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짓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치고 시성(詩聖)이라 일컬어지는 두보의 말년 대표작 <추흥팔수(秋興八首)>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작시(作詩)나 한문장(漢文章)에 비록 치졸(稚拙)하기는 하나 고중문(古中文) 뒤지기를 좋아하는 나는 우연히 두보의 <추흥팔수>를 주해(註解)하고 비평하는 글이, 여러 시대에 걸쳐 모아져 있는 <추흥팔수평주집(秋興八首評註輯)>을 보고 매우 흥미가 있었다.
천학(淺學)이라 정확하게 그 오지(奧旨)를 파악할 수야 없겠지만 여러 번 읽어보니 무슨 말인지 글 뜻은 알겠다.
당(唐) 시대의 ‘추흥(秋興)’이란 어떤 정서(情緖)인지를 짐작해 볼 수도 있고, 또한 당나라 이후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시대의 문인들이 당시(唐詩)를 비평하는 것을 읽으면서, 사고의 표현과 시정(詩情)의 변화를 엿볼 수 있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지금의 우리나라 한시계(漢詩界)의 시풍 또는 시작법과도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지금 우리 한국의 한시, 특히 율시(律詩)의 시작(詩作) 수준이 당송명청(唐宋明淸) 시대 보다도 더욱 발전되었는지 아니면 곡문(曲文)으로 흘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던 차이가 크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한시백일장에서 시제(詩題)가 ‘추흥’으로 출품된 한시를 보면 ‘흥(興)’이란 글자는 ‘락(樂)’ 즉 ‘즐겁다’라는 의미 또는 분위기로 느껴지는데, 당시(唐詩)는 그것을 ‘수(愁)’ 또는 ‘우(憂)’ ‘한(恨)’ ‘사(思)’ 등으로 본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슬픔, 아쉬움, 그리움 등등으로 보아달라는 것이다.
두보의 <추흥팔수> 이후, 중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 문인들이 이를 흉내 내어 <추흥팔수>를 시제(詩題)로 차운(次韻)한 것을 내가 옮긴 것만 해도 수십편이 넘는데 송명청시대를 다 살펴본다면 몇 배는 될 것이라 유추할 수 있다.
내가 읽어 본 옛 추흥시(秋興詩)는 거개가 느낌이 한마디로 회한 또는 우울이었다. 앞에 말한 그 평주에서도 분명 ‘흥(興)’을 ‘수(愁)’로 적시하고 있다.
말이 나온 김에, 현대문장에 친숙한 나에게서는 요즘의 우리 한시[七律]는 운문(韻文)인지 산문(散文)인지 구분이 모호하다고 느껴진다.
옛글에서 사람의 흉금에서 솟아나는 감정을 문자로 쓴 것을 시(詩)라 하고, 소리로 드러낸 것을 노래[歌]라 하고, 더 나아가 몸짓으로 나타내는 것이 춤[舞]이라고 하였다.
고중국(古中國)에서 지어졌던 운문체는 시경(詩經), 초사(楚辭), 악부(樂府), 고체(古體), 근체(近體), 사(詞), 곡(曲), 가(歌), 행(行) 등등이 있는데, 한자로 지었던, 한글로 지었던, 아니면 로마자로 지었던 간에 ‘시’란 운문이라고 배운 사람으로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이다.
운문이란 운율(韻律) 즉, ‘리듬(Rhythm)’이 있어야 하는데 작금의 한시백일장에서 작시되는 한시에서는 이것이 느껴지지 않고 무슨 설명문으로 보이는 것은 아무래도 ‘한시(漢詩)의 이해’라는 관점에서, 나의 아둔함 때문일까?
남기완/성균관유도회창원지부 의창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