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동민 / 석전대제 이수자
유림이 의식(儀式) 중에 쓰는 모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유교적 관점에서 볼 때 전통사회에서는 죄인이나 천민인 백정(白丁), 상(喪) 중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반드시 모자를 써야 했다. 적어도 단발령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상식 중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현재 단발을 하고 서양식 옷을 입은 상태에서 분향이나 석전 의식 중에 유림이 머리에 모자를 써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아래는 청장관 이덕무 선생이 사소절에서 말씀하신 내용이다.
「사인(士人)의 머리에는, 아무리 바쁘고 권태롭다 해도 한시라도 모자를 쓰지 않아서는 안 된다. 다만 머리가 형틀에 갇힌 죄인이나 머리를 풀어헤친 상주(喪主)는 관(冠)을 쓸 수가 없다. <퇴계 선생의 제자로 도산 서원에 유일하게 종향되어 있는> 월천(月川) 조목(趙穆)의 자제들 중에 미처 모자를 정돈하지 않은 자가 있었다. 월천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옛날에 관녕(管寧)이 풍파(風波)를 만났을 때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기를 ‘내 평생에 다른 죄는 없고, <죄가 있다면> 단지 새벽에 3일 동안 머리를 싸매지 않고 모자를 쓰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모자를 쓰지 않는 것은> 매우 나쁜 일이니, 삼가서 그렇게 하지 말라” 하였다. (士人頭上 雖忙且倦 不可一時無冠 惟囚首之罪人被髮之孝子可以無冠 趙月川穆 子弟有未及整冠者 月川厲聲曰 昔管寧遇風波仰天呼曰 吾平生無他罪 但三晨不裹頭不冠 甚是惡事 愼勿如是)」
이덕무 선생의 말씀을 빌려 거듭 정리하면 결발(結髮)한 상태로 조선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모자를 쓰는 것은 당연지사이니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
문제는 단발을 한 이후의 문제다. 현대의 유교의식에서 복식과 모자 착용에 대한 숙제가 남는다.
1. 단발을 했으면 서양의 에티켓에 따라 의복에 관계없이 실내에서는 모자를 벗고, 실외에서는 착용하는 원칙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토의가 필요하다.
2. 두루마기는 서민의 옷이라지만 우리나라의 옷이니 유교적 관점에서 모자를 쓰는 것을 바른 예절로 정착시켜야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전통적인 모자를 쓴다면 이 모자는 실내에서 벗어야 될까 써야 될까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3.단발한 상태에서 두루마기[周衣]에 유건을 쓰는 것이 합당한지 아니면 중절모를 비롯한 다른 모자를 쓰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해서도 토의할 필요가 있다.
4.물론 본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유건(儒巾)에 도포(道袍)라면 시대를 초월하여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두루마기는 원래 서민의 옷이다. 서민의 옷인 두루마기에 선비의 모자인 유건을 쓰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옳지 않은 일일 것이다. 유건 도포라는 말이 있어도 유건 주의(周衣)라는 말은 없기 때문이다.
5. 현재의 우리는 두루마기에 유건을 쓰는 것이 유가의 법도에 맞는지 여부의 검토도 없이 대체로 긍정적이다. 반면에 양복에 유건을 쓰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대다수다.
각설하고 해방 후에 봉행한 석전 때 찍은 사진을 아래에 올린다. 아마도 심산 김창숙 선생이 참석한 아래의 사진은 당시 유림의 정서나 정신에 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균관을 찾은 아놀드 미군정장관이 심산 선생을 비롯한 유림들과 사진을 찍었다.(1946년)
사진 속의 인원은 총 46명이다. 맨 앞이 심산 김창숙 선생이다. 이들 가운데 석전 제복을 갖춘 자가 11명, 심산 선생을 비롯해 두루마기를 입은 자가 8명, 양복을 입은 자가 18명, 군복 일습을 갖춘 미군이 9명이다.
석전 제관과 미군을 제외한 사람은 26명이다. 두루마기를 입은 자 가운데 중절모 착용 자는 1명이고, 양복을 입은 자 가운데 중절모를 착용한 자는 2명이다. 즉 유니폼을 제외한 우리 옷인 두루마기와 서양 옷을 입은 26명 가운데 3명만이 중절모를 착용했고, 그 나머지는 유건 등 일체의 관(冠)을 착용하지는 않았다.
이 사진만을 가지고 말한다면 두루마기나 양복에 관계없이 모자를 쓸 필요가 없다. 당시에 유건이 필요했다면 유건을 썼겠지만 26명 가운데 유건을 쓴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현재의 의식에서도 유건에 도포는 가하지만 두루마기나 양복에 유건은 불가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럼 향사 중에 두루마기에 유건이나 갓을 안 쓰면 백안시(白眼視)하는 풍조는 어떻게 봐야 할까? 양복에 유건을 쓰는 것이 잘못이라면 두루마기에 유건을 쓰는 것도 분명 잘못이다.
하지만 유림들이 향사에서 복식과는 무관하게 유건을 쓰도록 강요할 때가 종종 있다. 난감한 일이지만 이것은 의식을 경건하게 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배어 있음에 다름 아니니 무작정 그르다고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여기에도 전제는 있다. 한복이든 양복이든 제대로 갖춰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캐주얼한 복장에 유건을 쓴다든지 양복 위에 도포를 걸치고 유건을 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본인이 분향 때, 서양 옷에 유건을 착용한 변명이다. 여러분의 지도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