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시론

<李玄崗의 泮中雜詠>유교에 대한 망발 이제는 좌시 말아야

지난 2월8일 10대 딸을 성폭행한 동거남을 석방시키기 위해 거짓 혼인을 강요한 친모의 패륜적 사건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공영방송인 KBS가 이 사건의 원인이 유교적 전통 때문인 것처럼 보도해 물의를 빚고 있다. 자녀가 부모에게 절대 복종하는 유교적 전통 때문에 이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인데, 이런 정신 나간 보도에 유림

편집부 2015. 2. 12.

 

 

 

지난 2월8일 10대 딸을 성폭행한 동거남을 석방시키기 위해 거짓 혼인을 강요한 친모의 패륜적 사건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공영방송인 KBS가 이 사건의 원인이 유교적 전통 때문인 것처럼 보도해 물의를 빚고 있다. 자녀가 부모에게 절대 복종하는 유교적 전통 때문에 이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인데, 이런 정신 나간 보도에 유림이 공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도 서양의 일부 지식인들이 막대한 인명 피해가 유교주의 문화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그 원인의 일부를 유교적 전통에 돌린 적이 있었다. 기 소르망이라는 프랑스의 문화비평가는 우리나라를 방문해 아산정책연구원이 주최한 초청강연에서 “유교적 전통이라는 것이 계층화된 의사결정을 유발하고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며 “복종을 강조하는 유교적 전통 교육이 선생님의 지시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학생들을 낳았다”고 주장했고,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이름에 부화뇌동한 일부 인사들은 이런 말을 이곳저곳 옮기기도 했다.

 

기 소르망이 공손함과 겸양의 미덕을 절대적 복종으로 오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절대적 복종은 유교적 전통도 아니고, 이를 유교적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유림은 어디에도 없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무릇 재해와 액운이 있으면 불탄 것을 구하고 빠진 것을 건지기를 내 것이 불타고 빠진 것처럼 조금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상관의 명령이 공법에 어긋나고 민생에 해를 끼치는 것이면 굽히지 말고 꿋꿋이 자신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 “관속들을 통솔하는 방법은 위엄과 믿음뿐이다. 위엄은 청렴에서 생겨나고 믿음은 성실함에서 나오는 것이니, 성실하면서 또한 청렴해야 뭇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게 우리 유림이 배우고 가르쳐 온 유교의 전통이고 가르침이다.

 

유교가 仁과 禮를 근간으로 강조해 온 전통적 덕목들은 도덕적 유대성, 상호호혜, 상호신뢰, 관용의 유대 관계, 자기 규율, 공동선, 의무, 질서, 화해, 겸양의 덕목들이다. 여기서 사랑을 본질로 하는 仁은 자신과 타자의 관계를 바람직한 상태로 유지시켜 주는 정신적 원리이며, 禮는 그것에 바탕한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원리이다. 禮에서는 仁·義·忠·恕·信 등의 덕목과 修身(자기 절제)·학습이라고 하는 과정이 연계되어 하나의 국면을 이룬다.

 

그럼에도 이 같은 망발이 생겨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자칭 문화비평 혹은 비교연구를 한다고 하는 인사들이 흔히 빠지게 되는 오류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단일 관점’의 오류, 둘째, ‘잘못 짝지어진 비교’의 오류, 셋째, ‘좋은 원칙’의 오류이다. ‘단일 관점’의 오류는 어떠한 관점을 해당 문제에 대한 유일하게 올바른 관점이라고 단정하는 오류이고, ‘잘못 짝지어진 비교’의 오류는 한 문화의 이상을 다른 문화의 현실과 비교하는 오류이며, ‘좋은 원칙’의 오류는 이론을 다듬어 충분히 세련되게 만든다면 현실은 보다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과 관련된 오류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에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성경 창세기의 아브라함은 100세 때 하나님의 계시로 경수가 끊긴 아내 사라의 몸에서 얻은 귀하디귀한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시험을 받는다. 번제물로 바쳐지기까지 이삭은 화목을 스스로 등에 지니고 산에 올랐고 아브라함은 (믿음에 따른) 절대 복종의 개념으로 이삭을 번제단에 올렸으며 아브라함은 이때까지도 이삭에게 자신이 번제물이라는 것을 얘기하지 않았다.

 

이삭은 자기가 번제물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되었지만 아버지에게 절대 복종한다. 아버지가 자식의 가슴에 칼을 꽂으려는 순간 비로소 하나님은 멈추라고 한다. 노쇠한 아버지를 이삭은 즉각 뿌리칠 수 있었으나 이때까지도 아브라함과 이삭은 하나님에게 절대 복종을 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불린다.

 

이러한 믿음은 서양 문명을 발전시킨 기독교의 근간이고 바탕이다. 그렇다고 서양에서 세월호 참사와 유사한 대형 사건들이 발생한다고 해서 이러한 절대 복종과 믿음이 원인이라 하고 그 반대로 동양의 유교 덕목들을 얘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게 흔히 말하는 비교연구의 오류다.

 

이런 오류에 빠지다 보니 망발이 거듭되는 것인데, 여기에는 이를 방치한 우리 유림의 책임도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런 망발을 좌시하거나 묵과해서는 안 된다. 중앙과 지방의 유림이 한 마음으로 나서서 꾸짖고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