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시론

향교를 살리고 유학을 현양하는 길

손세제(철학박사) 유학은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는 학문이다. 사람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사람인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학문이다. 그런데 사람다움의 모습은 때와 장소에 따라 변한다. 여기서는 이렇게 행위하는 것이 사람다운 것인데, 다른 곳에서 그렇게 행위하면 사람답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는 것도 이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용

손세제 2022. 1. 4.

 

 

손세제(철학박사)

 


 

유학은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는 학문이다. 사람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사람인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학문이다.

 

 

그런데 사람다움의 모습은 때와 장소에 따라 변한다. 여기서는 이렇게 행위하는 것이 사람다운 것인데, 다른 곳에서 그렇게 행위하면 사람답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는 것도 이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용기’에 대해 보면, 어느 때는 ‘만용’을 부리는 것이 용기가 되나 또 어느 때는 ‘비겁’한 것이 용기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보면 사람다움은 개인의 노력도 있어야겠지만 시세에 적의하게 처신할 때에만 성립할 수 있음을 알겠다.

 

실제로 사람이 되려면 고등 동물로서의 ‘인간’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지만 사회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다. 중이 되고자 해도 중이 되려는 개인의 의지 외에 그를 중으로 만들어줄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중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맹자 같은 이도 성선(性善)을 말한 뒤에 존양(存養)과 성찰(省察) 외에 왕도(王道) 정치를 말했고, 순자도 성악(性惡)을 만한 다음에 그를 교정할 예악(禮樂)과 권학(勸學)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이렇게 인간다움이 때와 장소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면 유학도 변화된 시대 환경에 맞게 새롭게 해석되어 행해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 오늘날에 살면서 옛것만을 고집한다면 거추장스럽기도 하겠지만 대중에게 놀림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개인보다 사회가 중시되었다. 지금에 비해 사는 것이 여의치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혼자 사는 것보다 모여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모여 사는 사회를 해치는 것은 큰 죄악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가장 큰 죄악이 불효(不孝) 부제(不悌)였던 것은 이에 기인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는 이와 다르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생산 기술이 발달해 물자가 풍부하고, 통신ㆍ교통수단이 발달하여 어디는 마음대로 갈 수 있으며, 의학이 발달하여 생명 연장을 꿈꾸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분업의 발달은 개인의 창의성을 발휘할 여건과 기회를 만들어주어, 특별한 도움이 없어도 자신의 생각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아산에 가면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신 현충사(顯忠祠)가 있다. 그 이름을 왜 ‘현충(顯忠)’이라 지었을까? 예전에는 개인에 대해 국가의 안위를 우선 걱정했다. 그래서 충(忠)을 현양하는 편액이 걸린 것이다. 만일 오늘날에 현충사를 짓는다면 ‘현충’이라는 말보다 ‘기억한다’(memorial hall)는 뜻을 지닌 이름의 편액이 사용될 것이다.

 

‘충절(忠節)’이라는 말도 이와 같다. 과거에는 사회와 국가를 우선시했기 때문에 ‘충(忠)’을 절개로 하는 도덕이 매우 중시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는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지만[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공화국이다], 개인의 자유의 실현을 더 중시한다. 그래서 공정한 룰을 뜻하는 공정과 정의가 사회의 미덕으로 떠오른다. (자유의 실현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여 반드시 사회적 갈등을 낳는다. 이때 필요한 것이 공정한 룰이다. 그래서 공정과 정의가 중시되는 것이다) 과거 자신을 ‘민주’와 ‘정의’로 포장한 군부 세력이 정치를 농단한 적이 있다. 그 당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것도 이런 면을 고려하면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개인의 자유와 공정한 룰의 마련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사회가 된 것이다.

 

유학의 도덕 가운데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라는 말이 있다. 수신(修身)이 평천하(平天下)의 관건이라는 뜻인데, 그러나 오늘날에는 정치를 도덕에 종속시키는 이같은 ‘수직적’ 가치관이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는 도덕과 정치를 병발적(竝發的)인 것으로 이해하는 ‘수평적’ 사고를 더 선호한다. 그것은 도덕과 정치의 뜻이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공동체의 안위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이 도덕의 주요 내용이었다면, 오늘날에는 개인의 자유 실현을 가치의 최우선 순위로 꼽는다. 그래서 때로 공동체[不法]에 맞서 주체적으로 대응[抵抗]하는 것을 옳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국가에 공권력이 있다면 개인에게는 저항권이 있다는 논리이다.

 

정치의 내용도 변화되었다. 과거에는 도의 구현을 정치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출사(出仕)를 선비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덕으로 여겼다. 어찌 되었든 출사를 해야 자신의 의로운 뜻을 펼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오늘날에는 정치를 개인의 자유의 실현을 보장하는 도구 내지 수단이라고 여긴다. 정치에 참여하는 자가 굳이 도덕적일 이유도 없다. 부(富)를 고르게 분배할 수 있고 개인의 자유를 보다 더 잘 보장하고 실현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괜찮다고 한다. 도덕적인 사람만이 정치를 담당할 수 있다는 사고가 지양되고, 재주와 기술 혹은 지식이 뛰어난 이가 정치를 담당해야 한다는 사고가 유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사고의 이면에는 근대 사회의 분업 이론과 합리적 사고를 중시하는 세계 해석 이론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나타난 이러한 변화는 특히 가족[clan] 윤리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사람다움을 행하는 근본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이해에는 공동체를 일사불란하게 운영하고자 했던 전근대 사회의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공동체[가족]가 해체되면 개인의 행복과 안위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연장자와 연소자의 관계가 상호주의적ㆍ교호적 관계로 이해되고 있다. 이른바 주고 받는 GAT(give and take)의 관계로 정착해 가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공동체[가족]의 안위를 걱정하여 가장(家長)을 맨 위에 놓고 가솔(家率)들을 그 아래에 질서지우는 것이 도덕의 패턴이었다면, 오늘날에는 가족 구성원의 자유 실현을 고려한 위에 가족 공동체의 성립과 운용이 논해지고 있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장년과 소년의 관계를 이른바 ‘천륜(天倫)’으로 이해하는 사고는 고리타분한 사고로서 통용되기 어려운 가치관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에 대신하여 강조되는 것이 천부인권과 사회계약설이라는 사회정치이론이다.

 

이와 같은 상황이라면 향교에서는 어떠한 교육을 시행해야 할까. 유학의 목적이 인간다움의 구현에 있다면, 오늘날의 향교 교육은 ‘종속적’ 윤리관에 대해 ‘수평적’ 윤리관을 권하는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의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다움 곧 유학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향교에는 예로부터 두 가지의 교육이 있어 왔다. 바로 ‘군자(君子)의 학(學)’과 ‘육예(六藝)의 연마(硏磨)’이다. 육예란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라 불리는 6가지 기예인데, 오늘날로 말하면 재주와 기술 내지 재능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관혼상제에 필요한 의식(禮), 의전에 필요한 음악 및 악기의 연주(樂), 전투 기술(射), 말의 조련과 마차의 관리(御), 문서 작성(書), 조세 및 부세의 출납 관리(數) 등이 바로 그것이다.

 

다만 이것은 재주와 기술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완성된 인격을 뜻하는 군자(君子)가 되기 위해서는 별도의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였는데, 이를 위해 설치한 교육과정이 ‘경전학습’ 곧 ‘학(學)’이다.(공자가 15세 무렵에 뜻을 두었다는 학) 강학(講學)과 제술(製述)을 교과과정으로 개설하는 한편으로, 습자(習字)와 체육, 기예를 함께 연마하도록 교과목을 편성한 것은 이에 기인한다.

 

과거에는 군자의 학을 으뜸으로 하였기 때문에, 육예(六藝)에 속하는 것은 군자의 학에 대해 소인(小人)의 술(術)로 천시되었다. 그래서 학동들도 전자를 연마하는 데 온 힘을 다하였고, 후자는 계절에 따라 혹은 여유가 있을 때 잠깐 잠깐 연습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위상이 변하여, 후자가 전자를 압도하고 있다. 후자는 바로 자본화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반면, 전자는 궁핍과 고통을 수반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수가 되겠다는 큰아들을 친애하고, 가수가 되겠다며 가출을 밥 먹듯이 하던 작은 아들을 핍박하던 어떤 사람이, 가수왕이 된 작은 아들 덕분에 고급승용차를 타고 명산대천을 유람하며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는 오늘날의 향교 교육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 사람들은 더 이상 전근대적인 교육과 윤리를 긍정하지 않는다. 가치관과 의식이 변했다. 더불어 인간다움의 모습과 내용도 변했다. 전통과 관습에 매어 자기 뜻을 펴지 못하는 이를 시대에 뒤떨어진 이로 생각하는 반면, 누구의 간섭도 거부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꿈과 의지를 실현하는 이를 뛰어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전통과 관습을 수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였던 노년 계층을 숭고하게 생각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꿈의 내용도 변했다. 이제는 개인의 행복과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이에게 ‘숭고’라는 찬사를 헌정한다.

 

사회 및 공동체를 위해 개인ㆍ개체가 존재하던 시대에서 개인ㆍ개체를 위해 사회와 공동체가 존재하는 시대로 변화되었듯, 이제 향교도 향교 구성원을 위하는 방향으로 모든 것을 재편해야 한다.

 

그 향교의 구성원이 개인의 가치와 권리를 소중하게 여긴다면 향교의 교육도 그에 맞게 변화되어야 한다. ‘한학(漢學)’을 하는 향교에서 ‘유학(儒學)’을 하는 향교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예전부터 해 오던 것이니 어떻게든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은, 그 말이 생겨난 이유도 모르면서 오직 충절(忠節)만을 외치는 국수주의자나, 자고로 선비란 … 자고로 군자란 … 이란 말을 되뇌는 고리타분한 딸각발이의 시대착오적 행태일 뿐이다.

 

유학의 가치를 살리려면 향교를 혁신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단초는 교육에 있다. 새로운 교육을 시행하여 구성원의 의식을 혁신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시대에 맞는 향교를 정립해야 한다.

 

예전에 사회의 지도자는 출사하기 전 향교에 나아가 직의 수행에 필요한 재주와 인격을 연마하고 검증을 받았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그런 면이 모두 사라졌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향교에 개설된 교육 내용이 시세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방자치단체의 임원이나 장 가운데 향교에 출입하는 이가 얼마나 되는가? 분향(焚香)과 봉심(奉審)에 담긴 뜻도 모르고, 지금 자기가 분향하고 봉심하는 대상이 어떤 분인지도 자세히 모르면서 분향을 하는 데에만 열심이고, 유학이 어떤 학문인지도 모르면서 공자가 어떻게 맹자가 어떻고 주자가 어떻고 …… 과연 향교는 이런 곳에 불과한 곳이었던가?

 

모든 교육을 학교와 사교육 시장에 빼앗긴 오늘날, 향교는 어떤 교육을 시행해야 하는가? 시대는 변했는데 옛날의 이상적 인간상만을 강요하는 교육이 무슨 가치와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언제까지 철 지난 옷을 입히려 하는가? 봄이 왔으면 멋도 부리게 해 주고 나들이도 가게 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중들이 꺼리는 유학과 향교를 만들려는 것인가?

 

향교에 출입한다고 해서 그가 곧 유생(儒生)이 되는 것은 아니다. 향교에 출입하지 않아도 유학의 도는 실천할 수 있다. 향교가 유학의 전당인 이유는 거기에 ‘유생’ 곧 사람다운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향교를 매개로 해서 유생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생을 매개로 해서 향교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세상이 되려면 향교 구성원의 의식 전환이 있어야 한다. 상처를 입힌 손이 상처를 치유한다는 말이 있다. 향교가 유생을 매개로 존재한다면, 오늘날의 유학ㆍ향교의 문제는 향교와 유학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유생에게 있다. 우리 유생들이 어떠한 태도와 자세를 취하고 무엇을 공부하고 교육하느냐에 따라 향교의 모습이 달라진다. 그럴 때 유학의 가치도 소생할 것이다. 향교 구성원 제위의 각성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