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문지 회장’, ‘빵 회장’, ‘교수 성추행’, ‘라면 상무’, ‘땅콩 리턴’ 등 상식을 크게 벗어나 희화적으로 표현되는 일련의 사건들이 줄을 이으면서 우리 사회에서 ‘갑질의 횡포’, ‘갑질 문화’를 타파해야 한다는 각성의 목소리가 높다.
갑질이란 갑을 관계에서 ‘갑’에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 ‘질’을 붙여 만든 말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무한 권력을 빗댄 ‘슈퍼 갑’, ‘울트라 갑’이라는 속어도 있다.
‘땅콩 리턴’의 경우 승무원에 대한 인권유린과 승객불편은 물론, ‘갑질의 횡포’ 때문에 250여 명의 전체 승객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다. 안전이 제일인 항공운항에서 46분이나 출발이 지연돼 운항시간이 틀려지게 되면 다른 항공기와 충돌 위험도 커진다. 정말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 이 같은 ‘갑질의 횡포’나 ‘갑질 문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갑을 관계의 형태는 다를지라도 조직과 권력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있어 왔던 일이다. 공자라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봤을까.
조직의 관리자는 크게 나누어 두 가지 타입이 있다. 하나는 온화한 인품으로 부하 직원들을 신뢰하고, 그들도 역시 그러한 신뢰에 보답하려고 하는 타입이다. 또 다른 하나는 부하들을 두렵게 해서 항상 위압적으로 관리하는 타입이다.
전자는 이상적 타입이며 결과만 따라 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 이에 반해 후자는 언뜻 보기에 ‘철통같은 단결’을 과시하고 있지만, 양자 사이에 진정한 신뢰 관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며,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조직이 붕괴되고 마는 위험이 항상 따라다닌다.
공자는 “윗사람이 禮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감히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논어> 子路篇)고 했다.
그 의미는 “위에 있는 사람이 예를 중시하고 정의를 사랑하며 약속을 지킨다면, 사람들은 자연히 그를 존경하고 심복하며 성의를 다한다”는 것이다. 즉 공자는 德으로써 조직을 운용하고 仁政을 베푸는 것을 상책으로 삼았다.
공자는 강권 지배를 부정했다. 공자는 “政令으로써 이끌고 형벌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은 형벌을 면하지만 부끄러워함이 없게 된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 다스리면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도 갖게 되고 또 올바름에 이르게 된다”(<논어> 爲政篇)고 했다. 강권에 의한 지배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뿐이라는 것이다.
또 공자는 “정직하지 못한 사람을 기용하여 정직한 사람들 위에 놓으면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다”(<논어> 爲政篇)고도 했다. 그 의미는 “권세가 있는 신하가 자기 멋대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사람들은 명령을 따를 기분이 도저히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확실히 윗사람이 언제나 위압적이고, 일에 실패할 경우 혹독하게 대하면, 실수는 어느 정도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리고 부하는 누구나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부하들도 인간이다. 인간인 이상 때로는 실수도 한다. 그럴 때마다 혹독하게 처분을 한다면, 그들은 실수를 두려워해서 대담하게 일을 하지 못할 것이며, 실수를 할 때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감추려고 할 것이다.
또 그런 권위적인 상사의 명령을 고분고분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비록 듣기는 해도 내심으로는 무시해 버린다. 이른바 ‘面從腹背(겉으로는 복종하는 체 하면서 속으로는 배반한다)’란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조직은 위축되어 버리고 말 것이며, 업적을 올릴 수도 없게 된다. 이것이 공자가 강권 지배를 부정한 이유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는 “(무왕이) 도량형을 엄격하게 다루고, 법과 제도를 살펴서 정비하고, 없앴던 官署들을 손질해 사방에 대한 정사가 잘 시행하게 되었다. 멸망한 나라를 일으켜 세워 주고, 끊어진 代를 계승시켜 주고, 숨겨진 사람을 발탁해 등용하니, 온 천하 백성들의 마음이 그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백성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식량과 喪事와 제사였다.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게 되고, 믿음이 있으면 백성들이 일을 맡기게 되고, 민첩하면 공적을 올리게 되고, 공정하면 모두 기뻐하게 될 것이다”(<논어> 堯曰篇)라고 했다.
즉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후덕하면 옹호를 받을 수 있고, 열심히 노력하면 공적을 올릴 수 있게 되며, 공평하면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찍이 일본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치(澁澤榮一)는 공자의 이 같은 사상을 기업 경영의 이념으로 삼아 기업인은 “개인을 이롭게 하는 것인지, 국가와 사회를 이롭게 하는 것인지를 살펴야 한다”고 했다. 사업을 할 때는 개인의 이익뿐만 아니라 공공의 이익에도 기여할 수 있는가를 꼭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부사와 에이치는 空前絶後의 기업인으로서 메이지 실업계의 거두였다. 그가 설립하고 관여한 기업은 1873년 일본 최초의 은행으로 출발한 제일국립은행(현 미즈호은행)을 필두로 약 500개에 달하며, 많은 수의 기업들이 지금도 일류 기업으로 존재하고 있다. 또한 동경상법회의소(현 동경상공회의소)의 설립에 관여했고, 동경증권거래소의 창립위원이었으며, 그가 관여했던 비영리 활동 단체는 약 600개에 이른다고 한다.
시부사와 에이치는 ‘論語算盤說’을 주창했는데, 그것은 ‘<논어>’와 ‘주판’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논어산반설의 핵심은 경제와 도덕은 진실로 합치하는 것으로서, 경제를 운영해 가기 위해서는 밑바탕에 仁義道德이라는 도리가 확립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들은 <논어와 주판>이라는 강연집으로 전해지고 있다.
<논어와 주판>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지금의 도덕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자에 대해 제자들이 쓴 <논어>라는 책이다. 이 책은 누구라도 대강은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논어>와 대조되는 ‘주판’이란 것이 있다. 이 두 가지는 아주 어울리지 않고, 대단히 동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항상 주판은 <논어>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논어>는 또 주판에 의해서만 진정한 부를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논어>와 주판은 아주 멀고도 가까운 것이라고 늘 이야기했던 것이다.”
그에 따르면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나 기업은 그 사회에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사회 발전과 복지, 자선 등에 관련된 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경제는 침체되고 격차가 생겨서 충돌이 발생할 것이고, 결국 자신에게 커다란 불이익을 가져올 가능성도 매우 커질 것이므로,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가진 자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천 수백년을 격했어도 공자와 시부사와 에이치의 말들은 여전히 가슴에 와 닿는다. 갑질은 직접 피해를 당한 당사자에서부터 해당 조직과 사회 전반에까지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물론 갑질을 한 당사자도 종국에는 파국을 면치 못한다. 급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갑이 언제 을로 바뀔지도 모른다. ‘갑질의 횡포’가 드러나 질타를 받는 순간 갑은 순식간에 을의 처지로 바뀌게 되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