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채/유교신문 주재기자협의회 고문, 충청남도전교협의회 사무총장
충청남도향교재단(이사장 성기문)에서 순천향대학교 공자아카데미(원장 홍승직) 후원으로 지난 5월25일부터 28일까지 중국 산동성 일원 유학의 근원지 탐방 행사를 실시했다.
이번 탐방에는 충청남도내 향교 원로와 전교, 유도회장 등 유림 24명과 순천향대학교 공자아카데미 홍승직 원장 등 인솔자 3명 등 모두 27명이 참여했다.
■ 첫날 2018년 5월 25일은 각기 간단한 여행용 가방을 휴대하고 모두가 상쾌한 기분으로 도내 각 지역에서 10:30까지 인천공항 제2터미날에 모였다.
예약시간보다 늦게 14:00가 넘어 대한항공편으로 인천공항을 출발 중국 제남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을 나오니 현지 가이드가 대기하고 있다가 버스에 오르자마자 인사와 더불어 관광 안내를 시작한다.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가이드가 중국어로 말하면 한국 아카데미 인솔자가 통역을 하니 자세한 안내를 받기가 어려웠다.
◆ 제남은 황하의 남쪽 태산의 서북쪽에 위치한 산동성의 수도로서 인구 320만의 대도시이며 중국 철도의 요충지로 트럭 및 직물 제지 산업 등이 발달한 상업도시라고 한다.
날씨는 녹음이 짙어 초여름 날씨이다. 우리 일행은 곡부로 이동하여 성원 동방문화호텔에 도착하였다.
■ 둘째날인 5월26일이다.
◆ 곡부는 춘추전국시대 약 800년 동안 노나라 수도였으며 유교의 창시자이신 공자의 출생지로 놀랍게도 현재 곡부현의 인구 65만명 중 약 20%인 13만명이 공씨 성이며 공자의 77대 종손인 공덕성(孔德成)은 장개석 정부를 따라가 대만에서 작고했고 공자의 78~80대 후손들이 현재 대만에서 살고 있다 한다.
이곳에는 공자를 기리는 공묘(孔廟), 공자 후손들의 집무실과 거처인 공부(孔府), 공자와 그 후손들이 잠들어 있는 거대한 가족묘지인 공림(孔林)이 있다.
◆ 공묘(孔廟)는 공자를 모신 사당으로 공자께서 돌아가신 지 2년 뒤(B.C. 478)부터 짓기 시작하여 그 후 역대 왕조가 그 규모를 확장 개축한 것으로 현재 전해지고 있는 건축물은 청나라 때 지은 것이다.
공묘의 건축물은 그 규모가 궁궐을 방불케 한다. 면적은 약 20만㎡가 훨씬 넘으며 전체 건축물의 방의 개수가 466개에 이른다.
공묘의 본전인 대성전은 북경 고궁의 태화전 다음으로 중국 제2의 대 건축물로 높이 24.8m, 폭 45.7m, 길이 24.9m이다.
28개의 돌기둥 가운데 정면의 10개 기둥에는 휘감고 올라가는 2마리의 용(龍)이 매우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등 비늘을 번쩍이며 곧 하늘로 솟구쳐 오를듯한 뛰어난 조각 작품이다.
★ 우리들은 오전 8시 40분 곡부 만리궁 앞에서 모여 관복과 도포, 유건을 착용하고 고대식 의장대의 인솔로 성문이 열리고 손님을 맞이하는 의식을 참관하고 대성전에 들어갔다.
중국측 집례의 창홀에 따라 은은한 아악이 연주되고 500여 관광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90분간 제례를 봉행했다.
먼저 대성전 헌화로 우측은 이홍복 전 성균관 부관장과 박순규 공주향교 전교가 헌화하고 좌측은 박종덕 전 성균관장 직무대행과 이기채 유교신문 주재기자협의회 고문이 헌화하였다.
이어 제술헌례로 주제관인 성기문 충청남도 향교재단 이사장이 앞서고 배제관인 나희규 금산향교 전교와 홍익선 아산향교 전교가 맡아 헌작, 분향을 하였다. 중국식 축문은 홍승직 아카데미 원장이 한국식 축문은 이재극 당진향교 사무국장이 독축한 후 모든 참사자가 공자께 참배한 후 제례를 엄숙하게 봉행하였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찾아온 참배객과 관광객의 눈길을 끌게 했다.
우리 일행은 공묘를 방문해 펑생 처음 대성전 제례행사를 직접 봉행함으로써 유림으로서 보람과 자부심을 가졌다.
공묘 입장을 하고 있다.
성기문 충남향교재단 이사장이 헌작하고 있다.
행사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공부(孔府)는 1038년에 세워져 공자의 혈족직계 장손들이 2500년 동안 거주하던 관저이고 면적은 16만㎡에 이르며 모두 463개의 방이 있다.
한(漢)나라 이후 역대 황제들은 공자를 존중하여 공자의 후손들에게 대대로 제후와 동등한 지위를 주었으며 송나라부터는 공씨가문의 대표자에게 연성공(衍聖公)이라는 작위를 내려주었다 한다.
◆ 공림(孔林)은 공자를 비롯한 역대 후손들의 10만기(基)에 달하는 묘가 있는 일종의 가족 공동 무덤으로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무덤이다.
묘역 안에는 고목이 울창하며 무덤 이외에 여러 대에 걸쳐 새워진 누각 등의 건축물과 크고 작은 조각물들이 들어서 있다.
공자의 묘(大成至聖文宣王墓)는 공림의 한가운데 있으며 무덤 앞 왼쪽에는 작은 집이 한 채 있는데 이곳은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이 공자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6년간 묘소를 지키며 시묘(侍墓)살이를 한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공자의 신임이 컸던 것처럼 자공 또한 스승에 대한 심상(心喪) 3년을 더 산 것이다.
무덤의 동쪽과 남쪽에는 공자의 아들 공리(孔鯉)와 손자인 자사자(子思子)의 무덤이 함께 있다.
우리 일행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추성(鄒城)으로 이동하였다.
공자묘
공자묘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공자묘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추성은 곡부에서 남쪽으로 약 25㎞ 정도 떨어져 있는 조그마한 지방도시로 이곳에는 맹자의 사당이 있는 맹묘(孟廟), 맹자의 후손이 살았던 맹부(孟府)가 있으며 맹림(孟林)은 추성에서 동북쪽으로 약 15㎞ 떨어져 있는데 시간이 없어 가지 못했다.
◆ 맹묘(孟廟)는 1037년 송나라 때 맹가능묘 옆에 건립하였으나 수해를 자주 입어 1121년 지금의 성내에 건립하였고 지금의 맹묘는 중수와 확장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넓이는 24,000㎡이다. 건축물 64개와 진(秦)나라부터 청(淸)대까지 비석 280여 개와 300여 고수(古樹)가 우거져 있다.
◆ 맹부(孟府)는 아성부(亞聖府)라고도 하며 맹묘 서쪽에 있고 21,000㎡에 대문(大門), 예문(禮門), 의문(儀門)이 있고 많은 집들과 고수(古樹)로 감싸여 있으며 송나라와 원나라시대에 만들어졌다.
특히 맹부에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고사(故事)에 대한 기념 시설물이 눈에 띠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맹자보다 오히려 맹모를 더 추앙(推仰)하고 있다. 공부(孔府)에는 공자의 장손들만 대대로 살아온 반면 맹부에는 맹자 후손 모두가 살았다고 한다.
문화혁명 당시 손상된 유물들을 복구해 놓은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맹자 후손들도 공자 후손과 마찬가지로 맹부에 살다가 1940년대 국민당(장개석)과 공산당(모택동) 싸음에서 장개석이 패하자 장개석을 따라 대만으로 이주하였으며 현재 후손들은 대만에 살고 있다고 한다. 현재 맹부는 국가 소유로 정부에서 관리하고 있다.
우리 일행은 태안으로 이동하여 성정호텔에 투숙하였다.
아성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셋째날인 5월27일이다.
◆ 태산(泰山)
아침 8시에 성정호텔을 나와 버스편으로 태산을 향했다.
태산은 진시황, 한무제, 건륭제 등 황제들이 하늘의 뜻을 받들기 위해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명산이다.
나는 평소 태산이 아주 높은 산으로 생각해 왔다. 그것은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로이다...”라는 양사언(조선중기 문인)의 시조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산의 높이는 1,545m로 우리나라의 한라산(1,950m)보다 낮다. 중국사람들은 중국의 5대 명산(태산, 화산, 숭산, 형산, 황산)을 오악(五岳)이라고 하는데 태산은 오악중 으뜸(五岳之長) 또는 오악독존(五岳獨尊)이라 일컬어 천하제일의 명산으로 여긴다.
태산이 유명해진 것은 고대의 제왕들 중에 하늘의 신(神)으로부터 신임을 받는 황제들만이 나라의 태평함을 고하는 봉선(封禪)이라는 의식을 이 산에서 거행했기 때문이란다.
우리 일행은 곡예운전을 하는 버스를 타고 천외천에서 중천문까지 올라가서 다시 태산의 명물인 케이불카(索道)로 갈아타고 정상 부근 남천문까지 다시 올라갔다.
청명한 날씨에 “흔들 흔들”거리는 색도 아래로 보이는 경치가 장관이다.
기암괴석 오르내리는 케이불카 그리고 산골짝을 흐르는 물줄기 등, 마침 일요일이라 국내외 관광객이 분빈다.
산 정상에 오르니 유명했던 문호들이 새겨놓은 휘호가 많이 눈에 띈다. 그러나 우리들은 공맹자의 유적지를 탐방하는 터라 “공자가 이곳에서 산행에 임했다”(孔子登臨處)는 태산 공자묘(孔子廟) 앞 표석(標石)에 관심이 갔다.
공자 등림처는 1560년 명대(明代)에 건립한 것인데 최근 문화혁명 때 파손된 것을 복원하였다. 좌우 옆에는 “제일산(第一山) 등고필자(登高必自)“라고 역시 표석이 세워져 있는데 이는 ”높은 산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에서 출발해야 하고 멀리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어야 한다.“(登高必自卑 行遠必自邇-中庸)는 데서 비롯한 문구이다.
공자는 태산을 30대 중반에 한 번 오르고 말년에 또 한 번 오른 것으로 보인다.
공자는 동산에 오르고서 노나라가 작다고 하였으며 태산에 오르고 나서는 천하가 작다고 하였다.(孔子登東山而小魯 登泰山而小天下-孟子)
정상 부근에서 90여 분 간 각종 시설물들을 살펴보고 다시 케이불카와 버스를 타고 하산하여 점심식사를 한 후 제남으로 이동하였다.
태산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태산 옥황봉의 옥황대제
태산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박돌천(趵突泉)은 제남의 상징이자 3대 명승지 중 하나이다. 맑은 연못 가운데 자리한 샘으로 세 갈래로 높은 물줄기가 뿜어저 나온다.
우리 일행은 박돌천 주변을 관광하고 제남 상의호텔로 이동하여 저녁식사를 마치고 우진(牛陣)이란 술집에 들려 한 잔 술로 피로를 풀면서 담소를 나누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여장을 풀었다.
박돌천 전경
■ 마지막날인 5월28일이다.
◆ 대명호(大明湖) 관광을 위해 아침 8시에 호텔을 나와 버스로 대명호에 들려 관광하고 곡수정가(曲水亭街)를 관람한 후 시가지를 관광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한후 제남 공항에서 출발하여 인천공항에 저녁 6시 도착하였다.
대명호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시내관광을 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이번 중국여행에서는 이동 시간이 길어 예정된 시간에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빴고 아쉬움이 많지만 옛 성현의 자취를 볼 수 있어 기쁘고 감사했다.
참가한 유림들이 80 전후 노구(老驅)임에도 불구하고 피로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으며 곡부와 태산은 유림이면 한 번은 꼭 다녀가길 권하고 싶은 곳이다.
다녀오지 못한 유림들을 위하여 단문한 필자가 두서 없이 자세한 설명을 기술하였으니 기회가 주어진다면 많은 자료와 정보를 수집하여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란다.
이번 탐방길을 주선하신 충청남도향교재단 성기문 이사장님, 이흥복 전 성균관 부관장님, 박종덕 전 성균관장 직무대행님, 지원을 해주신 순천향대학교 공자아카데미 홍승직 원장님, 중국 통역을 맡아 고생하신 이충휘 부원장님, 우리의 손발이 되어 수고하신 서해림 주무관님, 그리고 그간 출국 전과 귀국 후에 모든 업무를 관장하신 오준환 향교재단 사무국장님 너무 수고하셨다.
출국 전에 공항에서 점심을 제공해 주신 성기문 이사장님, 그룹채팅방에 사진을 촬영해 올려주신 여러 유림들 고맙고 감사했다. 정말 한 건의 사고 없이 참여해 주신 모든 유림 어르신, 여행길 준비해 주신 가족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