 산동성 성도 제남에서 남쪽으로 약 130km 떨어진 곳이다. 공묘로 가는 입구 길은 서울 인사동처럼 도로 양옆으로 기념품점이 즐비하다. 특히 한문권역이라 문방사우 기념품 가게가 많았다.
공묘로 들어가려면 입구에 붉은 글씨로 금성옥진(金聲玉振:지덕을 충분히 갖추다)이라 쓴 석조문 패방(牌坊)을 통과해야 한다. 패방은 우리나라 홍살문과 같이 망대만 있고 문짝이 없는 대문 모양의 중국 특유의 석조건축물이다.
건륭황제의 친필 편액이라는 노란색으로 쓴 영성문, 공자의 가르침이 천지창조의 에너지와 같다는 뜻을 가진 태화원기방을 지나면 지성(至聖:인간으로서는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최고 성인) 묘방이 내 앞을 가로 막는다.
성시문을 지나 거목 숲을 지나면 벽수교에 이른다. 벽수교는 이곳을 참배하는 사람의 마음을 씻고 넘는 다리라 본다. 마음을 비우고 벽수교를 건너면 홍도문이 나타난다. 홍도(弘道)는 논어 제15편 위령공 28항 “人能弘道, 非道弘人”에서 인용된 말이다.
건륭황제의 친필 편액이라는 대중문을 지나 동문에 들어서면 성화, 홍무, 영락 등 여러 황제가 세운 비석이 있다. 특히 명성화제의 해서 친필 성화비는 문화혁명의 상처로 비신이 두 동강 난 것을 보수했음을 볼 수가 있었다. 나무못만 사용해서 지었다는 규문각, 공묘를 방문한 황제들의 치적을 담은 13비정, 공자가 직접 제자를 가르쳤다는 행단, 행단 옆에는 공자가 직접 심은 나무라는 뜻인 선사수식회(先師手植檜)비가 있다.
공묘의 마지막 문이며 청의 옹정황제의 친필 편액이라는 대성문을 지나면 대성전 앞뜰로 접어든다. 여기까지 오는데 3개의 방(坊)과 6개의 문을 통과했다.
우리나라 향교의 대성전과 내외삼문의 편액은 가로로 설치되어 있는데 비해 공묘는 영성문을 제외한 각종 문과 대성전의 편액은 세로로 설치되어 있다. 공묘 대성전은 정면 9칸 측면 5칸의 건물로, 중국의 3대 건축물 중의 하나라 한다.
한국인의 사상적 뿌리인 공자는 12류 면류관에 12장복을 입고 검정 진규를 들고 감실 안에 앉아 있었다. 일행은 대성전 앞뜰에서 노성 권리사 제장 양철야씨의 창홀에 따라 국궁사배를 올렸다.
공묘에는 많은 중국인들이 관광을 왔으나 참배하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대성전 앞마당에 있는 4각의 향로에 꽂혀 있는 커다란 만수향은 잡신은 물러가라는 듯 연기를 연속 내뿜고 있었다.
연산 이덕래 기자(전북대 명예교수,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