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시론

삼척향교 87회 장의생활 1년, 졸업을 앞두고 남기고 싶은 이야기

안대기 / 삼척향교 87회 장의 2019년 10월26일 삼척향교 87회 장의 18명은 율곡 선생의 학문과 유덕을 기리는 제58회 대현율곡이이선생제례 행사에 참여하고자 정연만 사무국장의 인솔로 유복을 챙기고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 8시 30분 삼척향교 앞에서 관광버스에 탑승했다. 버스 안에서 정연만 사무국장은 율곡 이이 선생의 행적과 제례행사 일정에 대하여 간

전남표 기자 2020. 1. 22.

 

안대기 / 삼척향교 87회 장의

 


 

2019년 10월26일 삼척향교 87회 장의 18명은 율곡 선생의 학문과 유덕을 기리는 제58회 대현율곡이이선생제례 행사에 참여하고자 정연만 사무국장의 인솔로 유복을 챙기고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 8시 30분 삼척향교 앞에서 관광버스에 탑승했다.

 

버스 안에서 정연만 사무국장은 율곡 이이 선생의 행적과 제례행사 일정에 대하여 간략한 말씀을 했고, 이어서 동임 정재홍 장의께서 율곡 선생의 생애와 학문에 대해 설명했다.

 


 

 

율곡 선생의 동상 앞에서 단체기념 사진

 


 

율곡 이이와 퇴계 이황의 관계, 율곡 선생의 성리학 개념, 13세의 어린 나이에 진사초시 합격을 시작으로 무려 아홉 차례나 장원급제한 일, 29세 때는 명경과에 장원급제하여 호조좌랑의 첫 벼슬길을 시작으로 요직을 두루 맡아 민생을 위한 정치를 펼치신 일, 48세 때는 선조 임금께 오랑캐와 왜구 침입에 대비하고자 10만 명의 군사 양성을 주장하신 것(10만 양병설),  그리고 수많은 업적과 불후의 명저를 남기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율곡 선생에 대한 존경심이 더 깊어졌다.

 

우리 동임 모두 그동안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알고 있는 율곡 선생에 대해 좀 더 깊이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런 대현의 제례 행사에 참배하게 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문성사 앞에 마련된 제단

 


 

삼척향교를 출발한지 한 시간 만에 강릉 오죽헌 행사장에 도착했다. 먼저 와 있는 일반시민·학생·어린이·관광객·군인들과 그 군중 속에 강원도 내 각 향교에서 온 유림들은 찬바람에도 당당하게 기품 있게 유복 차림으로 서 있는 것을 보니 왠지 흐뭇한 마음이었다.

 

여러 계층의 많은 분들이 제례행사에 참여한 것은 그만큼 율곡 선생이 국민적 추앙을 받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리라. 대현을 사모하는 우리 국민들의 인품과 예절이 정말 멋져 보인다.

 

우리는 유복으로 의관을 정제하고 행사장에 들어서면서 입구에 있는 율곡 선생의 동상 앞에 단체로 기념 촬영을 했다. 유복차림의 우리 모습이 고전적이고 품위 있게 보이는지 관광객들이 우리를 모델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시간이 지체되어도 그 분들의 여행이 특별하고 의미 있는 경험으로 오래도록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즐겁게 포즈를 취해 주었다.

 


 

 

제집사 및 율곡 선생 제례 참배객

 


 

제례 봉행은 강원도 내 15개 향교의 유림과 시민 약 2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오전 10시 문성사 앞 광장에 마련된 제단에서 권오열 성균관 전학(유도회 성덕지회장)의 집례로 시작했다. 헌관은 초헌관 김성호 강원도부지사, 아헌관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종헌관 김유묵 강릉향교 전교가 맞았다.

 

제례는 ‘강신례’(신을 모심)로 시작하여 ‘초헌례’(초헌관이 잔을 올림), ‘아헌례’(아헌관이 잔을 올림), ‘종헌례’(종헌관이 잔을 올림), ‘음복례’(음복), ‘사신례’(신을 돌려보냄), ‘망료례’(폐백과 축문을 태움)의 순서로 진행됐다.

 

제례 봉행함에 있어 헌관을 비롯한 제(諸)집사들은 율곡 선생에 대한 예를 표함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일사불란하게 마쳤다. 또한 제례 봉행 중 헌악(주악)은 강원도립국악관현악단이 맡았고, 현무는 강원예술고 학생들이 사일무를 펼쳐 행사의 분위기를 한결 장중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강원예술고 학생들이 사일무 춤을 추고 있다.

 


 

제례 참배하러 오기 전까지 나는 율곡 선생께 올리는 절이 왜 재배(再拜)인지 매우 궁금했다. 지난 6월 성균관 고유봉심 갔을 때 공부자(孔夫子)에게 절을 네 번 했는데, 율곡 선생에게는 왜 두 번 하는지…….이번 율곡 선생 제례행사에 참여함으로서 확실히 알았다. 공부자는 문선왕으로 추대 받았기 때문에 네 번 절을 하고, 율곡 선생은  성리학자로서 향교의 대성전에  18현으로  왕이 문성공으로 교지하셨기 때문에 두 번 한다는 것을…….아!~그러고 보면 정말 삼척향교에 입문 잘 했다고 생각한다.

 


 

 

제례 참배를 마치고 제단 앞에서 기념 사진

 


 

제례를 마치고 오죽헌을 둘러보았다. 율곡 선생이 태어난 몽룡실, 선생의 영정이 있는 문성사, 신사임당의 영정이 있는 사당 등 유적지 곳곳을 관람해보니 각 유적의 설명과 격몽요결에서 인간이 살아가는데 귀감이 되는 말씀을 표지판에 아로새겨 귀한 공부가 되게 했다.

 

격몽요결은 율곡 선생께서 초학(初學)의 향방을 정하지 못한 제자들에게 뜻을 세우고, 몸을 삼가며, 부모를 봉양하고, 남을 접대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책으로 선생의 높은 학문과 고매한 인품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중국의 소학(小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조선시대의 명저서로 널리 알려져 전국의 향교에서 교과서로 사용하였고 오늘날까지도 소중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책이다.

 

또한 오죽헌은 세계 최초의 모자(母子) 화폐 인물의 산실로 강릉의 시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강원도 아니 온 국민이 찾는 관광지로서 손색이 없는 곳이다. 아들을 큰 인물로 키운 신사임당의 교육정신이 살아있고, 대학자요 지혜로운 정치가 율곡 선생의 애민사상이 오죽처럼 건강하게 생동하는 교육 및 인격수련의 현장이다.

 

제례 참배 일정을 끝내고 관광버스로 귀가하는 중에 내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정수철 전교의 말씀이 떠오른다. “여러분들은 향교에서 열심히 배워서 나아가 삼척의 각종 문화행사에서 지내는 제례행사를 바로 잡고, 인격적으로 타의 모범인 큰 선비가 되셔야 합니다” 라고 교육 때마다 강조하는 말씀이 오늘따라 더 큰 울림이 되고 있다.

 

율곡 선생 제례 참배 행사에 다녀온 이후 나의 정신과 몸가짐이 달라졌다. 유교의 근본사상(인의예지)과 교학사상을 항상 머릿속에 그리며 초하루 및 보름 분향 때 새벽 일찍 향교에 등교하여 대성전에 촛불 켜고, 향불 피우고, 헌관 제(諸)집사 재배용 돗자리 펴고, 관수대 및 관수 준비하고, 명륜당에 들어서면 책상과 의자를 정리정돈하고, 책상 위에 유교신문 배부하는 등 졸업할 때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더 열심히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율곡 선생 제례 참배 행사에 참석할 수 있게 배려하여 주신 정수철 전교와 정연만 사무국장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 후배 장의들에게도 이런 자리를 마련하여 삼척향교가 생동하는 교육현장이 되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당부 드린다. 아울러 율곡 선생 제례 참배 행사에 함께 한 87회 동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