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복 / 정선향교 원임 전교
성균관 석전대제나 선현을 모신 제례의식에 ‘홀(笏)’을 잡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렇게 각종 제례행사시 잡는 ‘홀’에 대하여 고찰해 보고자 한다.
먼저 ‘홀’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면
○ 군주를 뵐 때 비망용으로 들던 판(예기:凡有指畫於君前用笏) - 한한사전
○ 조복(朝服)을 입고 조회 알현 시 손에 들던 패 – 국어사전
○ 벼슬아치가 임금을 만날 때 조복에 갖추어 손에 들던 패로 신분에 따라 1∼4품은 상아(象牙) 또는 옥(玉)으로 만든 홀을 잡고 5품 이하는 나무(木)로 만든 홀을 잡는다. – 국어대사전
○ 벼슬에 있는 자가 조회 알현 시 잡는 판으로 일이 있으면 기록하여 잊음에 대비해 두는 것으로 옥이나 상아로 만든다. – 삼성대옥편
이러한 정의를 살펴보면 ‘홀’이란 관직에 있는 자가 군왕을 뵐 때 조복을 갖추어 입고 관을 쓰고 신분에 따라 옥홀 또는 목홀을 잡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지내는 의례에는 어떠한가?
나는 용인 포은제 4회, 안동 도산서원제 4회, 강릉 율곡제 5회, 원주 운곡제 10여 회, 고창 운곡서원제 3회를 참석하는 등 여러 곳의 의례에 참석해 왔다.
최근 지난 1월 27일 상주 낙동 백암 충개공 부조묘인 홍일묘 제향 후 선산의 농암 충정공 부조묘인 래격묘 제향에 처음 참석해 보고 느낀 바가 있어 붓을 들게 되었다.
지금까지 참석해 본 의례의 신위가 군왕이 아니었으나 몇몇 곳에서 헌관들이 홀을 든 경우를 볼 수 있었으며 들고 있는 홀도 신분에 따른 품계의 구분도 없이 흰색 플라스틱 홀을 상아나 옥 대신 들거나 목홀을 든 경우가 많이 있었다.
또한 홀을 잡기 위해서는 걸 맞는 복장을 갖추어야 하나 두루마기에 유건을 쓰거나, 도지사나 시장·군수·유생이 품계 구분도 없이 목홀을 잡거나 옥홀 대용으로 백 홀을 잡는 것이 우리의 의례에 타당한가?
어느 곳에서는 집례와 축이 홀을 잡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는바 이런 경우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집사자가 홀을 잡고 어떻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겠는가?
‘홀’의 정의에서 보다시피 홀은 군왕의 앞에서 품계에 따라 구별하여 잡는 것인데 군왕도 아닌데 홀을 잡고, 두루마기에 유건을 쓰고 홀을 잡거나, 도지사가 목홀을 잡고 유생이 옥홀을 잡는 의례가 언제 어디에서부터 의례화되었는가?
다 같은 대한민국의 유림이 행하는 의례가 왜 서원마다 부조묘마다 서로 다른가? 아직도 옛 당쟁인 동·서인과 노론·소론의 잔재와 여파를 답습함인가?
작금엔 의례행사에 많은 외국인 관람객들이 참관하고 있다. 이들에게 우리 문화를 올바로 보여 주고 또한 부끄럽지 않으려면 홀을 들지 않으면 그만이겠으나 홀을 들어야 한다면 옥홀과 목홀을 구별하고 두루마기든 조복이나 제복이든 의례의 격식에 걸맞도록 갖추어야 할 것이다.
여러 의례에 참석하여 본 소회를 두서없이 적어 보면서 앞으로 고전 의례를 제대로 고찰하여 후대에 전할 수 있도록 성균관을 중심으로 다 같이 노력 연구해 나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