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시론

특별기고 - 바위에 새겨진 각자(刻字)에서 역사를 배운다① 옛 길가의 각자를 따라 범어사로 가다

송진모 / 부산시 주재기자,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동래 범어사는 678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로서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후, 1602년(선조 35)에 관선사가 중건했으나 또다시 불타버렸다. 1613년(광해군 5) 묘전현감 스님에 의해 중창됐다. 이후로 역대 주지와 그 임기가 자세히 기록돼 있다. 고종황제 시기에 문조 익황제비의 원찰이었던 관계로 대웅

송진모 기자 2019. 7. 18.

송진모 / 부산시 주재기자,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동래 범어사는 678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로서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후, 1602년(선조 35)에 관선사가 중건했으나 또다시 불타버렸다. 1613년(광해군 5) 묘전현감 스님에 의해 중창됐다. 이후로 역대 주지와 그 임기가 자세히 기록돼 있다. 고종황제 시기에 문조 익황제비의 원찰이었던 관계로 대웅전·보제루 등 불사에 동래부의 향청·향교·각 동리의 부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북극전(御筆) 현판을 비롯하여 부산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 황실축원장엄수(皇室祝願莊嚴繡,奉請文祖翼皇帝仙駕·奉請神貞翼皇后仙駕)등이 있다. 일제시기에 선찰 대본산으로 됐다. 또한 3·1만세운동 당시 불교계의 대표 백용성과 한용운을 배출했으며, 동래 범어사 학림의거(3·1운동) 주동자 김법린(문교부장관,제3대민의원,동국대총장 역임) 외 33명이 있고, 1926년 3월 심산 김창숙 선생과 이재락·이석강·손후익·정수기·송영우·김화식·김창백 등과 같이 독립자금 마련을 위해 범어사 금강암을 찾은 바 있다.

범어사에는 낙안낭백 스님에 관한 환생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 배불숭유정책에 의한 불교의 폐해는 조선중기에 이르러 극에 달해 일개 사찰에 부여된 부역의 수가 무려 40여 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에 낙안낭백 스님은 3가지 원을 세우게 되는데 그중의 하나가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나라의 고급관리가 되어 사찰의 어려움을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 동래부사를 지낸 경상도관찰사(순상국) 조엄이 범어사에 와서 사찰의 어려움을 다 해결해 주었다. 이에 범어사에서 영사단(永思壇)을 마련하여 순상국조공엄혁거사페영세불망단(巡相國趙公曮革祛寺弊永世不忘壇,1808)을 세워 매년 후손 등이 제향을 봉해오다가 지금은 행하지 않고 있다.

범어사 중건 이후 1609년 이안눌(詩 2수를 靑龍岩에 새김) 동래부사가 범어사를 찾은 후 1947년 까지 약 350년 동안 150여 명의 각자를 남기고 있다. 여기에는 고관대작을 비롯해 암행어사, 동래유림, 친일분자, 기생도 있다. 동래부사·동래부윤·동래군수 등 15명이 다녀갔으며, 순상국 조엄(1719~1777), 성균관 대사성 박정양·김사철, 창원부사 민종호, 울산부사 박제만, 독립운동가 민충식·이근우, 왕족으로 보이는 이강(李)이 있고, 류수(柳綏) 경상좌도암행어사(癸酉,1753,六月暗行), 동래 유림 문계두(文啓斗,향교장·서원장), 봉산구로회원 문유봉,이규철,정철조,김재현,정인우,문성준(文聲駿,성균관박사,경암사고),손규수,박전필,김준희 9명 등이 범어사를 찾았다. 범어사 옛길을 따라 범어사에 이르기까지 각자를 알아보면 아래와 같다.

 

금어동천 주변 각자

 

■금어동천 주변에 정현덕(鄭顯德,1810~1883)의 각자가 있다. 고종 초에 서장관에 임명되어 서형순을 따라 청나라를 다녀왔다.흥선대원군 집권 후 그의 심복으로서 1867년(고종4) 동래부사가 되어 7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 김철균(金澈均,前虞候),정대곤(丁大坤),황기수(黃紀秀,조선일보부산지국장,신간회동래지부조직선전부간사),윤필은(尹弼殷,동래부윤,문묘초헌관),노상욱(盧相旭),오영식(吳濚植),황노연(黃魯淵,丙科,황기수부친),곽재상(郭在相),사(寺)바위,금어동천에서 북쪽 50m 정도에 김교헌(金教獻,동래부윤,대종교2대교주) 각자가 있다.그리고 지장암을 지나 비석걸에 김종원(金宗源,동래부윤,문묘초헌관)각자 옆 영사단(永思壇)에 통정대부참서관장공호진영세불망비(通政大夫參書官張公浩鎭永世不忘碑,1903),부백정공헌교영혁폐막만세불망단(府伯鄭公獻敎永革弊瘼萬世不忘壇,1860),순상국조공엄혁거사폐영세불망단(巡相國趙公曮革祛寺弊永世不忘壇,1808),순상국홍공우길혁고막만세불망단(巡相國洪公祐吉永革痼瘼萬世不忘壇,1860),부사정공현덕영세불망비(府使鄭公顯德永世不忘碑,1872)가 소목지서로 배치돼 있다. 범어사 매표소를 지나면 어산교가 나온다.▪어산교 아래에 박정양(朴定陽,성균관대사성,이조참판,신사유람단,호조판서,총리대신),유진학(兪鎭學,이조참판),홍우인(洪祐人,언양현감),민영돈(閔泳敦,특명전권공사,주차미국특명전권공사,강원도관찰사,동래부사,문묘초헌관),민영석(閔泳奭,승정원일기에 화양서원원복구상소문),최석민(崔錫敏,법부 참서관,내부 경무국장,남작,친일반민족행위자),박하성(朴夏成),이희선(李羲宣),김관제(金觀濟),조한근(趙漢根),현왕운(玄旺運,조선전보총국 감동사용) ▪어산교 위 중앙도로 우측 아래서 위로 김선근(金善根,동래부사,공조판서,문묘초헌관),子병조(炳祖),子병옥(炳玉),문계두(文啓斗,향교장,서원장,문묘초헌관),신묘추(辛卯秋)김사철(金思轍,홍문관응교,궁내부특진관,규장각제학,성균관대사성,이조참판,남작,친일반민족행위자),子석기(奭基,장릉참봉,영친왕부 전독,대한제국 학부참서관,조선유도연합회평의원,남작승계),子명기(明基),壬午甲補寺壇辛巳(1941)四月日바위上임필상(林弼相),윤성학(尹性學),이철규(李瞮珪),윤자용(尹滋容),이병준(李秉俊),김윤근(金允根),권도화(權度河),윤치화(尹致和,동래부사,문묘초헌관),민종호(閔宗鎬,창원부사,경상우도병마절도사),박제만(朴齊萬,울산부사),이만식(李萬植),박명준(朴命浚),오응선(吳應善,천도교종법사),홍우창(洪祐昌,동래부사,문묘초헌관),이종순(李鍾順),기(妓)농주(弄珠),정기대(鄭基大),김규석(金奎錫),신성오(愼性五),도로건너 김영덕(金永悳,동래부사,이조참판,경상남도관찰사,1910년자결,문묘초헌관),김태진(金台振),子址敦·址弘,조동호(趙東鎬),손지현(孫之鉉,울산군수),남경대(南璟大),甲子甲員補寺碑崇禎紀元後四庚申(1860)冬刻,大覺登階黃峰堂大師大榮補寺不忘壇,前僧統嘉善大夫成伯蠲役補寺不忘壇,嘉善大夫允行補寺恩,嘉善大夫妙心補寺恩,정효근(鄭孝根),민충식(閔忠植,임시정부임시의정원의원,독립운동가),함경유(咸慶裕,독용별장),김정로(金禎魯),민형식(閔衡植),김동일(金東壹),戊子甲補寺壇佛紀2974丁亥(1947)五月日,김양흡(金亮洽)庚辰五月日,김창한(金彰漢,동래부사),현석운(玄昔運,역관,중추원1등의관),현명운(玄明運,동래부윤,금강공원비석유,문묘초헌관),현성운(玄星運),이근우(李根雨,독립운동가),이기영(李基永,통덕랑,지중추부사,정현덕부사비문書),강원선(姜元善),이기홍(李起泓),문성준(文聲駿,성균관박사,경암사고)

■어산교 위 중앙도로 좌측 아래서 위로 丙子甲補寺壇佛紀1955戊辰(1928)五月日,戊子甲補寺壇崇禎紀元後五甲戌(1874)正月日,민영선(閔永琁),정성근(鄭成根),조동면(趙東冕,이조참의,성균관대사성,홍문관부제학),조동윤(趙東潤,일본육군중장,친일반민족행위자),조정구(趙鼎九,부승지,부제학,대사성,이조판서조봉하의孫,女조계진은 이회영의 子(규학)와 혼인,外孫이종찬),심상황(沈相璜,궁내부특진관,장례원소경,규장각제학),윤형선(尹衡善),김영시(金永詩),윤태영(尹泰榮),이희선(李曦善),조동익(趙東翊),민우식(閔右植),김한식(金翰植,동래군수)癸亥四月日知州,庚午甲補寺壇世尊應化2943丙辰(1916)冬,혁신범어사 선찰개창주 성월당일전(革新梵魚寺禪刹開創主惺月堂一全),심은경(沈殷慶),심동방(沈東方),손치호(孫致浩)歲甲戌子東澤,봉산구로회원(蓬山九老會員),정희조(鄭禧朝,순릉참봉,중추원의관,인천신상회사사장,인천조선상업회의소회장,범어사칠층석탑대시주),안동욱(安東旭),안종설(安鍾卨,언양군수,양산군수),송운용(宋運用),김명규(金明奎),송원용(宋元用),이영옥(李永玉),甲午甲補寺有功壇崇禎紀元後五庚辰(1880)四月日,甲子甲補寺有功壇世尊應化2942乙卯(1915)十一月日,예종석(芮宗錫,친일자본가),김용태(金溶泰),이용헌(李容憲),여농(畬農)서병규(徐丙奎,대구금융자본가,여농시고),김인길(金寅洁)을유추봉래절도사(乙酉秋蓬萊節度使),민종렬(閔種烈,양산군수,밀양부사),이규동(李圭東,독립운동가),박병익(朴炳翌),김신현(金申鉉),김무영(金懋榮),이서규(李瑞圭),서상하(徐相夏),하마(下馬),김영식(金永植),甲午甲補寺壇(김법린 범어사3·1만세운동 주역 등)佛紀2974丁亥(1947)五月日

■일주문에서 신종각(新鐘閣) 사이 조중응(趙重應),이상규(李庠珪),강릉후인류정준(劉廷俊),조문원(趙文元),백윤득(白潤得),壬子甲補寺壇(1897)丁酉八月日,丙子甲稧補寺壇崇禎紀元後四癸亥(1863)八月日,庚子甲補寺壇辛卯(1891),민우호(閔佑鎬),戊午甲補寺壇光武九年(1905)乙巳春,丙午甲契補寺壇庚戌(1910)四月日훼손(신종각 아래 개울 옆 바위)

 

청룡암 바위

 

■청룡암(靑龍巖) 바위에 동악(東岳)이안눌(李安訥)동래부사 贈詩,惠晶長老請賦·贈道元上人萬曆己酉(1609)六月 二수가 있다.여필중(呂必重,사헌부지평)乙酉(1705)九月,박내정(朴乃貞)以萊伯來崇禎再壬寅(1722),이강(李 ),류수(柳綏,경상좌도암행어사)癸酉(1753)六月暗行,이규명(李圭明),이용구(李容九,동학교도,일진회회장,동래부사,문묘초헌관),유성의(柳聖儀)辛未三月,남종순(南鍾順)丁巳府伯來,장창환(張昌煥)乙未府伯來,조석찬(曺錫瓚),장호진(張浩鎭,통정대부참서관)子仁準·榮準,부백(府伯)윤필병(尹弼秉),김영택(金永澤),천긍식(千兢植),정지달(丁志達),이중연(李重蓮),손서헌(孫瑞憲)咸北鏡城,정경묵(鄭敬黙),大藏經施主秩應化2954丁卯(1927)四月,오경증(吳慶增),김해윤(金海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