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락(李址洛, 여강이씨 종손)
회재 이언적(李彦迪, 1491-1553) 선생 집안의 종손으로서 요사이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여 유림 제위께 알리고자 합니다.
영정이란 선조께서 생존시 얼굴을 직접 보고 그린 도사(圖寫)가 있고, 얼굴을 아는 이들의 기억에 의존해 그린 추사(追寫), 기존 영정을 바탕으로 제작하는 모사(模寫) 등으로 나뉘고 왕명에 의해 도감에서 화공이 제작하는 경우에는 여기에 대한 기록이 보통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의 기록이나 비문(卑門) 어디에도 회재 선조의 영정에 관한 부분이 없습니다. 종중(宗中)·가문(家門) 등에서 제사·묘위(墓位)일 등에 관하여 의논하고 그 합의된 내용을 적어 서로 지키도록 약속한 문중완의(門中完議)의 내용에서도 살펴볼 수 없습니다.
비문의 후손들은 선조의 유지를 받들고 그분의 삶의 태도를 느끼고 아울러 선조의 휘(諱)에 누가 되지 않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선조께서는 주자(朱熹, 1130-1200)의 삶을 흠모하여 그 형이상학적 철학 체계를 그대로 따라 편지로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에 대해 논변을 벌이고, 자신의 아호(雅號)마저도 주자의 회암(晦庵)에서 회(晦)를 가져와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조께서는 주자가 생의 마지막까지 사유의 끈을 놓지 않았던 『대학장구』의 설에서 격물치지(格物致知) 보망장(補亡章)의 불필요성을 설파하며 그 내용을 경일장 안에서 가려내어 『대학장구보유(大學章句補遺)』를 지으셨습니다.
저는 선조께서 보유 서문의 말미에 ‘비록 회암이 다시 일어나더라도 역시 혹 나의 설에서 취할 것이 있을 것이다.(雖晦庵復起 亦或有取於斯矣)’라고 외칠 수 있는 삶의 태도에 대해 한 인간으로서 경의를 표하며 후손으로서 따르고만 싶습니다.
시대가 감각에 의한 정(情)을 중시하면서 세상은 보고 느낄 무엇을 필요로 하고 이에 발맞추어 많은 영정이 표준영정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굳이 비문이 이런 시대를 역행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아는 것을 안다고 하며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한다고 해야 한다’는 공부자(孔夫子)의 가르침을 기억하기에 비문(卑門)은 표준영정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어떤 무뢰배가 비문 선조의 영정을 무단으로 만들어 배포하고 이것이 책으로 인쇄되고 있습니다.
유림의 제현들에게 고합니다.
비문에는 회재 선조의 영정이 없습니다. 혹시라도 영정을 보시면 사문(斯文)의 일원으로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며 거들먹거리는 성인의 죄인들을 엄하게 꾸짖어 깨우쳐주시기 바랍니다.
오래전부터 영정을 제작하자는 분도 있었지만 없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므로 터럭 하나도 다르면 영정(眞寫)이 아니라 했습니다. 없던 것을 만들어 우리 비문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 말씀드립니다.
유림 제위께 다시 호소드립니다. 어느 향교에서 없는 영정을 조작해 걸어두고 학생들에게 교육한다고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회재(晦齋) 선생 영정 사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