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시대 유교를 찾아 하늘을 날다
2015년 삼척향교에 입문하여 관복·유복도 입어보고 대성전에 봉안된 성현 39위에 분향도 하였다. 분향 체험은 매우 성스럽고 엄숙하여 나의 삶에 자긍심을 주었다.
졸업 기념으로 진상택 전교님과 정수철 사무국장님을 비롯하여 동임 30명이 3박4일간 일정으로 공자 문묘를 견학한다.
3월31일 새벽 5시! 삼척을 출발. 영종도 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KE847 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영화에서나 본 대륙 땅을 처음 밟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공자탄생 기원전 551년. 과연 언제쯤일까? 휴대전화기로 조회하니 무려 2,567년 전이다. 공자가 살았던 노나라 곡부를 가보고, 진시황제(기원전221년)와 한나라 유방이 하늘에 봉선의식을 행했다는 그 유명한 태산에도 오른다.
노나라는 夏·商·周 상고시대의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를 멸하고 새로운 봉건국가를 세웠는데 무왕의 동생 주공이 봉토로 받은 제후국이다.
공자가문은 원래 제후국 宋나라에서 무관을 지낸 집안인데 송나라 군주 “화독”이 공자의 7대 선조 공보가의 처를 흠모하여 빼앗고 공보가를 죽이자, 그 후 가족 모두가 해를 당할까 盧나라로 망명한다.
노나라 무사인 공자 아버지는 “숙량흘”인데 장대한 체격을 가졌으며 첫째 부인에게서 아홉 명의 딸을 얻는다. 대를 이어야 하는 터라 두 번째 부인에게서 아들 맹피를 얻는데 미숙아여서 다시 셋째 부인이 아들을 낳았는데 이가 공자이다.
노나라 곡부성읍 무당 집단거주지 오부지구에 안(顔:얼굴 화장의 의미로 당시무녀)씨 성을 가진 “안양”의 집에 딸이 셋 있었다.
흘이 대를 이어야 하는 고심 끝에 안양을 찾아가 속사정을 애절하게 털어놓자, 안양은 흘이 비록 70여세 노인이지만 무사이고, 경제력도 괜찮기에 큰 딸에게 의향을 물으니, “내가 미쳤나요?” 둘째는 “안가요!” 라고 거절한다. 그러나 이팔청춘 16세 셋째딸 “안징제”는 이를 받아 공자를 낳고, 흘은 3년 뒤 죽는다.
중국 사람들은 태산이 얼마나 높기에 천하제일 산으로 믿는가?
태산은 공자가 태어난 노나라 산이고,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에 있고, 신선이 있는 곳이며, 상고시대 황제들이 찾아 제를 올렸던 태고의 땅이라 그리 믿었으리라.
공자 탄생과 태산을 여기쯤 명상하니 제남 공항이다.
입국 심사 때 군복 입은 여군이 있어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남자군인이 찍지 말라고 소리 지른다. 핸드폰 뺏길까봐 겁먹었다.
가이드(이름 정만)가 반가이 맞아 준다. 흑룡강 태생 교포이다. 할아버지 고향이 전라도 나주인데 1930년경 흑룡강으로 이주 왔다고 한다. 어감이 우리랑 똑같아 한국사람 같다.
산동성 최대 호수공원 대명호로 가는 도중 가이드가 안내방송을 한다. 중국관광은 세 가지 복을 만나면 금상첨화라 한다. 날씨 복, 좋은 가이드 운전사 만나는 복, 음식 복이라 한다.
유람선을 탔다. 사방이 버드나무가 늘어져 있고 정자와 누각이 군데군데 보인다. 금나라 때 대명호라 불렀고, 연꽃이 유명하고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황제들이 차를 마시던 곳이라 한다.
저녁식사는 봉황관광호텔에서 뷔페식으로 한 다음, 전교님 방에 모두 모여 술을 먹으면서 첫날의 담소를 나누었다.
태산에 올라……
둘째 날 아침 7시 30분. 버스를 타고 1시간 40분 달려 태산 입구에 도착했다.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곤돌라가 있는 도화원까지 올라가서 1대에 6명씩 탑승하여 1,545m의 태산 정상에 올랐다. 주변경관을 둘러보니 “천하제일산”이라는 느낌이 없다. 오히려 설악산이 제일산 같다.
곤돌라왕복 200원, 태산입장료 125원, 왕복셔틀버스 60원, 1인당 약 팔만 원 정도다.
계단을 올라 “남천문”을 지나면 “천가문”이 나오는데 주변에 여관과 음식점, 기념잡화 가게가 즐비하다. 우리나라는 간이매점 정도가 있는데…….
천가문 아래 진시황제가 가마를 타고 올랐다는 계단이 보인다. 엄청 가파르다. 어떻게 가마를 타고 올랐을까? 지금은 계단이지만 그 당시는 아니었을 텐데…….
계속 오르니 백운정이 나온다. 힘들어 못가거나 일행을 놓친 사람은 여기 백운정을 만남의 장소로 한다고 알린다. 그러나 모두 등정을 한다.
세계에서 문화, 자연 두 유산을 동시에 지정한 곳은 태산뿐인데 이를 기록한 석각을 지나 100여 계단을 오르니, 도교 여신을 모신 “벽하사” 사당이 있고 그 옆에 “만대첨앙”에서 사람들이 향을 지피고 부적을 불사르고 있다.
공자우물 “성수정”을 지나자 황제들의 석각이 나온다. 황금색으로 입혀 새겨진 “천하대관 기태산명”이다. 총 1008자로 봉선의 역사와 선조의 업적, 자신이 하늘에 비는 소원과 각오 등을 기록한 내용인데 당나라 현종이 새겼다.
조금 더 오르자 천하 제일산 “오악독존”이 등장하고 옥황정 바로 아래 한 무제가 천하를 통일하고 자신의 업적을 새기려 했으나 태산의 경관에 감복하여 그 많은 글자를 새길 수 없어 비만 세운 무자비가 있다.
마지막 최고봉 옥황정이다. 태산의 정상을 알려주는 1,545m의 비석이 옥황정 정중앙에 있고 주위에 수많은 열쇠들이 복을 기원하는 중국인들의 민간신앙을 대변하는 듯했다.
고대 황제들이 여기서 봉선의식을 행했다.
옥황정에서 내려다보니 타이안 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옥황정 건너편에 공자가 내려다보고 천하가 작게 보인다고 한 그 위치에 “공자소천하처” 비석이 있다.
이리저리 둘러보고 옥황정을 뒤로 하니 배도 고프고 매우 덥다.
하산하여 현지식 점심을 먹고 “목어석” 기념품 판매장으로 갔다. 모두들 1점씩 구매했고, 민경주 총무가 함께 오지 못한 동임들에게 줄 기념품을 산다.
이어 5시 경 역대 제왕들이 태산의 신에게 제사를 지낸 “대묘”에 갔다. 1124년 송나라 휘종 때 유적이 많았고, 한백원에 2200년이나 된 측백나무가 지금도 살고 있으며, 서태후가 쓴 석각이 있다.
청나라 함풍제가 태후 둘을 두었는데 자금성 동쪽에 살았다 하여 동태후, 서쪽에 살았다하여 서태후라 불렀다고 한다. 노태후(우)는 어느 쪽에 살았을까요? 라고 가이드가 농을 한다.
30여분 대묘를 관람하고 곡부 “궐리빈사”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궐리”는 공자가 어릴 적 살던 마을 이름이라고 호텔소개 책자에 쓰여 있다.
공자, 맹자를 만나다
셋째날 아침 8시 40분. 호텔 뒤에 있는 공묘를 걸어서 갔다. 토요일이라 관광객이 무척 많다. 입장료가 150원. 우리 돈으로 삼만 원 정도이다.
5분 거리 앙성문을 들어섰다. 서울로 치면 남대문이다. 우리나라 숭례문은 예절을 숭상한다는 뜻이고, 앙성문은 공자를 우러른다는 의미다.
성벽에 만인궁장이라는 청나라 황제 건륭제의 친필이 새겨 있다. 공자의 제자 자로가 “스승의 인격적 높이는 만길 담장보다 높다”고 말한 데서 연유했다 한다.
대성전에 이르는 첫 문 영성문을 지나 여섯 개 문을 통과하니 대성전이 나온다.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경복궁 크기와 비슷하다.
모두 가져온 유복을 입고 공자전에 예를 표했다.
전교님이 홀기를 부르고 김진하 장의가 “대한민국 삼척향교”에서 왔다고 독축을 했다. 많은 외국 관람객들이 운집하여 이 광경을 관람하고 촬영하며 큰 관심을 보여주어 매우 흐뭇하였다.
공묘 옆에 있는 공부를 둘러보는 동안 바람이 불고 황사먼지가 대단하다. 준비해온 마스크를 썼다. 버스를 타고 “만고장춘” 문 앞에 내려 공림 입구까지 한참을 걸어가 북경장성반점에서 현지식 점심을 먹었다.
토요일이어서 至聖林을 보려는 관광객이 엄청 붐빈다. 지성은 공자님을 높여서 지성이고 林은 무덤의 최고 경칭이다. 공림, 맹림, 관림(낙양의 관우 묘)
공자 무덤 바로 앞에 손자 공급의 묘가 있고, 공자묘 오른쪽에 아들 공리의 묘가 있다. 우리나라도 후손들의 묘를 부모 묘 앞에 위치하도록 한 것이 여기서 유래되었을까?
공자묘 앞에서 예를 올리고 3시 15분에 공자사상을 세상에 널리 알린 맹자가 있는 추성으로 향했다.
맹자는 공자가 세상을 뜬 지 107년 후인 기원전 372년에 태어나 289년, 83세에 세상을 떴다.
30여분 정도 달리니 맹자고리(孟子故里)라는 글자의 석조기둥이 보인다.
맹자고리는 맹자의 고향마을 이름인데 공자마을 곡부처럼 번화가는 아니다. 행인도 별로 없고 조용하다. 맹부 주변으로 도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고 거리에는 허름한 식당과 가게가 있을 뿐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시설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맹묘 주변에 돌연변이 측백나무가 많고 뜰 앞에는 천진정 우물이 있는데 물은 없다. 맹묘에서 예를 올리고 맹자의 후손들이 살았던 맹부를 둘러보니 건물을 수리하느라 공사 중이었는데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 많아 고풍스런 이미지가 덜하다는 것을 느꼈다.
공자, 맹자 유적지를 하루 온 종일 걷고 나니 모두가 지쳐있다. 궐리빈사로 돌아오는 버스에 모두 꿀잠을 잔다.
저녁식사가 맛나게 차려 졌는데, 이명재 동임이 오늘 생일이라고 한다.
케이크를 자르고 모두가 축가를 불렀다.
식당홀 안의 외국인 식객들도 축하해 분위기가 참 좋았다.
공자님 맹자님 안녕히 계십시오
마지막 날 아침 7시 40분 홀가분한 마음으로 제남 성립박물관으로 간다.
버스 맨 앞에 탓는데 평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둑판 농지가 끝이 안보이고 나무라곤 없다. 언덕 산조차도 밭으로 일구었다. 우리나라 남해안 다랭이 마을처럼…….
2500년 전 공자가 우마차를 타고 대륙 땅 곳곳을 유람할 때도 바둑판 평원의 농지였을까? 아니면 언덕이 있고 수풀이 무성한 밀림이었을까?
11시50분에 성립박물관에 도착했다. 일요일이어서 관람객이 줄을 섰다.
산동성 고대 유물박물관인데 4층 건물로 웅장하고 각 층마다 볼 것이 많다. 하지만 공항시간을 맞추느라 15분간 관람하고 12시 15분까지 내려오라 한다.
주마간산으로 둘러보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공항인근으로 이동하여 연변의 조선족 젊은 여자가 운영하는 “잘 될 거야” 식당에서 버섯전골 점심을 먹고 참깨 5kg를 샀다.
그리고 삼엄한 출국심사 과정에 일행 5명이 배터리를 화물 짐에 넣어서 잠시 검열을 받았다. 덜컥 겁을 먹었다. 다행이 아무 문제가 없었다.
오후 3시 5분 대한항공 KE847 항공기가 제남 하늘을 오르니 비행기 아래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난다.
이번 견학 여정은 첫날 가이드가 말한 세 가지 3복을 모두 받은 듯 너무 좋았다.
공자님 맹자님 안녕히 계십시오.
삼척향교 제83회 장의 안도영
산동성 대명호 관람 기념
태산 천하대관 기태산명 등정 기념
태산 공자소천하처 비 앞에서
공묘 대성전 분향소에서 진상택 전교가 분향을 하고 있다.
공묘 대성전 참배 기념
공자묘 참배 기념
공자묘 참배를 마치고 진상택 전교와 기념 사진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