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시론

<李玄崗의 泮中雜詠>‘막말’로 멍드는 사회

흔히 말은 마음의 표현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대의 말을 통해 그 사람의 성품과 인격을 가늠하곤 한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말은 무게가 있고 진실이 있으며, 이런 말들은 사람들을 감동케 한다. 반면에 세 치 혀만 놀리는 막말은 ‘되는 대로 함부로 하는 말’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그런데 요즘 언론 보도를 보면 막말 보도가 끊이질 않고 있

편집부 2017. 3. 31.

흔히 말은 마음의 표현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대의 말을 통해 그 사람의 성품과 인격을 가늠하곤 한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말은 무게가 있고 진실이 있으며, 이런 말들은 사람들을 감동케 한다. 반면에 세 치 혀만 놀리는 막말은 ‘되는 대로 함부로 하는 말’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그런데 요즘 언론 보도를 보면 막말 보도가 끊이질 않고 있다. 일반 집회는 물론 방송의 연예 오락 프로그램, 교수, 정치인들에 이르기까지 막말이 연일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을 보면 ‘막말의 일상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다.

한때는 막말로 성공한 연예인도 있었고 심지어는 ‘막말 하면 뜬다’는 게 방송가의 새로운 규칙이라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 말 좀 한다는 인사들이 내뱉는 막말의 수준은 수년 전의 그때와는 급이 다르다.

세월호 인양을 두고 “바닷물에 쓸려갔을지 모르는 그 몇 명을 위해 수천억을 써야겠냐”며 막말을 내뱉는 전직 아나운서, 대선 출마를 하면서 유죄판결을 받으면 자살을 검토하겠다는 대선후보, 세월호 사건이 한국 용공이 북한과 손잡고 일으킨 대형사건이라고 주장한 지방대학 교수, 야권의 유력한 대선후보를 가짜뉴스와 막말로 비방해놓고도 특정인을 비방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서울의 구청장 등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어서 ‘야만 사회’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오죽하면 영향력 있는 인물들의 공개적인 막말에 대해서는 별도로 책임을 묻는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까.

『논어』를 보면 공자께서 말과 관련해 경계하신 말씀이 많이 보인다. 사람 사는 세상 크게 다를 것 없으니 그때도 세 치 혀로 놀리는 막말이 문제가 되었을 법 하다. 남용(南容)이라는 제자에게 형의 따님을 시집보낸 이유도 남용이 백규(白圭)라는 시를 하루 세 번 되풀이해 읽었기 때문이라 하니 말을 삼가는 것을 얼마나 강조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시경』 「대아」 억(抑)편에는 “백규(하얀 옥으로 만든 홀)의 흠집은 그래도 갈아서 없앨 수 있지만 말의 흠집은 그렇게 할 수 없다”라고 하였는데 남용은 하루에 세 번씩 이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주자는 “이 일은 『공자가어』에 보이니, 말을 삼가는 것에 깊은 뜻을 둔 것이다. 이것은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는 화를 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형의 딸을 시집보낸 것이다”라고 주석을 달았다.

공자께서는 “군자는 말은 어눌하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한다(君子 欲訥於言而敏於行, 「里仁」)”, “옛날에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은 몸소 행하는 것이 거기에 미치지 못할까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古者 言之不出 恥躬之不逮也, 「里仁」)”라고도 하셨다. 모두가 함부로 하는 말을 경계하신 것이다.

우리 속담에도 말을 쉽게 하고 함부로 하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 많다. “말 많은 놈 쓸모없다” 또는 “말 잘하는 사람치고 거짓말 못하는 사람 없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 “말 많은 집 장맛이 쓰다”고 해서 말 많은 것을 경계했고, 말 잘하는 것도 신통하게 여기지 않았다.

말이라는 것은 행동의 표현이고 행동은 말의 실상이다. 말을 쉽게 하면서 행동을 삼가는 사람은 있지 않다. 막말은 그에 어울리는 행동을 낳기 때문에 옛 선인들은 늘 그것을 경계했다. “입은 남을 해치는 도끼이다(口是傷人斧)”란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막말의 일상화는 사람들 사이에 진심을 전할 수 없게 만든다. 어떻게 막말에 진심을 담을 수 있겠는가. 지금의 거친 사회 풍토도 그런 막말이 남발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일명 ‘오피니언 리더’로 자처하는 이들의 막말에 대해서만큼은 보다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