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경(용인향교 장의/역사디자인 연구소)
6.13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유래 없는 압승으로 야당은 초토화(焦土化)되었고 향후 정계(政界) 개편이 불가피해졌다. 이번 선거는 주지하다시피 남북 관계 정세 변화와 북미 정상회담이 유권자들의 평화에 대한 열망을 자극한 선거였다. 그래서 아쉽게도 선거 공약이나 후보의 도덕성에 대한 판단보다 평화 정책을 추구하는 현 정부의 정책 방향에 한 표를 던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반도 정세에 대한 변화도 감지(感知)하지 못하는 시대착오적인 야당(野黨)에 대한 심판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제1야당은 대구와 경북에서 겨우 텃밭을 지키며 지방자치에서는 지역 정당으로 전락(轉落)하였다.
한편으로 이번 선거는 지난 촛불로 타올랐던 민심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실정(失政)을 심판하는 마침표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선거를 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 대표의 대결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동안 제1야당 대표라고 볼 수 없는 막말과 독선(獨善)을 보여준 야당 대표의 태도는 현 정부를 지지하는 세력뿐만 아니라 야당을 지지하는 보수 유권자들에게도 많은 상처를 주었다. 결국 이번 선거는 여당의 승리가 아니라 야당의 자멸(自滅)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하지만 여당의 압승이 무능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야당에 대한 심판이라고 해도 왠지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 대해서 ‘국민의 지지가 무겁게 다가온다.’라고 했고 여당 대변인도 ‘겸손한 자세로 집권여당의 책임감을 갖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정치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어떤 평가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실종된 지방자치는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 지방의회의 경우 90% 이상을 여당이 차지한 곳이 많아서 독선적(獨善的) 지방정부 운영이 될까 염려스럽다. 민주 사회에서 정치는 여야(與野)의 견제와 균형의 기본 원칙을 통해 합리적 정책을 추진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견제를 할 수 있는 한 축이 무너진 것이다. 그래서 다수의 이해가 걸린 사안이나 정책 대립의 문제에서 오만과 독선이 발생하지 않도록 끊임없는 자기 성찰(省察)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2020년 총선에서는 이번 지방선거의 압승이 부메랑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평화를 추구하는 국민들의 열망은 북미 정상회담 이후 국정 개혁과 정치쇄신, 민생 안정에 대한 기대로 바뀔 것이다. 가장 기대가 큰 남북 관계 개선과 평화에 대한 기대는 아직도 곳곳에 지뢰가 남아 있다. 즉흥적이고 실리적인 트럼프 대통령의 성격 덕분에 남북정상회담이 북미정상회담까지 이어질 수 있었지만 반대로 어떤 변덕으로 한반도 정세를 뒤흔들지 알 수 없다. 트럼프는 ‘북한이 이례적인 위협을 이어가고 있다’며 대북 제재를 1년 더 연장하였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없이는 제재 해제는 없다는 의지를 보여 준 것이지만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북한과 미국의 입장 차이가 있을 경우 또다시 북미 관계의 경색(梗塞)도 우려된다. 김정은도 다시 중국을 방문하여 시진핑과 회담을 하고 두 국가의 우호 관계를 드러내며 전형적인 등거리(等距離) 외교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중국의 역할론이 강화될수록 미국과 중국의 대립 가능성이 커지고 이로 인한 정세 변화는 오롯이 우리·나라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광해군(光海君)이 군신(君臣) 관계를 맺었던 명(明)나라와 여진족의 후금(後金) 사이에서 실리적인 중립 외교를 지키다가 실각(失脚)했던 역사를 다시 되새겨 본다. 우리는 강대국에 의해 분단되고 강대국의 틀 속에 갇혀서, 미국에 대해 비판하거나 중국과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면 ‘종북(從北)’이라며 이념 공세가 가해졌다. 그래서 그동안 우리 정치권은 자주(自主) 외교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다행히 지난 지방선거에서 야당의 이념 공세는 무력해졌고 색깔 논쟁보다 평화의 힘이 더 크다는 것을 경험했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 중국, 북한 사이에서 더욱 자주적이고 실리적인 외교 정책을 구현할 때이다.
아울러 지방선거 이후 여당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10,000여 건에 달하는 국민의 생명과 생업(生業)에 직결된 계류 법안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협치(協治)를 이루어내길 바란다. 청년 실업, 양극화, 소상공인 문제, 교육문제, 미세 먼지 대책 등 산적(山積)한 민생(民生)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여당과 정부가 특단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