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은(춤평론)
제5회 신진국악실험무대 ‘청춘대로 덩더쿵’ 공연(2020.10.7~16))이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며 두리춤터가 주관한 이번 기획은, 예술감독 임학선(성균관대 문행석좌교수) 연출, 강낙현(포이어프로덕션 대표) 음악감독, 임영호(유희컴퍼니 대표) 안무가, 김도은 ‧ 양한비 ‧ 박철순 ‧ 류일훈 ‧ 유효정과 음악가 남정훈 ‧ 박준형 ‧ 조봉국 ‧ 안태원 ‧ 박한결이 협업을 이루었다.
2020 ‘청춘대로 덩더쿵’은 코로나19 시대가 나은 비대면(Untact) 공연시대를 무색하게 할 만큼 신진 안무가들의 “춤호흡과 음악의 절주 그리고 공간의 역발상”이 흥미진진한 무대였다. 2015년 제1회 공연을 기점으로, 무용과 국악의 만남 안에 전통의 가치를 녹여낸 청춘들의 이번 무대는 신진국악실험무대 5년의 포부와 관록이 빚어낸 두리춤터의 의미 있는 결실이기도 하다. 각각의 작품들에 대한 완성도를 차치하고라도, 코로나19라는 악재를 불사한 2020 ‘청춘대로 덩더쿵’은 참여 예술가들은 물론 관객들에게 오래도록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청춘대로 덩더쿵’의 진화는 일련의 과정 그 자체에 큰 의의가 있으며 결코 단 기간에 이룩된 것이 아니다. 제1회 신진국악실험무대 ‘청춘대로 덩더쿵’(2015)이 경연방식(최우수상/우수상/신진안무가상/현장평가단상/열정상)으로 신작중심의 안무자 역량에 집중했다면, 페스티벌의 성격을 지향한 제2회 공연(2016)은 재연작품을 포괄한 무대 연출이 한층 성숙해진 무대였다. 또한 제3회 공연(2017)은 춤공간의 개념을 관객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객석까지 확장시킨 안무자들의 공간 운용력이 비약적 발전을 보인 무대였다... 그런가하면 제4회 ‘청춘대로 덩더쿵’은, 안무가와 음악가들의 팀 매칭을 도입하여 MR을 주로 하던 기존의 춤공연 방식에 연주자들의 실연을 더해 라이브무대로서의 예술적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이 특징이라 할 것이다.
2019 <청춘대로 덩더쿵> 자료짐. 박자은 리뷰 中
‘무용과 국악의 협업’은 악기의 물리적 질감과 본연의 음색을 활용한 음향효과 등 국악 퍼포먼스의 비중이 크게 증가한 2019 ‘청춘대로 덩더쿵’의 연장선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신진안무가들의 실험성 짙은 안무와 함께 협업 음악가들이 선사한 라이브 연주는 공연의 현장성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고, MR을 반주로 하거나 특정 악기의 선율을 강조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삽입했던 기존의 춤 공연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반복 재생으로 라이브의 효율을 극대화 하는 루프스테이션의 다채로운 활용이라든가 박한결의 핸드펜(handpen)처럼 서양악기를 적극적으로 투입(유효정 안무 <공허지지>)하는 등, 이제 협업 음악가들과의 콜라보는 ‘청춘대로 덩더쿵’의 성격을 규정할 만큼 그들의 역량을 거침없이 실험하고 과시하는 무대가 되고 있다. 2020 ‘청춘대로 덩더쿵‘의 현장에서 그들을 만났다.
<닭장>_ 양한비 안무/ 목기린(박준형) 음악
사회적 거리두기가 공연장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되던 시기였다. 코로나 시대의 필수 수칙이 된 QR코드와 열 체크를 하고 극장으로 들어섰다. 양한비 안무 <닭장>이 예정된 두리춤터 1층 FOYER 극장이었다. 포이어의 온기와 함께 무대 전면에 아치 모양으로 놓인 붉은 카네이션이 관객들을 맞이하는 듯 산뜻하다. <닭장>의 무대장치였다. 관객입장을 위한 객석 라이트 너머로 무대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무용수들(양한비, 양세인, 윤민정, 허미소)은 2층 난간 사이로 다리를 떨군 채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오랜만의 나들이였던 만큼, 누군가에게 건넨 소심한 첫 인사는 얼떨떨하고 머쓱함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코로나가 씌어준 마스크 때문이리라... 그렇게 인사를 건네고, 끌리는 객석 한 칸 필자도 자리를 잡았다. 노크소리와 함께 양한비의 <닭장>이 시작되었다.
<닭장>(양한비 안무/목기린 음악 10.9~10)은 시대적 편견과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불이익과 편견을 토로한 작품으로, 동화적 화면에 옅은 페이소스가 아련한 작품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을 소재적 모티브로 착안한 안무가는, 닭들의 개성적인 모습 안에 여성들 자신의 불만을 입체적으로 투영하고 있다. 작품에서 닭들의 실제 소리를 담은 MR은 그 음향만으로도 <닭장>의 사실감을 극대화 하는 주요 장치이다. 닭벼슬을 연상키는 손동작이나 군집을 이뤄 쪼아대듯 움직이는 웨이브. 이를 적용한 동작들은 작품 <닭장>의 주제의식을 밝고 경쾌한 암탉으로 분하여 베이스 기타와 신디사이저 음색이 오버랩되면서 암탉들의 움직임을 더욱 생기 있게 하였다.
닭장의 경계를 암시하는 아치형의 카네이션 장식 그리고 달걀과 달걀판은 작품 속 주요장치이다. 춘앵무 음악을 차용한 전통혼례로 새색시의 모습으로 분한 암탉은 여인의 삶과 반복된 일상을 압축적으로 전개했고, 현대의 대중교통 안에서 주인공을 더듬는 나쁜 손을 연기하며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의 불합리를 담담하게 대비시켰다. 작품 속 클라이맥스는 볼록한 배로 등장한 임부 양한비의 모습부터이다. 달걀을 품에 안고 제자리를 도는 모습은 단조롭지만 무언가 독백을 하는 것만 같았다. 상징성을 강화한 단조로운 기법만으로도 주제 전달에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은 큰 이점이다. 다만, 국내외 무대와 콩클 등에서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양한비의 춤이 좀 더 강렬하게 표출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떨칠 수 없었다. 닭의 울음소리를 적절하게 배치한 목기린의 음악이 흐르고 장식을 배제한 화이트 컬러의 셔츠와 바지차림의 무용수들이 움직임과 동선을 시종 매끄럽게 리드했다.
한편, 닭장의 공간감을 입체화시킨 또 하나의 장치는 바로 목기린을 주축으로 한 라이브 연주였다. 비교적 밝고 경쾌하게 출발한 작품의 전개는 후반부로 갈수록 여인의 삶에 서린 숙명 혹은 한의 정서로 다가왔다. 암탉이 낳은 달걀이 달걀판 위로 하나 둘 쌓여 가지만 정작 그들은 마음껏 소리 내어 무언가를 외치지 못하는 그 모습이 객석으로 전해졌다. 달걀이 가득 담긴 달걀판을 들고 퇴장했던 양한비. 돌아서 두 손에 든 달걀판을 바닥에 내팽개치는 순간! “왜 그때 크게 울지 못했을까?”에 대한 일종의 깨달음 혹은 큰 결단이 내려지는 순간이었을까? 수탉의 울음소리로만 인식되어 온 “꼬끼오”는 양한비가 작품 <닭장>을 통해 쏟아 내고팠던 암탉의 ‘저항’이자 ‘해방’의 메시지였던 것이다.
<마츠리>_ 박철순 안무/ 조봉국 음악
박철순 안무/ 조봉국 음악 <마츠리>(10.11~12)는 청춘의 고뇌와 역경에 저항하는 박철순의 씨니컬한 감성이 개성적인 무대이다. 박철순의 안무가 화려한 삶 속에서 마주치는 이면의 솔직한 감정을 풍부한 연기력과 즉흥성을 가미한 움직임으로 표현하였다면, 여기에 부합하는 협업음악가 조봉국의 화성적 코드는 무용수들과의 일체감을 더한 작품이었다.
작품 <마츠리>에서 가장 먼저 주목할 시선은 공간 활용의 역발상이다. 출입구가 바뀐 객석 입구를 들어서자 이 공연을 위한 맞춤식 무대가 펼쳐졌다. 기본 객석 위치와 무대의 위치를 180도 회전시켜 재배치 한 무대는, 작품 소재인 일본의 <마츠리>가 지닌 제의적 속성을 십분 활용한 안무자의 아이디어를 엿보게 한다. 후면으로 깊이를 더한 1층 무대와 2층까지 세트화 한 검은 상자들, 상수 후면에 배치된 악기와 연주자들의 실루엣조차 <마츠리>의 무대에서는 주요한 오브제가 되었다.
오묘함이 깃든 전자음향에 25현 가야금과 장구소리가 어우러지고 객석 전면을 등진 무용수들(김시원, 배진호, 서이진)의 등장은 시작부터 검붉은 어두움으로 가득하다. 춤꾼의 격렬한 무브먼트가 연속될수록 그들의 몸짓은 어디론가 각자의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했고, 거칠어진 숨소리와 함께 작품이 중반부에 닿을수록 박철순을 포함한 4인의 광기는 긴장감을 더해 갔다. 금속성 짙은 음향아래 무언가에 침잠하는 듯 어두운 분위기는 춤꾼의 거친 호흡과 즉흥성을 가미한 에너제틱함으로 공간을 메우는가 하면, 자신의 팔을 어루만지고 쓰다듬는 상처 입은 자아의 모습과 고뇌에 맞서 몸부림하는 치열한 자기애를 표현하는가 싶더니, 무언가에 호소하는 듯 빠르게 몰아가는 서이진의 춤사위는 애절함으로 다가왔다.
블랙이 주는 어둠의 시각성을 뚫고 2층 중앙 난간에서 박철순이 꽃잎을 떨구기 시작한다. 차안과 피안을 상징하듯 낱낱의 꽃잎들은 꽃비가 되어 1층과 2층의 경계를 지우듯 하나의 물줄기처럼 흘러내린다. 화려함 뒤의 어둠은 춤꾼의 거친 숨소리와 다이내믹한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여세를 몰아 분위기를 더 깊게 파고드는 협업 음악가 조봉국의 음색이 처연하게 흐른다. “넋이야 넋이로세... 영웅호걸 넋이더냐, 그 넋도 아니로세... ...!” 징과 소리에 맞추어 난간을 저항하며 춤추는 무용수들의 모습은, “고난 속에서도 함께라면 괜찮다”는 청춘의 절규인 듯 그렇게 춤추었다. 폭발적 장단과 함께 라이브 연주(조봉국, 박성권, 추현탁)가 휘몰아갈수록, 2층 난간에 매달린 박철순의 춤이 본격화되었다. 이어 무대 위로 가세한 박철순. 신에게 바치듯 두 팔을 지탱해 서이진을 제물로 올리는 모습이 ‘마츠루’(두 팔을 올려 제물을 바치는 행위)와 흡사하다. 2층에 다다른 서이진. 이제 꽃잎은 그녀로부터 흩날린다. 대비적 구성이 이색적인 지점이었다.
<마츠리>는 어린 시절 일본에서의 축제 현장을 은유적으로 담은 작품으로, 시종 치밀한 움직임과 몰입의 에너지를 놓치지 않았다. 특히 박철순에서 서이진으로의 역할 전이는 밝음과 어둠으로 또 어둠에서 밝음으로의 윤회를 연상케 했으며, 그들이 뿌리는 꽃비를 통해 <마츠리>의 퍼포먼스는 절정을 이루었다. 춤의 율동성 보다는 추상적이고 즉흥성이 강화된 구성이었지만, 작품 전반에서 풍기는 복잡다단함은 여백을 통해 다소 보완되어야 할 사항이다.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로 우리들의 일상이 변하고 있다. 코로나19의 한파에서 우리나라 역시 예외일 수 없었기에 2020년 상반기의 많은 공연들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사태가 이어졌고, 급기야 몇 달 사이 비접촉(Untact 공연)은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말았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와 이날치의 공연을 비롯해 세계적 한류스타 BTS가 경복궁과 공항에서 실시간 디지털 라이브 공연을 하고, 클래식 첼로가 도로 한복판에서 연주되었으며, 300년 전통의 고택에서의 전시와 공연이 실시간으로 온라인 공연을 기획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코로나가 몰고 온 공연문화 지형의 변화에도 다행인 것은, 2020 <청춘대로 덩더쿵>의 열기를 공연장에서 온전히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 어쩌면 가장 큰 성과였는지도 모르겠다.
30년 역사의 두리춤터가 오늘에 이르는 명성을 얻기까지 공간을 대변할 만큼의 비중 있는 프로그램을 든다면, 그 중 하나는 역량 있는 신진예술가를 인큐베이팅하는 ‘청춘대로 덩더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안타깝게도 제5회 ‘청춘대로 덩더쿵’ 전체를 관람하진 못했지만, 첫 해부터 5회의 기획을 지속적으로 지켜본 이로써 한 가지 제안하고픈 게 있다면, 우수작 또는 인기작 리바이벌 공연이 차기년도 프로그램에 추가되는 것은 어떨지. 청춘대로 덩더쿵의 기획 완성도는 물론 공연의 품격과 풍성함을 더할 것이다. ‘청춘대로 덩더쿵’ 공연이 부디 오래도록 건승하는 기획으로 지속되길 하는 바람에서이다.
2020 ‘청춘대로 덩더쿵’은 “춤호흡과 음악의 절주 그리고 공간의 역발상”이 흥미진진한 신진들의 무대였다. 협업아티스트들의 풋풋한 열정과 철학적 진지함을 떠울리며 다시 한 번 그들의 행보에 큰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