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경(용인향교 장의/역사디자인 연구소)
며칠 후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추석이다. 한 해 동안 힘들게 지은 곡식과 과일을 거두어 풍성한 차례상을 마련하는 우리의 명절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신라 제3대 유리왕 때 도읍 안의 부녀자들이 두 패로 나뉘어 왕녀(王女)와 함께 한달 동안 길쌈을 하고 마지막 날인 8월 한가위 날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잔칫상을 차려주고 「회소곡(會蘇曲)」을 부르며 놀던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풍속에 비추어 추석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20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진정한 우리 명절이라고 할 수 있다.
추석날 가장 중요한 행사는 차례를 지내는 일이다. 막 수확한 햇곡식을 조상에게 먼저 천신(薦新)하고 그 다음에 사람들이 먹는 의식 절차이다.
차례가 끝나면 온 가족이 음복(飮福)을 하고 조상의 산소에 성묘(省墓)를 가고 벌초(伐草)를 하는 것이 주된 추석날의 풍속이었다.
산업화 이후에는 고향을 떠났던 가족이나 친지(親知)들이 고향을 찾아 함께 차례를 지내고 정담(情談)도 나누는 중요한 기회였다.
하지만 이제 추석의 풍속도 점점 변해서 긴 연휴(連休) 정도로 바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추석날 이전에 성묘도 마치고 정작 추석 연휴 기간에는 해외여행 등으로 오붓한 개인의 휴가를 갖는 날로 변해 버린 것이다.
굳이 그럴 바에야 대체공휴일까지 만들어서 추석 명절을 장려(獎勵)할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 봐야한다.
햇곡식으로 정성을 가득 담아 만들던 차례상도 변해서 인터넷의 상차림 대행업체를 이용하거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호텔 케이터링 서비스를 이용해 마련하기도 한다.
물론 분에 넘치는 음식 마련 때문에 여성들의 명절증후군에서 보는 것처럼 지나친 가사 노동에 대한 반작용(反作用)일 수도 있지만 마음을 담은 가정의 차례상마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한 언론사에서는 가정간편식(HMR)으로만 추석 명절 한 상 차림을 차리는 기획 기사를 싣기도 하였다. 기사에 따르면 마트에서 파는 조리식품 만으로 40분 만에 명절상을 차렸다고 하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심정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록 스트레스의 원인이 될 지라도 추석날이면 아직도 고향을 찾고 성묘를 하고 차례상을 마련하는 과정이 명맥(命脈)이라도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마저도 얼마나 빨리 사라질지 생각하면 아쉬움만 남는다.
명절증후군은 명절이면 다양한 스트레스로 인해 생기는 현상으로 주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성(性) 차별적인 대우, 시댁과 친정의 차별 등이 주요 원인이다. 이러한 현상에 유교가 원죄(原罪)가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제 유림(儒林)들도 변해야 한다. 시대 변화와 양성평등(兩性平等)이라는 사회적 흐름에 맞추어 여성 중심의 가사노동 구조에서 벗어나 여성들의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함께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차례상도 각 가정의 형편에 맞게 정성을 다해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자께서도 임방(林放)의 질문에 “예(禮)는 사치스럽기보다 차라리 검소한 것이 낫고, 상례(喪禮)는 형식을 잘 갖추기보다는 오히려 슬퍼하는 것이 낫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유교가 우리 사회 병폐(病弊)의 주범(主犯)으로 몰리면서 우리 사회가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들도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 것도 유념(留念)해 볼 필요가 있다.
가족을 중시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전통이 쇠퇴하면서 기본적인 인간관계마저 흔들려서 패륜(悖倫) 범죄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제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라고 했던 효(孝)에 대한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마저도 면구(面灸)스러운 지경에 이르렀으니 명절에라도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정을 나누고 소중한 가족의 가치를 느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중시하던 사회적 유대도 흔들리며 갈수록 이웃마저 사라져 단절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파트의 층간 소음이나 주차(駐車) 시비 등으로 이웃사촌은커녕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가 되기도 한다.
한때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유교의 사회적 가치가 무너지며 전통적인 가족관계도 무너졌고 어른도 없고, 이웃도 없는 사회 속에서 갈수록 사람들은 원자화(原子化)되어 TV에서는 혼밥[혼자서 밥을 먹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우리는 공자(孔子)를 만세사표(萬歲師表)라고 하여 위대한 스승으로 앙모(仰慕)하고 있지만 오늘날에는 사회의 부조리를 일깨워 줄 스승이나 지도자 하나 없는 사회가 되었다.
유교의 불합리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유교 자체를 부정하면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더 잘 살고 행복할지는 자문(自問)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