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모 / 부산시 주재기자,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작괘천은 울산 울주군 삼남면에 있는 명소로 거대한 화강암으로 된 옥산(玉山)과 봉화산(烽火山=夫老山) 사이의 협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천정 주변 경관은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사시사철 많은 사람들이 찾아든다.
봄철의 벚꽃놀이와 여름철의 계곡 물놀이, 가을의 단풍 감상 등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이곳은 예로부터 수많은 소인묵객(騷人墨客)들이 찾아와 시가(詩歌)를 남겼으며, 아울러 역사적인 유물도 많은 곳이다. 그런데 지금은 작괘천이란 시내 이름은 사라지고 이 지역 전체를 작천정(酌川亭)이라 부르고 있다.
작괘천 주변에는 옛사람들이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을 찬양해 지은 시와 명호가 주변의 반석(盤石)과 바위 등에 많이 새겨져 있으며, 동쪽 봉화산(=부로산) 중턱에는 천도교의 기본사상인 '인내천(人乃天)' 각자가 있고, 작천정 계곡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했던 인물들을 자연석에 새겨놓은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마애각석이 있다.
이것은 일제시기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했던 인물들의 이름과 본관 및 직함을 새겨놓은 것이다. 그리고 마애각석 옆에 추모비가 있어 매년 음력 4월 중순 이곳에서 추모제를 지내며 애국심을 고취시킨다.
1887년(고종 24) 언양 사람들이 시계(詩契)를 결성했는데, 1894년(고종 31) 봄 언양 현감으로 부임한 신오(莘烏) 정긍조(鄭肯朝)가 언양 지역의 여러 선비들을 작괘천에 초대하여 시회(詩會)를 열었다. 시회가 끝난 후 정현감은 이 자리에 모인 선비들과 함께 시계를 헌산시사(巘山詩社)로 개편하고 성금을 모아 정자를 건립하자고 제의하니 모두 동의하여 작천정(酌川亭)을 건립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이후 1895년 언양현이 언양군으로 승격되면서 초대 이근영(李根榮) 군수가 왔고 그 후 1898년 2대 최시명(崔時鳴) 군수가 부임하여 전일 정긍조 현감의 미취(未就)사업을 부활하고 시사(詩社) 조직을 개편하니 회원이 134명에 달했다.
작천정과 작괘천 반석
정자 건축공사는 1900년에 시작해 1901년 최 군수가 이임할 때까지 내부 장식만 남기고 건물을 완성시켰으며, 1902년 7월 상순에 낙성(落成)되었다. 정자 이름은 최시명 군수가 재임 시에 짓고 현판 글씨는 서예가 해사(海士) 김성근(金聲根)이 썼다.
작천정은 수석정(漱石亭)으로도 불리는데 수석(漱石)이란 수석침류(漱石枕流)의 고사(故事)에서 따온 말로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게 삼는다는 뜻으로 오기(傲氣)가 센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수석정(漱石亭) 현판도 역시 해사 김성근의 글씨이다.작천정 내에는 상량문 1편, 기문 5편, 한시 18수의 현판이 있으며, 1수만 소개한다.
彦陽 酌川吟社(언양 작천음사)
第1回 參格詩選(제1회 참격시선) 詞藻題白石灘(사조제백석탄) 押 奇宜遲時詩(압 기의지시시) 제1회 시회에서 합격한 시 중에서 뽑은 것으로 제목은 백석탄이고, 압운은 기 의 지 시 시이다.
水落東南石出奇(수락동남석출기) 동남 지방에 물이 빠지니 기이한 바위가 드러나는데
翼然亭子咏觴宜(익연정자영상의) 날아갈 듯한 정자는 시 읊고 술마시기에 적당하네.
平鋪氷雪春常冷(평포빙설춘상냉) 평평하게 펼쳐진 빙설에 봄은 늘 싸늘하고
磨琢琉璃歲亦遲(마탁유리세역지) 갈고 쫀 유리 가운데 세월은 또 더디네.
白鳥難分飛過影(백조난분비과영) 날아 지나가는 흰 새는 그림자 구분이 어렵지만
紅娥明見浣來時(홍아명견완래시) 빨래하러 온 붉은 빛의 아가씨는 분명하게 드러나네.
環區一色皆淸淨(환구일색개청정) 빙 두른 구역이 모두 한가지로 맑고 깨끗 하니
可濯吾纓可寫詩(가탁오영가사시) 내 갓끈을 씻고 시를 지을 만하네.
蛾松 鄭宅夏(아송 정택하)
次子 寅燮奉書(차자 인섭봉서)
추전 김홍조와 구소 이호경 바위
그리고 반석과 바위에 새겨진 각자는 천사(泉史) 송찬규(宋燦奎)의 모은대기(慕隱臺記),송석(松石) 송종옥(宋鍾玉)의 모은대추술(慕隱臺追述),그리고 백엄(白广) 윤세용(尹世茸,참의부 참의장·독립운동가·만주 환인현 동창학교설립), 내정(來亭) 장두환(張斗煥), 창수(蒼叟) 오병선(吳昞善,소설가 오영수의 조부), 이기영(李基永, 통덕랑․지중추부사·정현덕부사비문書), 남강(藍岡) 신성표(申星杓), 만화(晩華) 김헌륜(金憲輪) 등의 한시가 새겨져 있다.
또한 바위에는 김철정(金澈禎, 마지막 언양군수 및 통합 최초 울산군수), 남계(南溪) 송종서(宋鍾瑞), 제세당(濟世堂) 문기홍(文基洪, 저서 1928 大東明賢綱倫, 1933 濟世寶鑑, 1938 大東儒林合同案, 1953 國祖檀君誌) 외 제자 7명, 추전(秋田) 김홍조(金弘祚, 독립운동가·동아일보발기인·경남일보사장·구포은행/경남은행 설립), 구소(九簫) 이호경(李頀卿,여류시인·신해음사 회원, 김윤식·장지연·한용운·이해조·유길준·김규진 등과 활동, 한시집 鳳仙花가 있다), 송년(松年) 오무근(吳武根, 궁내부 주사 학무위원․ 1909년 순종황제 남순 시 수행하여 기념장 수령․ 이구소의 첫 연인), 병사(兵使) 조재항(趙載恒), 지수(知守) 윤병관(尹秉寬), 김원룡(金元龍, 동래고보․ 언양4.2만세시위 참가․ 삼남면장 역임), 양영(凉嬰) 유철순(兪哲淳, 천도교인․ 언양4.2만세시위 주도), 곽해진(郭海鎭, 천도교인․ 언양4.2만세시위 주도), 이규천(李圭千, 언양4.2만세시위 주도), 춘사(春史) 김영걸(金永杰, 인내천 각자 書), 단산(丹山) 최상봉(崔商鳳), 김규환(金奎煥,상북면장 역임․ 경주김씨 종사랑 종휘의 6대손), 김성진(金聲振, 언양4·2만세운동 참여), 정태원(鄭泰元, 언양읍지)·성필건(成弼鍵, 언양읍지)·강봉기(姜鳳岐, 언양읍지)·박재하(朴載厦, 언양읍지),아송(蛾松) 정택하(鄭宅夏, 정인섭 부친), 정인목(鄭寅穆, 부산상고 제9회 졸업․ 석남 송석하 동기생․ 숙명여대 교수), 정인섭(鄭寅燮, 와세다대학 영문과 졸업․영문학자․ 한글사전편찬 참여),선무원종공신 마애각석(金廷瑞·宣克禮·李彦良·崔環·白斤孫·金應龍·金磻守·金彦元) 등이 있다.
또한 작천정 맞은 편 산 중턱 바위에 헌산시사 연명(巘山詩社聯名) 각자가 있다. 이 바위는 넓이가 약 100㎡에 이르며, 횡으로 1열 44명, 2열 43명, 3열 37명, 4열 11명으로 모두 135명의 이름과 호가 새겨져 있다.
1902년(광무 6)에 작천정을 완공하고 그 기념으로 헌산시사 회원의 이름과 호를 새긴 것이다. 작천정 건립 발의 및 추진했던 신오(莘烏) 정긍조(鄭肯朝) 현감, 학산(鶴山) 이근영(李根榮) 군수, 효림(曉林) 최시명(崔時鳴) 군수와 준공 시 소화(小華) 이인성(李寅聲) 군수, 간운(磵雲) 박시규(朴時奎,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의 부친), 을재(乙齋) 구연하(具然河, 진위대 제3연대 제1대대 참령), 의와(義窩) 김봉호(金鳳昊, 김규환 부친) 등이 새겨져 있다. 이외 120여 명은 밀양, 울산 등의 인물도 보이지만, 당시 대부분 언양을 대표할 만한 지식인들이다. 그리고 연명각자 좌측에 '청사대(靑史臺)'의 각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