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시론

특별기고 - ‘추창(惆愴)’의 미학으로 점철된 무용·영상 융복합시리즈

두리춤터(예술감독 임학선)는 2019년 극장특성화사업으로 10개의 기획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전통춤과 창작춤, 그리고 융복합 공연에 이르기까지의 프로그램은 매우 다양하다. 그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두리춤터의 차세대안무가 페스티벌 참가를 통해 발굴된 신진작가 김현우, 양한비, 박혜리 3인의 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포이어프로덕션 제작으로 금년 새롭게 시도

박지선 2019. 12. 20.

두리춤터(예술감독 임학선)는 2019년 극장특성화사업으로 10개의 기획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전통춤과 창작춤, 그리고 융복합 공연에 이르기까지의 프로그램은 매우 다양하다. 그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두리춤터의 차세대안무가 페스티벌 참가를 통해 발굴된 신진작가 김현우, 양한비, 박혜리 3인의 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포이어프로덕션 제작으로 금년 새롭게 시도된 “무용·영상 융복합시리즈” 공연이다. 두리춤터는 신진작가들이 자신들의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지원, 11월 25일부터 12월 3일까지 3개 작품이 총6일 동안 공연으로 발표되었다.

 

“무용·영상 융복합시리즈”는 두리춤터 1층 포이어극장의 공간 특성을 살리는 싸이트스페시픽(Sitespecipic) 공연이다. 포이어프로덕션 제작팀은 안무가 3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도록 맞춤형 멘토링을 진행하였다. 안무자 스스로 대본을 쓰고, 자신의 목소리로 내레이션을 담아내고, 꾸밈없는 진솔한 몸짓으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는 작업이었다.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포인트가 곳곳에 있는 두리춤터의 1층 포이어극장을 택한 이유도 다양한 연출을 시도하기 위했던 것이리라 여겨진다.

 

김현우의 <이명>, 양한비의 <Top>, 박혜리의 <결함>은 몇 가지의 공통분모를 지닌 공연이었다. 나의 이야기라는 것, 그러나 누구나 겪어봤음직한 혹은 그보다 더한 아픈 경험이라는 것이다. 순수언어인 춤만으로 풀어내지 않고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무대장치와 소품-거대한 천, 수많은 박스, 하얀 풍선-을 각각 상징으로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융복합 예술로서 면모를 갖추었다.

 

파릇파릇한 청춘을 보내고 있는 그들.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다가도 커다란 현실의 벽에 부딪혀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그 시기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남들 시선일랑 개의치 않고 오롯한 자신의 모습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자신의 생각, 그 아픔을 토해내어 감동을 이끌어 낸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인간은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며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잣대를 들이밀어 타인의 고통에 위로받기도 한다. 우리 속에 있는 선악(善惡)은 다른 얼굴을 한 한 몸이다. 이들의 작품은 누군가에는 동일시되어 공감을 나누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인생을 그리 힘들게까지 살 필요는 없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여기는 이들은 스스로 세상과 차단하는 벽을 세운 것과 다름없다. 어떠한 형태의 벽이든 그 안에서 적당히 움직이며 타협이 가능하지만, 그 이상 나아가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생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겪어내며 새로운 세계로의 도달은 내면의 벽을 부숴낸 자들의 성취이자 성과물이다.

 

아마 김현우, 양한비, 박혜리의 공연을 본 이들은 갑갑한 속에 연민, 부끄러움, 회상, 부러움 등 여러 감정이 뒤죽박죽 섞여 나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도전은 실패할지라도 더 철저히 준비해서 새로운 마음으로 재도전하게 하는 기반은 만들며 자아를 굳건히 한다. 무엇이든 망설이는 이가 있다면 이번 생에 꼭 도전해보길 바란다. 그들의 작품은 성장하기를 회피한 이들은 결코 체험 불가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통감케 하며 비극의 정화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므로 김현우의 <이명>, 양한비의 <Top>, 박혜리의 <결함>은 ‘추창(惆愴)’의 미학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하겠다. ‘추창’은 서사적이자 형이상학적인 울적함이다. 이러한 추창의 울적함은 그것이 서사적이고 형이상적인만큼이나 ‘인상적’이며, 인생에 대한 자각과 한스러운 비극의식을 담고 있어 한국의 전형적인 ‘한(恨)’과도 연결된다.

 

비극은 연민과 두려움을 일으켜 감정을 정화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다. 타인의 고통과 불행을 마주하며 느끼는 감정을 통해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냄으로써 평정에 이르게 한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詩學)』에서 말한 카타르시스이다. 지나치리만큼 강렬한 정감이 정화를 이루고 다시 심리의 평정을 회복하는데서 비극의 쾌감이 나온다. 비극이 사람들에게 주는 고통은 실제의 고통이 아니다. 그것은 ‘무해한 통감(痛感)’이다. 비극의 목적은 사람들을 정말로 고통과 슬픔에 빠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을 고요하고 안정된 상태로 인도함으로써 이로부터 자유로운 희열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예술이 ‘슬픔’을 ‘아름다움’으로 삼는 까닭은, 바로 이 슬픔이 자아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생명의 진실한 존재를 의식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추창은 특정한 사건에 대한 감흥이 아니라 전반적인 인생과 역사와 우주에 대한 감회로써 형이상학적인 울적함이다.

 

거대한 천에 휘감긴 기억을 다룬 김현우 안무 <이명>, 박스로 쌓아 올린 공든탑과 꿈에 접근한 양한비 안무 <Top>, 하얀 풍선의 파장과 독백으로 구성한 박혜리 안무 <결함>은 나를 깨부수며 스스로 정화하기 위한 자기고백이었다.

 

 

 

▶ 김현우 안무 <이명>

 

    거대한 천에 휘감긴 김현우의 기억

 

 

 

첫 번째 작품은 김현우의 <이명>이다. 11월25-26일 공연은 늦은 11시였다. 보통의 공연 시간에서 크게 벗어난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번 작품은 차세대안무가페스티벌 참가작 <I am>의 후속 작이다. ‘나’에게로의 탐험을 통해 표면적인 것들 보다 한 단계 더 깊은 내면의 세계를 떠돌며 어린 시절 자신과 만나는 작업이다.

 

극장 문밖까지 짙은 재즈선율이 흘러나온다. 들어선 순간부터 진한 무드로 켜고 꺼지기를 오버랩하는 불빛에 취하는 기분이 든다. 높은 천정에서 아래로 드리워져 낮은 조도로 껌뻑이는 조명아래 거대한 흰 천이 무대바닥 전체를 감싸 안고 있다. 그 안에 크고 작은 사물들은 그 존재를 숨긴 채, 한적한 시골의 자연경관이 떠오르는 밤의 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고 안무자 김현우의 고백이 시작되었다. 그 고백은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또 자막으로 우리의 마음 깊숙이 파고들었다.

 

배경은 기억 속 밤낮없이 시끄럽게 소음을 만들어 내고 있는 공장 옆 파란 지붕을 가진 시골집, 그의 방이다. 무대 한 가운데 비쭉 솟은 기둥이 아주 천천히 회전한다. 회전을 거듭할수록 바닥 전체를 감싸고 있던 흰 천이 묵직하게 중앙으로 휘감겼고 그 안에 숨어있던 사물들의 형체가 드러났다. 옛 기억 속 집안 풍경ㅡ그의 방문, 창, 이불 속, 베란다 틈 사이ㅡ이 들춰졌다.

 

묵직하게 휘감기는 중앙의 거대한 기둥은 나사가 조여지듯, 더 단단히 조일 때 느껴지는 무게감과 긴장감을 더해가며 자신을 옥죄듯 파고드는 김현우 자신이었다. 휘감긴 천 사이를 비집고 나온 김현우는 방안 곳곳의 잡동사니들을 정리하는 일상을 보여줬다. 정리를 마치고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극장의 2층 난간 양 끝에 천을 매달아 무대와 관객을 분리시키며 그림자 화면으로 전환시켰다.

 

빛과 그림자의 연출은 상상력을 극대화시켰다. 백라이트를 사용하여 대형 천에 투과되어 보이는 김현우와 황서영 두 사람은 어린 시절 서로 의지하는 남매가 되기도 했고, 갈등을 빚으며 다투는 부모님이 되기도 했다. 괴물이 되어버린 어른들의 폭력에 눌려버린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백라이트와 흰 막 사이의 빛 조절에 의한 그림자 크기의 변화를 통해 서사적으로 표현한다. 흔하디흔한 의자다리 4개는 그림자 연출을 통해, 사방으로 가두어버리는 철장으로 둔갑했고 그 안에서 아이는 두려움에 치를 떨었다. 무시무시한 발길질이 가해지며 거대하게 화면 밖으로 사라지기도 하고, 그에 당하는 작은 아이는 더 작아지며 점으로 소멸되기도 했다. 서사적 구성의 기법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실루엣이 주는 드라마틱한 효과는 서정적이고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포근하고 편안하지만 공포감과 불안함을 동시에 안겨주던 집, 가까웠지만 안부만 물을 정도로 멀어져 버린 사람, 포기할 수 없지만 손만 놓는다면 포기해버리고 싶은 삶, 듣고 싶지 않지만 귀를 막을수록 선명히 들려오는 소음, 죽도록 밉지만 한편으로 용서하고 싶은 마음 등 자신에게 이명이 생긴 배경을 추적한다. 옛 기억들이 가진 양면성에 대한 김현우의 내레이션은 담담하지만 가슴을 파고들었다.

 

조각나 있는 그의 기억들을 그림자 퍼포먼스로 연출한 김현우의 <이명>은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고,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그의 이야기는 어디까지 솔직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경이로움을 낳았다. 김현우는 두려움으로 시작해서 슬픔, 분노, 미움, 그리고 이해와 용서에 이르기까지 실타래처럼 얽혀있던 감정선들을 자분자분 풀어낸다. 낱낱이 파헤쳐 맨살을 드러내는 김현우의 작업은 아름답고 치명적인 미장센과 그의 독백이 어우러져 더 낮은 곳으로 침투하여 깊은 여운을 남겼다.

 

김현우는 또래보다 성숙해 보이는 외모와 사상을 지닌 춤꾼이다. 그는 <이명>을 통해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일상의 소품들로도 충분히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뛰어난 재능을 보여줬다. 김현우는 또 어떤 차기작을 낼지 기대가 되는 신진 안무가이다.

 


 

 

 


 

▶ 양한비 안무 <Top>

 

    박스로 쌓아 올린 공든탑과 양한비의 꿈

 

 

 

두 번째 작품, 양한비의 <Top>은 11월 27-28일 막이 올랐다. <Top> 또한 차세대안무가페스티벌에서 초연을 시작으로 보다 다양한 리서치를 통해 재안무한 작품이다. 초연에서 정상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느낀 허망함에 대한 감정을 다뤘다면, 이번 공연은 자신이 정상에 오르고자 한 이유와 목적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다.

 

객석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눈에 띄는 거대한 벽, 객석과 무대 사이는 벽으로 막혀 있었다. 얼마나 공들였을까. 벽돌처럼 층층이 쌓여 천장 끝까지 올린 수많은 박스들은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 멘트가 끝남과 동시에 와르르- 단박에 모든 것이, 공든탑이 무너져버렸다. 무대를 가로막았던 상자들이 순식간에 무너진 것은 그야말로 비쥬얼 쇼크였다.

 

허물어진 박스들 사이로 양한비가 드러난다. 몸만 커버린 유아, 그녀는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공주 발레복을 입고 완전히 공허하지도 않고, 또 완전히 호기심 어리지도 않은 눈빛을 하고 앉아 엄지손가락을 빨고 있다. 어른과 아이의 사이 그 어디엔가 머물러 있는 모습은 이 작품의 키워드인 ‘결핍’을 보여주기 적합했다.

 

양한비는 무너져 내린 공든탑의 파편(박스)들을 무대 중간 중간에 야트막하게 다시 쌓는다. 그리고 부서트리고 또 다시 쌓기를 몇 차례 반복한다. 옷에 매달려있는 공갈젖꼭지를 물고 빨아가면서… 정신적으로 다 커버리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무조건 ‘남보다 내가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살기를 다짐했고, 달리게 만들었고, 끝없는 이 굴레를 받아들이며 매일을 살았다고 한다.

 

공주 발레복에 갇혀있던 양한비는 어느새 거기로부터 허물 벗듯이 빠져나와 현재 그녀의 모습을 연출한다.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강박증, 그로인한 스트레스로 몸에 이상이 오고 박탈감을 느끼며 쌓고 허물기를 무의미하게 반복하는 것일까. 가끔은 철없는 아이처럼, 가끔은 사춘기 소녀처럼, 또 가끔은 전쟁터에 나간 군인처럼, 그녀 나름의 방식으로 더 많이 갖기 위해 매일을 살고 있는 삶을 박스의 재조합을 통해 보여준다.

 

‘탑’을 상징하는 박스들을 빼놓고는 이 작품을 설명할 수가 없다. 양한비가 선택한 이 소품, 그 선택부터 그녀의 인생을 말해주는 듯했다. 하나만으로는 안 되고, 하나-둘-셋-넷 일영종대로 차곡차곡 쌓여야 높은 벽을 이루게 된다. 정상에 도달하고자 매일을 ’빡세게‘ 살아가는 자기본분, 정체성을 살린 소품이었다. 그러나 첫 장면에서 단박에 무너져 내렸던 임팩트, 쌓고 허물기의 반복, 무대연출 효과가 컸던 만큼 그 영향력에 대한 기대감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상식을 뛰어넘는 소품의 사용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무대 뒤 호리존트에서는 시종 글씨들이 춤을 춘다. 일기형식으로 풀어가는 다양한 에피소드들 속에는 당시 느꼈던 다짐, 열정, 욕심, 충격 등이 전개된다. 춤추며 흘러가는 글자를 계속해서 붙잡으며 작품 전개를 따라가게 하는 것은 텍스트가 주는 힘이다.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 움직임들은 텍스트와 함께 흘러가며 이해를 도왔다.

 

‘결핍’ 이외에 ‘돈’에 주목한 부분에서 양한비는 장난감 총을 들고 허공에 위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자신을 겨누기도 한다. 무대 뒤의 문을 열고 계단으로 올라가 2층의 무대로 이동하며 총을 겨누는 움직임이 절정에 달하더니, 그 총에서 돈이 뿌려진다. 위에서 아래로 돈은 낙엽이 바람타고 춤을 추듯, 그렇게 떨어진다. 자아도취에 젖어 돈을 뿌리고 결국 주워 담기 바쁘다. ‘돈’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 위트 있게 표현된 장면이다.

 

<Top> 작품을 통해 인간적인 욕망과 질투에서 비롯된 자기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낸 양한비는 또 어떠한 생각으로 살아가며 어떠한 작품을 만들어갈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신진 안무가이다.

 


 

 

 


 

▶ 박혜리 안무 <결함>

 

    하얀 풍선의 파장과 박혜리의 독백

 

 

 

마지막, 세 번째 작품은 12.2-3일에 걸친 박혜리의 <결함>이다. 이 작품은 박혜리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관점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차세대안무가페스티벌 안무작 < I >에서 출발한다.

 

시간이 되어 입장하려는데, 극장 안은 온통 깜깜하다. 안내해주는 스태프가 조용히 말을 건넨다. “핸드폰 플래시 플래시를 켜고 입장해주세요~” 그때부터 공연은 시작되었다. 빛 하나 새어들지 않게 해놓은 극장에 입장하는 관객들의 빛줄기가 하나, 둘 더해지며 공간에 수를 놓는다. 무대바닥을 가득 메운 볼록볼록 하얀 풍선은 새까만 두리춤터 극장과 대비되어 도드라져 보였다. 박혜리는 저 가득 찬 공간을 어떻게 거닐 것인가? 저 풍선들은 어떤 운명으로 이 극장을 가득 메운 것일까? 무대와 객석 사이 야트막한 벽을 세우고 무대 중앙 앞쪽에 양팔로 무릎을 감싸고 우두커니 앉아있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애처로움이 묻어난다.

 

함께한 무용수 오지은과 허미소는 박혜리와 함께 검은 풍선을 터지기 직전까지 천천히 불고, 그 바람을 맞고, 또 다시 불고 날려버리기를 반복한다. 검은 풍선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하얀 풍선으로 가득 차 있는 무대와 대비를 이루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흰 풍선들은 물살이 갈리듯 밀려나며 파장을 일으킨다.

 

풍선 하나가 펑- 터지며 무대에 혼자 남은 박혜리는 두려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핀다. 그녀의 시선 연기는 어떠한 큰 움직임보다 효과적이다. 나는 두렵다고, 주변의 시선이 끔찍이 싫고 부담스럽다고, 가슴을 조여 오고, 몸을 기어 다니는 벌레 같이 느껴진다고, 움직임 하나 없이 온몸 가득 말한다. 세포 하나까지 살아나서 말하고 있는 듯하다. 떨림으로 시작한 움직임이 커지며 풍선은 요동친다. 작은 움직임에서 비롯되는 파장은 박혜리 내면의 울림이 커지는 것과 비례하며 큰 파장으로 번져나갔다. 그 위로 지쳐 쓰러질 때, 풍선은 무덤이 되었다.

 

그때, 박혜리가 겪었던 갑상선질환에 대한 그녀의 독백이 울려 퍼졌다. 3인칭 시점으로 감상선 질환의 정의와 증상에 대해 설명하는 목소리에서 이미 그녀는 그 시절을 딛고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현재의 상황에서 과거를 회상하듯 작품을 이어간다. 오지은과 허미소는 박혜리에게 다가와 그녀가 입고 있는 원피스 안으로 풍선을 가득 밀어 넣었다.

 

풍선소녀는 한걸음 내딛기도 힘든 모습이다. 비틀비틀, 조심조심, 쓰러지지 않기 위해 간신히 버티며 발짝을 띈다. 지금 모양새의 최선의 모습으로. 그리고 자욱한 안개 속에서 부종을 벗어버리지만, 이미 자신의 일부가 된 그것을 소중히 안아 올렸다가 미련 없이 떨궈 버린다. 표정 하나로, 몸짓 하나로 의식의 흐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은 박혜리가 갖은 뛰어난 재능이다.

 

어느 곳보다 가장 편안한 공간이었던 그녀의 방 안, 그 안의 모든 것들이 눈에 관련된 것들로 보이기 시작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한다.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지만, 고요함과는 거리가 멀다.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꼼짝할 수 없는 중압감은 박혜리를 짓누르고 있다. 오지은과 허미소는 박혜리를 가운데 두고 얼굴을 맞대고 부비며 때로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때로는 무작위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시선놀이를 한다. 메두사의 머리처럼 많은 시선을 가지고 있지만 주체성이 결여된 채로 사물의 시선을 맨몸으로 받아낸다. 학교 앞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리와 대조되며 그렇게 그녀는 처절하게 슬프고 기괴하다.

 

1층 두리춤터 창문의 커튼이 윙- 소리를 내며 열린다. 밖이 훤히 보이는 창문 한켠에 산발적으로 끼적여진 그녀의 메모가 시선을 잡는다. 무용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기억, 학창시절 무용 콩쿠르에 나갔다가 처음으로 탈락했을 때의 감정, 왕따를 당한 경험 등 누구나 겪어봤음직한 삶의 경험들을 이야기를 적어나가는 퍼포먼스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것은 그녀의 역사이자, 자신을 받아들이며 치유하는 하나의 아름다운 의식과도 같았다.

 

오지은과 허미소는 하수 뒤쪽에서 박혜리가 있는 상수 앞쪽을 향해 성급하지 않게 나온다. 듀엣은 굉장히 함축적이다. 박혜리가 적고 있는 메모의 내용을 몸짓으로 풀어내는 듯, 박혜리 생각의 분신같이 그녀를 대변하고 도닥이고 격려하며 세상을 바로 보게끔 용기를 북돋아 준다. 가린 눈을 열어주기도 하고, 감춰주기도 하고, 돋보기를 대 주기도 한다. 3인이지만 이들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 모습에 보는 이들은 가랑비에 옷 젖듯 박혜리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박혜리의 수많은 감정들처럼 엉키고 풀리며, 울고 웃으며 무대와 관객이 하나 되는 순간을 경험케 했다.

 

박혜리는 온몸으로 말하는 춤꾼이다. 기본적으로 춤의 테크닉이 뛰어날 뿐더러 그 몸짓에 담겨있는 의미들을 살려내 관객의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결함>은 그녀를 훌륭한 춤꾼일 뿐 아니라 한국창작무용을 이끌어갈 안무가로서의 잠재력을 보여줬다.

 


 

 

 


 

포이어프로덕션 제작의 “무용·영상 융복합시리즈”의 3작품, 김현우의 <이명>, 양한비의 <Top>, 박혜리의 <결함>은 결국 자기고백이자, 세상에 도전장을 던진 격이다. 자기고백은 커다란 용기가 뒷받침 되어야만 가능하다. 거짓일랑 버리고 솔직하다는 것, 담백하다는 것, 이 세상에 보호막 하나 없이 맨 몸으로 부딪힌다는 것은 오롯한 나와 대면하는 순간이다. 나의 이상과 모순투성이인 내가 부딪히는 그때 나는 나를 깨부수게 된다. 이 과정은 맑은 경지에서부터 다시 내 인생의 탑을 쌓는데 필요한 원동력을 만들어 내는 매우 중요한 경험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패배하지 않고 두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는 의지이다. 이들의 용기 있는 고백은 필시 새로운 길을 내고 좋은 자양분이 되어 줄 것이다.

 

자신이 겪은 비극을 다양한 표현의 방법으로 토해낸 이들의 인생과 예술세계가 기대된다. 예술세계를 구축해 나가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두리춤터, 새로운 융복합 예술을 시도하는 포이어프로덕션의 다음 콜라보레이션은 현 시대의 예술계가 주목해야 할 것이다.

 

박지선(무용학박사, 무용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