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시론

<泮村魯堂>그래, 그럴 줄 알았다

김학경(용인향교 장의/역사디자인 연구소) 정당(政黨)은 권력(勸力)을 획득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貫徹)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정당을 이익집단(利益集團)이라고 한다. 정당은 국민들에게 정책 제안을 통해 공익(公益)을 실현하기 위한 약속을 하고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당(與黨)은 책임 정치를, 야당(野堂)은 정부의 정책

편집부 2018. 5. 24.

김학경(용인향교 장의/역사디자인 연구소)

 

정당(政黨)은 권력(勸力)을 획득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貫徹)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정당을 이익집단(利益集團)이라고 한다. 정당은 국민들에게 정책 제안을 통해 공익(公益)을 실현하기 위한 약속을 하고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당(與黨)은 책임 정치를, 야당(野堂)은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시민들 간의 이익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까닭에 정치를 대화와 타협의 산물(産物)이라고 하고, 여야(與野)가 균형을 잡고 정책 대결을 통해 국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해 갈 때 국가가 발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두어 달 동안 남북 관계의 급변을 보며 흥분하고 가슴 조렸다. 선뜻 담론(談論)이 되지 못했던 통일(統一)에 대한 사회적 논의(論意)가 급물살을 타고 국제 정세 속에서 한반도는 전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냉전(冷戰) 시대의 마지막 유산(遺産)인 남북 이데올로기 대립이 끝맺음할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남북 관계가 늘 선언(宣言)으로만 끝나고 정권에 따라 대립과 갈등이 고조(高潮)되는 것을 경험한 국민들 입장에서는 북한의 저의(底意)에 대해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심정도 있었다. 그러한 의구심(疑懼心)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마음으로 남북한 대립을 끝내고 통일 한국을 꿈꾸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환호하고 기대하였다. 이러한 바램에 여야(與野)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평화를 지향하고 한반도 번영이 보장된 통일을 반대하는 세력 또한 무시할 수 없음을 지켜보는 기회도 되었다. 제1야당 대표는 통일을 반대한다는 말만 하지 않았을 뿐 현 정부의 남북 정책에 노골적 반감(反感)을 보였고 몽니를 부렸다. 그래서일까. 그렇게 몽니를 부리던 야당 또는 반통일(反統一) 세력에 북한이 화답(和答)하였다. 북한은 한미 공군(空軍)의 ‘ 맥스선더(Max Thunder)’ 훈련 문제와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WMD)를 일괄 폐기해야 한다는 ‘리비아식 해법’을 주장한 볼튼(John Bolton)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문제 등을 이유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에 우리 기자들의 초청을 유보하여 불안감을 조성하였다. 다행히 극적으로 우리 기자단이 공군 특별기 편을 이용하여 핵실험장 폐기 참관이 허용되었다.

돌이켜보면 한반도 정세가 변화하고 평화무드가 조성되는 동안 일본은 의제(議題)도 아닌 납북자 문제로 몽니를 부렸고, 한반도 문제에 소외될지 몰라 중국도 온갖 구실로 딴지를 걸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상대방과 타협하지 않고 강경히 사태에 대처한다는 미국의 이른바 ‘매파’도 온갖 구실로 남북대화, 북미정상회담에 훼방을 놓고 있다.

갑작스런 북한의 태도 변화에 문재인 정부는 당혹했고 국민들도 혹시나 다시 남북 관계가 경색(梗塞) 국면으로 이어질까봐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그래, 그럴 줄 알았다’라며 북한의 태도 변화에 편승하여 보수 언론들과 일부 야당 인사들은 쾌재(快哉)를 불렀다. 그리고 미국의 한반도 통일에 반대하는 세력들의 입장을 대변(代辯)하는데 열을 올렸다.

이제라도 묻고 싶다. ‘그래서...’. 통일을 반대하는 세력들의 바램대로 남북이 대립 상황이 되어서 당신들은 얼마나 행복해졌는가. 지금은 비록 트럼프의 심경 변화로 남북한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북미 정상회담을 목전(目前)에 두고 있지만 남북 분단이 우리 민족의 바램을 저버린 강대국들의 이익에 따른 결정이었던 것처럼 지금도 강대국들의 이익에 따라 통일 또는 전쟁 위협으로 내몰려야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안타깝지는 않은가. 불과 1년 전만 해도 불안에 떨게 했던 전쟁의 위협을 잊었는가. 국민의 걱정이나 불안보다 정치적 이익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인가. 이렇게 한민족사(韓民族史)에서 엄중한 시기에 우리마저도 국론(國論)이 분열된다면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걷어차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남북 관계는 아직도 변수(變數)가 많다. 처음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관계에 대해 한국이 주도권을 갖고, 대화와 압박의 병행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한반도 운전자론’을 강조했을 때 누가 관심을 가졌던가. 오히려 보수 언론들은 현실성 없다고 비난하지 않았던가. 지금 다시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은 시험대에 올랐다. 트럼프도 북미정상이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로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제라도 우리나라의 역대 지도자 중에서 지금과 같이 주체적 입장에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고 중심에 있었던 사람이 있었던가 돌아볼 일이다. 한반도 운전자론에 대한 지지, 반대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한반도의 생존권(生存權)을 위해서 합심(合心)하고 협심(協心)해야 할 때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큰 정치를 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