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재 / 성균관유도회 충주지부 회장, 수필가·시조시인
한민족은 두뇌가 명석하기로 어느 민족보다 우월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민족을 혹평하는 말로 모래알 같아 개인으로는 똑똑하지만 화합(和合)이 잘 안 된다고 한다. 개인은 똑똑하고 우수하지만 서로 어우러져 화합할 줄 모르고 편을 가르며 반목하면서 살아온 역사를 가진 민족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으로 갈리고 영남(嶺南)과 기호(畿湖)학파가 대립하였고, 남북이 나뉘어 세계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사상은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로 남북이 갈렸고, 정치는 영남과 호남으로 나뉘어 갈등으로 대립하고 있다. 화합하여 영·호남이 하나가 되고 남과 북이 한민족으로 통일하는 날이 언제나 올지 전혀 앞이 보이지 않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선거를 치르면서 그렇게 화합을 외치지만 흐트러진 민심을 화합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오랜 세월 잘못되어온 적폐들을 바로잡아 새로운 나라로 태어나야만 우리의 미래가 있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화할 화(和)자의 자원(字源)을 풀어보면 입 구(口) 부수(部首)에 벼 화(禾)자를 합한 형성(形聲)자이다. 음을 나타내는 禾(벼: 음식)를 여럿이 나누어 먹는다(口:입)는 '화목하다.'‘화해(和解)하다’를 뜻하는 참으로 좋은 글자이다.
화(和)자에는 서로 뜻이 맞아 사이좋은 상태가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내가 선택한 후보가 당선되지 못하였더라도 다수가 지지한 후보를 중심으로 화합하는 것이 민주주의 발전과 국가발전에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영·호남인의 관계를 두 분의 학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광주와 호남을 대표하는 학자,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선생과 안동과 영남을 대표하는 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 간의 교류의 역사가 있다. 이러한 아름다운 교류의 역사가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도 않고 계속 확대 재생산되지도 못하고 있어 아쉽다.
고봉 선생과 퇴계 선생 간의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되새겨 보면 퇴계와 고봉은 무려 스물여덟 살이나 나이 차가 난다. 장유유서(長幼有序)가 기본질서였던 조선시대에 새파란 젊은 선비와 백발을 날리는 조정의 원로가 나이차, 신분 차이를 뛰어넘어 평생을 학문의 동지(同志)로서 존경하는 선배와 사랑하는 후배로서 정을 나누었다. 퇴계가 벼슬에서 물러나 안동으로 돌아갈 때도 고봉은 한강까지 따라와 눈물로 배웅하며 남긴 칠언절구(七言絶句) 이별시(離別詩)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한강수는 넘실넘실 밤낮으로 흐르니(漢江滔滔日夜流)
떠나시는 우리 선생 어이하면 붙잡으리(先生此去若爲留)
모래 가에 닻줄 끌고 못 떠나게 배회할 제(沙邊拽纜遲徊處)
밀려오는 애간장 시름을 어찌 할거나(不盡離腸萬斛愁)
퇴계는 세상을 하직하면서 고봉이 비문(碑文)을 쓸 것은 불을 보듯 뻔한 데, 마구 침소봉대(針小棒大)할 것을 우려해 퇴계 스스로가 비문(碑文)을 지었다고 한다. 서로 주고받는 편지글을 보면, 누가 나이가 많은 이고, 적은 이인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서로 극진한 예를 갖추고 있다. 고봉이 처세(處世) 등이나 크고 작은 일의 의논을 구할 때 퇴계가 보내주는 답 글은 아직 다듬어지진 않았지만 그 속에 보석을 품고 있는 어린 후학을 아끼는 마음으로 예를 다하면서도 때로는 매섭게 질책(叱責)하고 때로는 따뜻이 어루만져주는 마음이 그대로 녹아 있어 그들의 나눔의 정(情)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 두 분의 학자처럼 화합하는 모습을 본받아 선비정신의 맥을 이어가는 유림사회가 화합의 선봉에 서서, 동(東)과 서(西)가 화합하고 남(南)과 북(北)이 화합하여 세계 속에 우뚝 서는 날이 오길 고대(苦待)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