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시론

특별기고 - 其恕乎!

춘추시대(春秋時代)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투월초난(鬪越楚亂)을 평정한 뒤 공을 세운 신하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성대하게 연회를 베풀고 총희(寵姬)로 하여금 옆에서 시중을 들도록 하였다. 밤이 되도록 주연(酒宴)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광풍(狂風)이 불어 촛불이 모두 꺼져버렸다. 그리고는 어둠 속에서 불현듯 왕의 총희가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총희는

편집부 2016. 7. 27.

춘추시대(春秋時代)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투월초난(鬪越楚亂)을 평정한 뒤 공을 세운 신하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성대하게 연회를 베풀고 총희(寵姬)로 하여금 옆에서 시중을 들도록 하였다. 밤이 되도록 주연(酒宴)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광풍(狂風)이 불어 촛불이 모두 꺼져버렸다.

그리고는 어둠 속에서 불현듯 왕의 총희가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총희는 장왕에게 누군가 자신의 몸을 건드리는 자가 있어 그자의 갓끈을 잡아 뜯었으니 불을 켜면 그자가 누군지 가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고(告)하였다. 그러나 장왕은 촛불을 켜지 못하도록 제지하고는 오히려 신하들에게 "오늘은 과인과 함께 마시는 날이니, 갓끈을 끊어버리지 않는 자는 이 자리를 즐기지 않는 것으로 알겠다(今日與寡人飮, 不絶冠纓者不歡)"라고 말하였다. 이에 신하들이 모두 갓끈을 끊어버리고 여흥(餘興)을 다한 뒤 연회를 마쳤다고 한다.

3년 뒤, 초나라가 진(晉)나라와 전쟁을 하였는데, 한 장수가 선봉에 나서 죽기를 무릅쓰고 분투(奮鬪)한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 장왕이 그 장수를 불러 특별히 잘 대우해 준 것도 아닌데 어찌하여 그토록 목숨을 아끼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장수는 3년 전의 연회 때 술에 취하여 죽을죄를 지었으나 왕이 범인을 색출하지 않고 관대하게 용서해 준 은혜를 갚은 것이라고 하였다.

이 고사는 유향(劉向)이 지은 『설원(說苑)』 복은(復恩)편과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 등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절영지연(絶纓之宴)은 남의 잘못을 관대하게 용서해주거나 남을 어려운 일에서 구해 주면 반드시 보답이 따르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실화 한편을 더 소개한다. 고향이 경남 산청인 가난한 집안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가정형편도 어렵고 머리도 안 되는 아들을 대구의 중학교로 유학을 보냈다. 이 소년은 공부가 하기 싫어서 학업을 게을리 하였다고 한다. 한 학기 공부를 마치고 성적이 나왔는데 1학년 8반에서 석차는 68/68등으로 꼴찌를 하였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을 부모님 앞에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로 고쳐서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普通)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親知)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를 잘 했더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 제, 이번에는 어쩌다 1등을 했는가. 배." 했다. "명순(아버지)이는 자식 하나는 잘 뒀어. 1등을 했으면 책거리를 해야 제" 했다. 당시 소년의 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이튿날 소년은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소년의집 재산목록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부지!"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달려 나갔다. 등 뒤로 소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소년은 강으로 가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이 소년은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리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년 후 소년은 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나이 45세가 되던 어느 날, 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 "어무이!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 요." 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께서 "알고 있었다. 그만 해라. 민우(손자)가 듣는다" 고 하셨다. 자식의 위조(僞造)한 성적을 알고도,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의 관용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박사이고 교수이고 전 경북대 총장까지 지낸 이분은 박찬석 총장인데 아직도 감히 부모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는 글을 썼다. 공자(孔子)의 제자 자공(子貢)이 “한평생 내내 나침반으로 삼아 자신을 이끌어 갈만한 한마디가 뭡니까?(有一言而 可以終身行之者乎)”라고 묻자 공자께서 답하시길 “서(恕)이지!(其恕乎)”라고 하셨다.

“자신이 바라지 않는 것을 주위사람들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고 하셨다는 내용이 『논어(論語)』에 나온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 못하고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용서하는 관용의 미덕이 더 훌륭한 자녀로 키우고,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들에게 전해 주고 있다.

 

이찬재 / 충주향교 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