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완식 / 수원향교 장의
피리를 불면 온 나라의 모든 근심과 걱정이 해결된다는 전설이 있다. 『삼국사기』를 보면, 어느 날 한 신하가 제31대 신문왕에게 아뢰길 “동해 작은 섬에 대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낮에는 둘로 나뉘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지나이다”라고 했다. 왕이 이 이야기를 듣고 이상히 여겨 친히 그곳에 나가 용왕(?)에게 물어본, 즉,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질병이 쾌유하여 천하가 화평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그때 만든 악기를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피리를 불어 질병을 막고 천하가 태평하게 되었다는 하나의 이야기를 전설로만 볼 수도 있지만,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화평하게 하고 천지의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점으로 본다면 실현 가능한 일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공직에서 물러나 수원행궁을 지나던 어느 날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리 소리에 이끌려 간 곳이 수원 화서문 옆 작은 한옥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수원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국악체험 교실인 화서사랑채다. 지난 10년간 취미생활로 배우던 색소폰이 다소 지루함도 있었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 지난봄부터 소금과 대금을 배우고 있다. 향교에 출입하면서 궁중음악과 제례악의 각종 악기 소리에 관심을 가져보기도 했을 뿐 아니라, 몇 해 전 성균관 석전 참관 중 제례악에 매료되어 보기도 했었다.
논어 태백편에 시에서 일어나고(興於詩), 예로 서며(立於禮), 악으로 이루어진다(成於樂)고 했다. 나라의 정치에 이 세 가지가 필요하겠지만 개인의 삶에도 이 세 가지는 갖춰야 할 덕목이 아닌가 싶다.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예전보다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은퇴자 중에는 경전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도 있고, 한시를 공부하는 사람도 있고, 서예를 하면서 수신(修身)하며 예술의 경지까지 오르며 사는 사람도 있고, 등산을 통하여 신체를 단련하는 사람도 있고, 악기를 다루며 음악에 세계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이 들 중 한 가지에 몰두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를 조금씩 맛을 보면서 즐길 수도 있다. 꼭 어떤 게 좋다고는 할 수 없다. 각자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고 본다. 그간 나는 이들 모두를 조금씩 맛보았다. 이 중에서 굳이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음악이라고 말하고 싶다.
최근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모임도 줄어 사회활동도 어렵다. 코로나19가 온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나가기도 어렵고 집에서만 지낼 수밖에 없다. 모두가 답답할 뿐이다. 이런 때 삶에 활력소를 불어넣는 게 음악이 아닌가 생각한다.
전국의 향교·서원에서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대금 소리가 흘러나온다면 닫힌 향교와 서원의 문은 열릴 것이다. 내가 대금에 이끌렸듯이 많은 사람이 음악과 더불어 유교 속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되어 세상의 갈등은 씻어지고 태평한 세상도 멀지 않아 찾아오게 된다면 이게 오늘날 만파식적의 재현이 아닐까? 또한, 개인적으로 인생을 마무리하는 은퇴자에게도 딱 맞으니 성어악(成於樂)으로도 더없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