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교방(洙水橋坊)이다. 이 방 뒤쪽 다리가 수수교이다. 다리 뒤에 묘문(墓門)이 보인다.
묘문(墓門)을 나오니 곧게 뻗은 신도(墓道)가 내려다 보인다. 수천년된 향나무 고목이 길 양편으로 서 있다. 참배객들은 공자묘를 향해 가고 있다.
악귀를 쫒는 동물과 문인상이 향전(享殿) 앞에 있다. 향전은 기둥과 벽은 붉은 색이고, 기와는 황궁과 같이 황색이다.
자공이 손수 심었다는 나무가 비석 뒤에 있다.(子貢手植楷). 이 나무를 공목(孔木)이라고도 부른다.
공자의 손자 공급(孔伋)의 묘이다. 그의 호는 자사(子思)이고, 송나라 휘종 때 시호를 기수후(沂水侯)를 받았고, 원나라 문종 때 기국술성공(沂國述聖公)을 받았다. 그는 중용(中庸)을 저술하였다.
공자의 아들 공리(孔鯉)의 묘이다. 그는 송나라 때 사수후(泗水侯)라고 봉해졌다.
공자묘(孔子墓)를 전배(展拜)하려면 여러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일행은 만고장춘방(萬古長春坊)에서 신도(神道)를 지나 대림문(大林門)과 이림문(二林門)을 통과했고, 전통셔틀카를 타고 명대묘군으로 돌아 우씨방(于氏坊)을 지나 공자묘의 입구인 수수교방(洙水橋坊)에서 하차했다. 이제부터는 도보로 간다.
수수천(洙水川)에 아취형 다리가 있다. 수수천에는 물이 조금 흐르는 얕은 하천이다. 진시황제는 천하를 통일한 후 정치적 비판을 막기 위하여 책을 불사르고 태우고 유림을 생매장을 했다(焚書坑儒). 그때 생매장하기 위하여 땅을 판 곳(坑)이 이곳 수수하(洙水河)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수수교를 건너자 묘문(墓門)이 가까이 보인다. 수수교에서 묘문까지 길 양편에 많은 비석이 가로수처럼 도열해 있다.
묘문을 통과하자 양편으로 천년 측백나무 고목이 늘어 서 있는 곧게 난 묘도(墓道)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고목이 신을 맞이하는 듯하다. 고목 아래 양편에 세 종류의 전설 속의 동물이 악귀(惡鬼)를 쫓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모습은 사납지 않고 부드럽게 보인다.
그리고 일행이 도착한 곳은 공림에서 가장 큰 건물인 향전(享殿)이다. 향전 바로 앞에 키 큰 문인석이 참배자를 맞이하고 있다. 빨간 기둥에 황 기와집이다. 이 건물은 명대 홍치 7년에 창건했고 옹정 10년(1732년) 중건했고, 중건 시 기와를 황제의 건물과 같이 황색으로 교체했다고 한다. 향전 내부에는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있었다. 향전은 공묘에서 제례 봉행할 때 제수를 준비하고 제기를 보관하고, 제관과 집사가 제복을 관리하고 환복(換服)하는 곳으로 생각된다.
향전을 지나자 자공이 심었다는 나무(楷)가 이목을 끈다. 그 옆 비석에는 자공이 손으로 심었다는 子貢手植楷(자공수식해)란 비석이 있다. 이 비석에 방문자들의 손때가 많이 묻어 있었다.
공자묘 가는 길에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 공급(孔伋)과 공자의 아들인 공리(孔鯉) 묘가 있다. 자사 묘는 공자의 묘 보다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자사 묘에는 기국술성공묘(沂國述聖公墓)란 큰 비석이 세워져 있다. 묘는 남북 21m, 동서 18m, 높이 4m이다. 우리 유림 일행은 5성위 중 한 분인 자사자묘에 배례하고, 기념 촬영했다.
공리(孔鯉)묘는 공자묘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 묘는 남북 32m, 동서 18m, 높이 3m이다. 묘전 비석에는 사수후묘(泗水侯墓)라고 써져 있다. 송나라 때 휘종이 공리를 사수후(泗水侯)라고 봉했다.
공리 묘를 지나 자 드디어 인류의 사표(師表)이며 만세종사(萬世宗師)이신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 공자의 묘다. 공자묘의 길이 30m, 높이 5m이다. 2기의 묘비가 앞 뒤로 겹쳐 있었다. 앞쪽에는 명나라 정통 8년(1443년)에 세운 “大成至聖文宣王墓(대성지성문선왕)”이라고 쓴 큰 비석이 있고, 뒤에는 몽고 내마진 후 3년(1244년)에 세운 宣聖墓(선성묘)가 있었다.공부자는 자연 속에 묻혀 있다. 묘는 주변에 큰 나무로 둘러 싸여 있었다. 우리 인간도 살아서도 죽어서도 자연과 하나가 된다(天人合一). 살아서 성인의 무덤을 친견(親見)하고 전배(展拜)할 수 있음은 큰 영광이다. 우리 일행은 숭상의 마음으로 공부자의 묘 앞에 섰다. "공부자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리라" 마음으로 새기면서 참배했다.
일행은 참배를 마치고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공림 입구에서 셔틀버스로 공부근처에 있는 숙박하게 될 호텔 곡부궐리빙사(曲阜厥里賓舍)에 도착했다.
공자의 묘이다. 묘비와 석등이 있다. 석등 앞에 제상(祭床)이 있다.
공자묘 주변에 나무가 보인다. 봉분에는 잔디는 없고 풀이 나 있다.
묘 앞에 2기의 묘비가 앞 뒤로 있다. 앞쪽에는 명나라 정통 8년(1443년)에 세운 “大成至聖文宣王墓(대성지성문선왕)”이라고 쓴 비석이고, 뒤에는 몽고 내마진 후 3년(1244년)에 세운 宣聖墓(선성묘) 비석이다.
우리 일행이 공자묘에 전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