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시론

유교성지 곡부(曲阜)와 추성(鄒城)을 찾아서 (10)

맹부대문(孟府大門)이다. 맹부대문의 현판 아성부(亞聖府) 예문의로(禮門義路) 현판이 걸린 예문(禮門)이다. 뒤에 의문(儀門)이 보인다. 대당(大堂) 현판이다. 칠편이구(七篇貽矩)는 청 옹정제가 쓴 친필이다. 맹묘(孟廟) 관람을 마치고 나오자 길 하나 건너에 맹부(孟府)가 있다. 이곳은 맹자의 직계자손이 거주하는 저택으로 하나의 마을이다. '아성부(亞聖府)'

김용헌 2019. 10. 11.

맹부대문(孟府大門)이다.

 

맹부대문의 현판 아성부(亞聖府)

 

예문의로(禮門義路) 현판이 걸린 예문(禮門)이다. 뒤에 의문(儀門)이 보인다.

 

대당(大堂) 현판이다. 칠편이구(七篇貽矩)는 청 옹정제가 쓴 친필이다.

 

맹묘(孟廟) 관람을 마치고 나오자 길 하나 건너에 맹부(孟府)가 있다. 이곳은 맹자의 직계자손이 거주하는 저택으로 하나의 마을이다. '아성부(亞聖府)'라고도 부른다. 맹부대문(孟府大門)에 들어섰다. 현판은 맹부가 아니고 “아성부(亞聖府)”다. 아성은 맹자를 칭한다.

전통양식을 따른 건축물로서 평면은 장방형이고 대지 점유면적은 약 22,400㎡이다. 앞뒤로 7개의 원락(院落: 정원과 부속건물)과 148칸의 방이 있다. 중심 건물인 대당(大堂)이다. 이곳은 관원을 접견하거나 공적 업무를 보던 곳이다.

우리 일행은 맹부대문(孟府大門), 예문(禮門), 의문(儀門), 맹부대당(孟府大堂), 내삼문(內三門), 세은당(世恩堂), 사서루(賜書樓), 후상방(后上房), 연록루(延祿樓), 후학당(后學堂), 습유관(習儒館), 맹씨소학교(孟氏小學校) 순으로 관람했다.

맹부대문 다음 관문은 예문(禮門)이다. 예문의 현판은 예문(禮門)에 의로(義路)를 붙여 예문의로(禮門義路)이다. 맹자의 중심 사상은 의(義)다. 예(禮)와 함께 의(義)를 강조하고 있다. 문은 두 짝문에 사람 그림이 있다. 맹부에서는 ‘맹부희경대전(喜慶大典), 황제가 거동할 때, 대제(大祭)를 지낼 때 이 문을 열고 예포(禮炮)를 쏜다’고 한다.

의문(儀門)을 지나자 맹부의 중심 건물인 맹부대당(孟府大堂)에 이른다. 일종의 맹부관청 집무실이다. 대당은 엄숙하고 ‘정숙하라(肅靜)’ ‘비켜라(回避)’는 간판에 보듯 위엄을 나타내고 있었다. 또 다른 두 간판은 ‘세습 한림원(世襲 翰林院)’과 ‘오경박사(五經博士)’다. 맹자의 적손(嫡孫: 정실의 직계자손)이 되면 한림원 오경박사 벼슬을 세습한다는 뜻이다.

집무실 앞 두 기둥에 주련이 있다. 좌측 주련은 계왕개래사숙천년승연익(繼往開來私塾千年承燕翼)이다. 그 뜻은 “앞서간 성인의 가르침을 이어 본받아 도와 학문을 닦아 천년을 이어왔고 조상은 자손을 편안하게 살도록 한다”이다. 계왕개래(繼往開來)는 ‘성인의 가르침을 이어 받아 후세에 전한다’는 뜻이다. 사숙(私塾)은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으나 마음속으로 본받아 도나 학문을 닦는 것’이다. 연익(燕翼)은 ‘조상이 자손을 편안하게 살도록 한다’이다.

우측 주련은 '거인유의연원백대앙선열(居仁由義淵源百代仰先烈)'이다. 그 뜻은 “인에 살고 의에 따르는 연원이 100대이며 선열(先烈)을 우러러본다”이다. 거인유의(居仁由義)는 『맹자』 「진심상」 33에 "거인유의(居仁由義) 대인지사(代人之事)"에서 따온 말이다.

대당(大堂) 현판은 공부에서 있는 것과 같은 '칠편이구(七篇貽矩)'이다. 이 현판도 청 옹정제가 쓴 친필이다. 맹자의 저서 『맹자』는 7편(篇)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가리키며 맹자가 불후의 저서 『맹자』를 남겼음을 칭송한 것이다.

대당을 지나 다음 건물은 세은당(世恩堂)이다. 현재 이곳에 맹자 74대손 손맹번이와 그 부인 왕숙방 여사가 살고 있다고 한다.

다음 관람 건물은 “습유관(習儒館)”이란 현판이 걸린 사숙(私塾)이다. 이곳에서는 맹자 등 유학 경전을 수업 받고 전통문화 전승, 국학정신의 교육장이다. 현재 전국청소년 교육기지이고 산동대학교 교학과 연구기지이다.

그 후에 유학을 배우는 강유당(講儒堂), 맹자, 국어, 산수, 자연 등을 가르치는 맹부감사당(孟府感恩堂)을 둘러봤다. 마지막으로 해시계와 측정기구인 가량(嘉量)를 보고 관람을 마쳤다.

맹부 관람 소감은 맹부대당(孟府大堂) 주련에 있는 "인(仁)에 살고 의(義)에 따르는 연원이 100대이며 선열을 우러러본다(居仁由義淵源百代仰先烈)"를 돌아보며 인(仁)에 살고 의(義)에 따름은 맹자의 맹자 후손뿐만 아니라 전 인류가 천년을 넘고 100대를 넘어 펼쳐 이어져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번 유교성지 여행에서 아쉬웠던 것은 공부자 탄생지인 니산(尼山) 입구까지 갔으나 매표소가 다른 곳에 있어 관람을 포기한 것이다. 그리고 찾고 싶었으나 짧은 일정이라서 방문 못했던 곳은 맹자의 묘가 있는 맹림(孟林), 주공의 사당 주공묘(周公廟), 안자의 사당이 있는 안묘(顔廟), 중국 최대의 서원인 수사서원(洙泗書院), 공자연구원(孔子硏究院) 등이다.

일행은 마지막 관광으로 태안(泰安)에 있는 황제가 동악태산신(東嶽泰山神)에게 제사를 올리는 대묘(岱廟)관람 후 지난(濟南)으로 돌아와 숙박하고 5월31일 귀국했다. 끝.

 

대당이다. 휘장으로 친 집무실이 보인다. 두 기둥에 주련이 있다.

 

대당 안에 있는 간판이다.

 

해시계이다. 이 시계는 중국에서 발명한 최초의 시계 중 하나로 1835년 맹자의 70대손 맹창균이 제작했다고 한다.

 

맹부를 출구를 나오나 도로변에 맹자의 명언을 그림과 함께 전시해 놓은 것 중 하나다. '군자불원천(君子不怨天) 불우인(不尤人)'이다. 『맹자』 「공손추하(公孫丑下)」에 나오는 글로 그 뜻은 "군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또한 다른 사람도 원망하지 않는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